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5일 서울중앙지검 이진한 공안1부 부장검사가 북 지령 간첩단 ‘왕재산’ 적발과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왕재산 사건의 전모와 그들의 배후세력으로 지목된 ‘225국’의 실체를 추적해봤다.
지난 8월 25일 서울중앙지검 공안 1부는 주사파 출신들을 주축으로 한 일명 ‘왕재산 간첩단’ 일당들을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구속된 일당들은 총책 김 아무개 씨(48)를 비롯해 모두 5명이고, 향후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추가로 적발된 인원들에 대해 법적 조치가 취해질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 따르면 왕재산 간첩단의 총책인 김 씨는 지난 1993년 북한 김일성 주석과 직접 만났다. 그는 그 자리에서 ‘관덕봉’이라는 대호명(간첩들의 비밀공작활동 과정에서 보안유지를 위해 고안된 가명)을 받고 교시를 전달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김 주석은 총책 김 씨에게 ‘남조선혁명을 위한 지역지도부 구축’을 명하며 간첩활동과 연계연락을 지시했다. 김 주석으로부터 교시를 받은 김 씨는 간첩활동을 위해 ‘지원개발’이라는 위장업체를 만들어 사업을 명목으로 해외를 드나들었다. 해외에서 그는 북한 대남공작부서 225국(당시 사회문화부) 공작조와 접선을 꾀했다.
이후 김 씨는 같은 주사파 출신 후배 임 아무개 씨(46)와 이 아무개 씨(48) 등을 포섭해 본격적인 간첩활동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총책 김 씨는 임 씨에게 인천 지역책(지역당명 월미도)을 맡기며 인천지역 운동권단체 동향수집 및 보고 등 간첩활동을 명했다. 또 이 씨에게는 서울 지역책(지역당명 인왕산)을 맡겨 정치권 내 종북세력 확보 및 보고 등 간첩활동을 종용했다.
이들은 최근까지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등 접선 장소를 바꿔가며 총 34회가량 225국 공작조와 정기적으로 접선했다. 접선 때마다 대북보고문을 통해 간첩활동 결과를 보고했다. 특히 김정일 생일이나 노동당 창당일과 같은 주요시기에 접선이 진행됐다. 이들이 넘긴 자료 일면을 살펴보면 국내 미군기지 주요시설 및 군사시설 정보, 위성사진, 미군 야전교본, 방산업체 및 가스시설 정보 등 민감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인천지역을 혁명의 전략지로 지정하면서 2014년까지 지역 행정기관, 방송국 등을 장악하고 저유소, 공단, 군부대 등에 핵심성원을 배치해 폭파하라는 구체적인 지령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또한 직접 기업을 운영해 가며 활동자금을 수집했다. 총책 김 씨는 지난 2002년 ‘(주)지원넷’이라는 업체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북한이 자체 개발한 ‘주차장 차량번호 인식시스템’을 판매하는 업체였다. 또한 같은 사무실에서 전자책 출판업체 ‘(주)코리아콘텐츠랩’을 설립해 진보단체와 학계에 선전물들을 보급하고 판매했다. 북의 지령에 따라 수익을 올리는 동시에 사상 선전도 꾀할 수 있는 일석이조 전략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이 남한 선거와 정치권에도 직접 개입했다는 사실이다. 왕재산 일당들은 북한 225국이 내린 ‘진보세력 확대’ ‘진보 대통합정당 구성’과 관련한 지령을 받들어 2006년과 2010년 지방선거, 2011년 재보궐선거 때 진보정당 지원에 적극 참여했다. 이들은 특히 2010년 지방선거 당시 포섭대상인 A 씨와 B 씨를 각각 시의원과 구의원에 당선시키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때로는 간첩단 일원이 직접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하거나 국회의장 정무 비서관으로 근무하는 등 직접적인 정치 참여에도 적극성을 보였다.
그렇다면 이들 배후에서 직접 교신하며 지령을 내린 225국은 과연 어떤 곳일까. 225국은 북한의 대표적인 대남공작부서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에는 225국 이외에도 당 작전부, 김정일 국방위원장 직속 호위총국, 일반 군부 등도 대남공작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중 이번에 지목된 225국은 지난 1974년 문화부와 연락부가 통합돼 ‘문화연락부가 생겨난 이래 ‘연락부’ ‘사회문화부’ ‘대외연락부’ 등으로 불려졌다. 지난 2009년에는 당에 있던 부서가 내각으로 넘어오면서 지금과 같은 225국(국장 강관주)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225국은 남한에 직접 공작원을 남파해 정계·재계·사회단체 등 각계 인사포섭을 기본목표로 한다. 또한 이러한 과정을 거쳐 지하당을 결성해 시의절적한 시기가 오면 체제 전복을 목표로 움직인다.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 김정은이 등장할 당시 정찰총국으로 대남공작업무가 대규모로 넘어가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북한 내부에서 경직화된 업무라인이 문제점으로 지적되면서 다시금 225국이 앞세워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 225국에는 기존의 국가보위부 대외반탐조직, 대외연락부 및 35호실 인원들이 대거 충원됐다고 한다.
지난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 1992년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1994년 ‘구국전위 사건’, 1999년 ‘민혁당 사건’ 등은 225국의 전신기관이 행한 대표적인 남한 내 간첩 결성 사례다. 이번에 적발된 ‘왕재산 사건’은 1999년 ‘민혁당 사건’ 이후 10년 만에 적발된 대규모 지하당 조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기자와 통화한 한 대북전문가는 “이번에 적발된 왕재산 간첩단은 북한의 지령활동 중 극히 일부일 수 있다. 얼마 남지 않은 대선과 총선 등 남한 내 혼란한 분위기를 틈타 북한의 대남공작활동이 더욱 활발해질 수 있다. 또 내년으로 다가온 2012년 강성대국의 해를 앞두고 북한의 사상전 공격이 본격화될 것”이라며 우려감를 표시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연두색 여인’ 김정은도 인정
▲ 러시아 극동지역 ‘부레이 발전소’를 방문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가운데 여인이 김옥이다. 연합뉴스 |
지난 2000년 북한 대표단 방미 당시 처음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김옥은 지난 5월 김 위원장의 중국 순방길에도 동행했다. 당시에도 그는 김 위원장 지척에서 동행했으며 이번 러시아 순방길에도 최측근에서 김 위원장을 보필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공식적인 발표는 없지만 김옥이 사실상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월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 측은 “김옥은 2년 전, 이미 김 위원장과 정식으로 결혼했으며 7세로 추정되는 아들도 두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김옥은 비서로 근무하며 김 위원장과 연을 맺었다. 젊은 시절부터 그는 흰 피부에 백치미를 자랑하는 청초한 미모로 김 위원장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에게 거의 유일하게 반말을 쓰는 인물로 알려졌다. 게다가 워드프로세서와 스케줄링 등 비서로서 뛰어난 업무수행 능력은 물론 다소 껄끄러운 사이가 될 수 있는 김정은에게도 인정받을 만큼 정치력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옥은 지난 중국 순방길에 이어 이번 러시아 순방길에도 파스텔톤 계열의 연두색 의상을 입고 패션 감각을 뽐내기도 했다. 국내 일각에서는 김옥을 두고 ‘연두색 여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있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