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대구국제육상경기대회 남자 창던지기에 출전한 박재명이 힘차게 창을 던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기록 종목인 육상은 이변이 드물다. 마라톤 경보와 같은 도로경기나, 바통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계주가 그나마 이변이 생기는 정도다. 한국은 역대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단 1개의 메달도 따내지 못했다. 김재룡이 남자 마라톤에서 4위(1993년), 이진택이 높이뛰기에서 공동 6위(1999년)에 오른 것이 입상기록의 전부다. 있지도 않은 톱10으로 의미를 확장해도, 김덕현의 세단뛰기 9위(2007년), 이명선의 여자 포환던지기 10위(1999년) 2개를 추가하는 수준이다.
2007년부터 2011팀을 만들어 10-10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60명(남자 33명, 여자 27명)의 선수를 내보낸다. 역대 최대 규모인데 이는 실력으로 출전권을 딴 것이 아니라 주최국 자격으로 모든 종목에 1명 또는 1팀이 출전할 수 있다는 혜택 덕이다. ‘톱10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일부의 지적이 일자 최근 육상경기연맹과 일부 언론은 ‘10개 종목에서 10명의 결선 진출’이라고 슬쩍 말을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말 자체가 설득력이 없다. 종목당 최고의 선수 1~2명만 출전하는 까닭에 10개 종목은 곧 10명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하면 동어반복이 될 뿐이다.
어쨌든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김현섭을 비롯, 남자 마라톤의 정진혁(20ㆍ건국대), 남자 110m 허들의 박태경(31), 남자 세단뛰기의 김덕현(26·광주광역시청), 여자 장대높이뛰기의 최윤희(25ㆍ SH공사), 여자 멀리뛰기의 정순옥(28ㆍ안동시청), 남자 창던지기의 박재명(30), 남자 장대높이뛰기의 김유석(29), 남자 400m계주 등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이 중에서 단 한 종목도 결선 진출을 장담하기는 어려운 처지다. 번외종목인 남자 마라톤 단체전(5명 출전 중 3명의 기록으로 순위 결정)만 입상 혹은, 메달이 유력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삼성전자 육상단의 조덕호 사무국장은 “물론 닥치면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곤 하는 한국인 특유의 저력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아쉽지만 <필드 앤 트랙>의 분석 기사는 객관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 사이 장재근이라는 걸출한 스타플레이어를 키워낸 박승배 전 청담고등학교 교장(전 대한육상경기연맹 강화위원장)은 다음과 같은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좋은 선수는 투자가 없으면 결코 나오지 않는다. 한국육상은 90년대 이후 실질적인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꼽히는 삼성그룹이 회장사를 맡고 있지만 그 의지가 의문스럽다.”
일부 육상인들은 해외전지훈련, 세계적인 지도자 영입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도 도무지 발전이 없는 한국육상이 기록에서도 꼼수를 부린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국육상은 2010년 6월 전국육상선수권대회에서 대표팀의 막내 김국영이 남자 100m에서 10초23으로 31년 만에 한국 신기록을 세웠다. 그런데 이후 도대체 여기에 근접한 기록이 나오고 있지 않다. 10초23이 최고기록이면 10초3대나 못해도 10초4대는 쉽게 뛰어야 하는데 신기록은 그날 하루만 빛을 발했다.
이에 한 육상인은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예전에는 기록을 내 포상을 받기 위해 100m의 출발과 골인 지점을 바꿔 뛰기도 했다. 뒷바람을 타면 기록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2010년 기록 경신도 위치를 바꾸지는 않았지만 당일 한계치(초속 2m)에 가까운 뒷바람의 도움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이런 식으로 기록을 세우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라고 비판했다.
유범진 전 중고육상경기연맹 회장도 “한국의 특성상 엘리트 체육의 기반인 학교체육이 중요하다. 그런데 요즘은 일선학교에서 육상부를 운영하는 것조차 꺼리는 경우가 많다. 괜히 골치만 아프고, 학교발전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시도교육청, 문화체육관광부 등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