한라산 눈꽃과 은빛 억새밭 사이 초록빛 들판이 가득한 제주도의 겨울은 육지와는 사뭇 다르다. '월동무'와 '당근' 등 겨울 채소 수확이 시작되고 찬바람에 살이 오른 옥돔과 꿩이 제철을 맞기 때문이다.
추울수록 맛있어지는 제철 산물로 땅과 바다가 들썩이면 '수고했다'는 뜻의 제주 방언인 '속았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거칠고 시린 겨울을 뜨겁게 살아낸 제주 사람들의 수고로움 가득한 밥상을 만난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일꾼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한다. 한창 수확이 시작된 당근 때문이다. 겨울에 수확하는 제주 당근은 향이 좋고 단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전국 당근 생산량의 60%가 제주에서 재배되는데 그중 90%가 구좌읍 한 지역에서 생산된다.
구좌 당근밭에는 언제 어디서든 필요할 때면 달려가는 홍반장이 있다. 일꾼들과 함께 당근밭을 누비는 홍반장, 홍금덕 씨는 준비해온 재료들을 이용해 직접 음식을 만들어 아침과 점심, 간식까지 밭에서 밥상을 차리는 요리사이기도 하다. 당근으로 색과 향을 더한 칼국수에 당근만 갈아 만든 쥬스까지 한겨울 당근밭 지키는 일꾼들의 따뜻한 한끼를 만난다.
제주 중앙부에 우뚝 솟아있는 화산 한라산. 한라산의 용암으로 이뤄진 제주는 그 덕에 화산회토가 많다. 비옥하고 물빠짐이 좋은 화산토양 덕분에 당근, 감자와 같은 뿌리작물이 발달했는데 또하나 제주의 겨울을 대표하는 작물이 바로 겨울을 나고 수확한다 해서 이름이 붙은 월동무다.
찬바람을 견디며 달고 더 단단해진 겨울무는 채소가 귀해지는 시기에 수확을 하기 때문에 더 좋은 대접을 받곤한다. 18년째 무농사를 짓고 있는 문대헌, 오미라 부부. 아버지의 농사를 돕던 아들은 뒤늦게 아버지의 땅으로 돌아와 베테랑 농부가 됐다. 아들에게 농사일을 맡겨두고 쉬어도 될법한데 여든을 훌쩍 넘긴 아버지는 여전히 50년 넘은 전용 자가용 '탈탈이'를 몰며 이 밭 저 밭을 누비며 사신다.
지금처럼 대량으로 무를 재배하지 않던 시절 아버지는 늘 땅속에 무를 거꾸로 묻어 저장해두었다 꺼내 무속을 파내고 꿀을 넣은 후 불에 구워 자식들에게 감기약 대신 먹이고 무는 썰어 동상 걸린 손발에 붙여주곤 했다.
멸치젓과 무만 넣고 졸여 만든 이름도 반찬이라는 뜻의 촐래, 잔치날 돼지의 갈비뼈 부위와 무와 메밀가루로 걸쭉하게 끓인 접짝뼈국과 무를 채썰어 볶아 만든 진메물까지 밥상에서도 무는 기본 반찬이자 큰일 치를 때 빠지지 않던 식재료였다.
한편 이날 방송에서는 덕천리 마을 겨울 꿩사냥의 추억, 제주 바다의 겨울 진객 옥돔 등을 소개한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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