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24일 숙명여대에서 열린 이기태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사장의 CEO 특강 모습. 이 자리에는 이경숙 숙대 총장을 비롯한 교수·학생 8백여 명이 참석해 뜨거운 관심을 실감케 했다. | ||
최근 삼성전자 CEO들이 대학가에서 유명강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풍부한 현장경험과 동시에 깊이 있는 취업정보를 접할 수 있는 이들의 강의는 이미 캠퍼스 내 인기 과목으로 자리잡은 상태다. ‘취업 대란’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닌 상황에서 재계 서열 1위 삼성의 주력회사인 삼성전자 CEO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학생들의 관심을 잡아끌기에 충분한 탓이다. 삼성을 재단으로 둔 성균관대는 물론 서울대 숙명여대 같은 유명 대학들이 앞다퉈 삼성전자 CEO들을 강사로 초빙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얼마 전 고려대를 찾은 이건희 회장이 고대생들의 물리적 대응에 곤욕을 겪기도 했지만 그 외 다른 대학가에선 삼성전자 CEO들이 연일 상종가를 치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의 폭발적인 호응과는 대조적으로 삼성전자 CEO들의 캠퍼스 나들이를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이 재계 일각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삼성 CEO들은 올 1학기 성균관대에서 ‘기술혁신과 경영 리더십’이란 주제로 릴레이 강연을 펼쳤는데 주로 삼성전자 CEO들이 강사로 나섰다. 지난 3월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의 ‘기술혁신과 경영’ 강의를 시작으로 박상근 차세대기술팀 연구임원, 이기원 시스템연구소 부사장, 황창규 반도체 총괄사장, 이기태 정보통신 총괄사장, 최도석 경영지원 총괄사장 등이 차례로 성균관대 교정을 찾았다.
삼성 휴대폰 성공신화의 주역인 이기태 사장은 성균관대 외에도 지난 5월24일 숙명여대를 찾아 ‘삼성 휴대폰의 글로벌화 전략’을 강의했다. 이 외에도 삼성전자는 서울대 전자공학과와 경영학과 등에 ‘반도체 소자 특강’ 등 정규과목을 개설해 임직원들이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강의에 대한 대학생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삼성전자 CEO들의 성균관대 강의는 학생들의 청강 문의가 쇄도해 학교측이 2학기에도 강의를 이어가기로 결정한 상태이며 삼성전자 정국현 전무 등의 다음 학기 강의가 예정된 상태다. 숙대 음악대학 연주홀에서 개최된 이기태 사장의 특강 때는 이경숙 숙대 총장을 비롯한 교수·학생 8백여 명이 복도까지 가득 채웠다.
삼성전자 CEO들 대학 강의는 삼성의 전략과 위상을 중점으로 다루면서 삼성 입사를 희망하는 대학생들에게 기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고 있다. 각 CEO들의 각기 다른 업무환경과 에피소드가 적절히 섞여있는 강의 내용 속엔 학교에서 접하지 못한 현장에 대한 이해와 취업 전략 등이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이들의 강의가 이론 위주의 대학 강의에 생기를 불어넣는다는 점, 아직 ‘반 기업정서’가 수그러들지 않은 대학가에 기업 친밀도를 높여준다는 점 등에 대해 재계에서도 어느 정도 긍정적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 CEO의 대학 강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재계 일각에 자리 잡고 있다. 대학에서 삼성전자 CEO 강의를 접한 학생들과 강의 내용을 입수한 재계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이들 강의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강연마다 기업의 존재 이유가 부가가치 창출을 통한 이윤의 재분배라는 점, 그리고 삼성전자의 국내외적 위상과 관련돼 형식은 ‘강의’지만 결과는 ‘삼성 홍보’가 된다는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가 최근 해마다 3조원가량 세금을 내는데 이는 한국의 국가세수의 2~3% 가량으로 삼성전자 같은 기업 30~40개만 있으면 한국민 누구도 세금 낼 필요 없다’는 식의 이야기가 가장 흔하게 등장한다고 전해진다. 기업 경영이 잘못돼 부도나 법정관리 수순을 밟게 되면 국민의 혈세가 투입될 수밖에 없지만 삼성전자 같은 우량기업만 있다면 국민이 우려할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식의 논리다.
지난 5월24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위 내용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가 세수는 29조7천억원이라고 한다. 따라서 올해 총 국가세수는 1백18조8천억원가량으로 추산할 수 있다. 삼성전자 CEO들이 밝히는 대로 삼성전자의 1년 세금이 3조원가량이라면 국가세수의 약 2.5%가 된다. 이 계산대로라면 삼성전자 같은 기업 40개만 있으면 이들 기업체가 내는 세금 외에 다른 세금은 필요 없다는 ‘단순한’ 계산도 가능해진다. 물론 다른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수치다.
이 같은 비유는 다른 재계 인사들, 특히 삼성과 국내 재벌 순위를 다투는 4대 그룹 관계자들 사이에 강한 거부감을 일으키고 있다. 4대 그룹 중 한 기업의 관계자는 “삼성전자만 있으면 된다는 것 아니냐. 다른 기업은 도대체 뭘 했냐는 식으로 들린다”고 비아냥거렸다. 다른 재계 관계자도 “삼성이 대학가에 ‘삼성공화국’ 논리를 확산시키려 하는 모양”이라며 경계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CEO들이 반 기업정서가 강한 젊은 층에 ‘취업 정보’라는 ‘달콤한 무기’를 갖고 적극적으로 접근해 ‘친 삼성’ 이데올로기를 전파한다는 비판이다.
이 같은 재계 일각의 부정적 시선에 대해 삼성그룹 관계자는 “삼성전자 CEO들은 자진해서 대학 강연을 나갈 만큼 한가한 사람들이 아니다. 계속 거절을 해도 대학들이 자꾸 요청을 하는 통에 마지못해 나가는 것”이라며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삼성전자 같은 기업이 많아지면 국민 세금 부담 적어진다는 것은 맞는 이야기”라며 자사 CEO들 강연내용의 논리를 뒷받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