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츠(REITs)란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부동산 등에 투자하고 그 수익을 배당하는 부동산투자신탁회사를 일컫는다. ‘다산리츠’ 창업주 이 아무개 씨는 2007년 12월 회사를 설립한 이후 자본금 70억 원을 마련해 코스피 상장을 꾀했지만 1년 반 동안 돈이 모이지 않았다. 결국 정부로부터 영업인가 취소 예정 통보까지 받게 된 이 씨는 다단계 사업가 조 아무개 씨(48)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됐다.
익산 역전파 출신 조직폭력배였던 조 씨는 30대부터 건강보조식품, 의료기기 등 다단계 사업을 하며 일찍부터 경영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다산리츠를 상장시키기 위해 사채업자들로부터 179억 원의 급전을 빌려 영업인가를 위한 대금과 상장대금을 납입한 뒤 곧바로 돈을 빼는 이른바 가장납입 수법을 사용했다. 회사는 상장 직전 부산 해운대구 오피스텔 임대·운영사업 등을 발표하며 15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성공했고, 이들은 능력 있는 기업가로 매스컴에 소개되기도 했다.
상장에 성공한 뒤 조 씨는 부동산 투자에 사용되어야 할 회사자금 110억 원 중 56억 원을 빼내 마음대로 사용했다. 임직원 급여로만 8억 원을 지출하고 시가 수천만 원짜리 명품 시계를 선물하기도 했다. 개인 아파트 매매대금으로 10억 원을 지출하는가 하면 에쿠스, 리무진 등 회사 명의로 고급 차량 4대를 굴렸다. 자주 찾는 룸살롱의 한 여종업원에게 1억 원을 지출하기도 했다.
문제는 회사의 단기사채 이자를 지급하기 위해 다른 조폭들에게 돈을 빌리면서부터 발생했다. 유상증자 소식을 들은 조폭들은 원금의 3~5배에 달하는 보상을 요구했다. 이들 중 강남의 유명 고깃집을 운영하는 나 아무개 씨를 비롯해 범서방파·고창파·송정리파·영광파 등 조직원들은 조 씨를 찾아가 폭언을 일삼고 재떨이로 머리를 치는 등 폭행을 가했다. 다급해진 조 씨는 수십억 원에 달하는 채권 변제용 약속어음 14장을 마구 찍어 냈고, 이 과정에서 급격한 경영 악화로 ‘다산리츠’는 지난 6월 9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상장폐지되고 말았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8월 22일 조 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회사 관계자와 조직폭력배 1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여성 트로트 가수 김 아무개 씨와 개그맨 김 아무개 씨, 전직 프로야구 선수 이 아무개 씨 등이 조폭들에게 돈을 대 준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지만 별도로 입건하지는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이들은 단순히 돈을 불리기 위해 자금을 맡겨 시중 금리보다 조금 높은 수익을 얻었을 뿐 본질적으로 이번 범죄와는 무관하다”며 구체적인 내용 공개를 꺼렸다.
다산리츠 상장폐지 과정에서 가장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다름 아닌 소액투자자들이다. 한 투자자는 거래정지일 전날 공시한 ‘필리핀 카지노호텔 사업에 170억 투자’라는 공시를 믿고 10억 원을 투자했다가 전액을 날리기도 했다. 한 리츠회사 관계자는 “솔직히 ‘다산리츠’ 같은 회사가 어떻게 상장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회사도 문제지만 국토해양부와 회계법인, 한국거래소가 다 한통속 아니겠느냐”며 “국내에서 영업 중인 리츠회사 대부분은 수익률이 좋지 않다. 무턱대고 투자했다간 큰 화를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코스피 시장에까지 조폭 세력이 개입하고 횡령을 일삼아온 것이 드러나자 정부는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대책을 추가로 내놨다. 국토해양부는 리츠의 영업인가 심사 강화와 퇴출 조건 확대, 준법감시인 역할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리츠 관리 강화방안’을 마련했다고 24일 밝혔다.
이번 사건을 통해 ‘모럴해저드’를 근절하겠다고 선언한 리츠협회는 “올해로 국내에 리츠가 소개된 지 10년이 됐다. 앞으로 자발적인 윤리강령을 준수하면서 투자자들의 신뢰를 반드시 회복할 것”이라며 최근 윤리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점차 조직적이고 지능화되어가는 조폭들의 금융시장 진출을 근절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김임수 인턴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