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선거보단 부실선거에 무게, 가이드라인 부재시 처벌 애매…초박빙 때 불복 등 후폭풍 우려
논란이 계속 불거지자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직접 나서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시민단체에서는 노 위원장 등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수사기관에 고발했다. ‘부정선거’보다는 ‘부실선거’에 가까운 분위기인 탓에 형사처벌 가능성은 낮지만, 법조계에서는 선거 결과에 따라 후폭풍이 거세게 불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확진자 분리하다 불거진 부실 선거 논란
논란은 코로나19 확진자 투표 과정에서 불거졌다. 투표용지를 직접 투표함에 넣는 게 원칙이었지만, 일부 투표소에서는 선거 사무원들이 이를 직접 쇼핑백이나 바구니에 받아 보관하는 일이 발생했다. 실랑이는 전국 곳곳에서 발생했다. 이 밖에 유권자들에게 이미 기표된 투표지가 주어지는 일도 있었다. 중앙선관위는 즉각 해명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논란과 관련해 “일반인과 확진자 동선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투표소 입구나 외부 임시 기표소에서 투표하도록 하고 있다. 확진자들의 경우 투표소 안에 들어갈 수 없어 정당에서 나온 참관인들의 입회하에 선관위 사무원들이 기표한 용지를 받아 투표 관리관에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비판은 거셌다. 법에 규정된 비밀투표, 직접투표 원칙에 위배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현행 공직선거법 158조에는 ‘투표용지와 회송용 봉투를 받은 선거인은 기표소에 들어가 투표용지에 1명의 후보자를 선택해 투표용지의 해당 칸에 기표한 다음 그 자리에서 기표 내용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아니하게 접어 이를 회송용 봉투에 넣어 봉함한 후 사전투표함에 넣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직접·비밀 투표 과정을 서술한 것으로, 이 기준에 따르면 선관위의 선거 관리 과정을 명백히 위법했다. 특히 사전투표 당일 노정희 위원장은 출근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선관위의 ‘관리 부실’은 도마 위에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도 8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오미크론 대유행으로 9일 본투표에서는 사전투표 때보다 훨씬 많은 확진자들의 투표 참여가 예상된다”며 “선관위는 사전투표 관리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교훈으로 삼아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 확진자들의 투표권 보장에 빈틈이 없도록 해주시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논란 이틀 만에 고개 숙인 노정희 위원장
결국 8일,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사전투표 혼란에 대해 직접 사과의 뜻을 밝혔다. 노 위원장은 8일 과천 선관위 청사에서 “5일 실시된 확진자 및 격리자 선거인의 사전투표관리와 관련하여 미흡한 준비로 혼란과 불편을 끼친 점에 대해 위원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또 “코로나 확진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투표에 참여해 주신 유권자들께 감사드리며, 불편과 혼란을 겪으신 유권자 및 현장에서 고생하신 분들께 거듭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선관위의 부실 선거 관리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대한변협은 6일 “직접·비밀투표라는 민주주의 선거의 근본 원칙을 무시한 이번 사태는 주권자의 참정권을 크게 훼손했다”며 “민주주의는 국민의 비밀·직접 투표에서 시작되는데, 이번 사태는 이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다. 국가 최고 지도자를 선출하는 대통령선거에서 이 같은 선거사무 진행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선거관리위원회와 일부 우리 사회의 인식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조악하고 구태한 선거행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체적인 관리 책임자인 선거관리 당국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시민단체들의 고발도 이뤄졌다. 다수의 시민사회단체들은 노정희 위원장 등 선관위 관계자들을 대검찰청이나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직권남용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는데, 이들은 “이번 사태가 단순히 선관위의 관리 부실 차원이 아니라 엄연한 법령 위반행위”이라고 설명했다. 유권자들이 직접 투표함에 기표한 투표지를 넣지 못하게 한 점이나, 투표지를 쇼핑백이나 쓰레기봉투, 바구니 등에 담아 타인에게 노출할 가능성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다만 법조계는 실제 형사처벌 가능성에 대해서는 ‘낮다’고 보고 있다. 대통령이 유감을 표했고, 선관위도 스스로 잘못을 인정할 만큼 비밀·직접선거 원칙 훼손 사례에 해당하지만 형사적으로 처벌하기에는 애매한 지점이 있다는 설명이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형사처벌을 하려면 상식 밖 결정 과정이 현장에 있던 선관위 사무원들의 판단이었는지, 참관인들이 동의했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또 보관 방법에 대한 선관위 측의 가이드라인은 어떠했는지를 모두 확인하고 의사결정권자를 추려야 한다”면서도 “투표소마다 제각각 이뤄진 보관 방법 등을 고려할 때 적절한 가이드라인이 부재했던 것 같은데 만일 그렇다고 하면 이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딱 적용해 처벌하기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판사는 “선관위에서 조직적으로 부실한 관리를 했다고 볼 여지가 입증되어야만 처벌이 가능할 텐데, 코로나19 확진을 막아야 한다는 목적성과 피해 정도까지 고려할 때 현재 언론 보도에 나온 사실관계만으로는 형사처벌까지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선거 결과가 변수다. 아직 본투표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표 차이가 크게 나지 않을 경우 부실 선거를 명분 삼아 불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부실선거로 볼 수 있는 명백한 실수를 제공한 게 선관위인 탓에 책임론은 거셀 것으로 보인다.
앞선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대법관들을 선관위원장에 앉히고 ‘독립된 관리기구’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게 선관위 관련 인사 흐름인데 그게 정말 관리하는 데 중립성을 더 부여한다고 국민들이 믿겠느냐”며 “선거에 국민이 원하는 것은 공정한 선거, 부정선거의 여지가 없는 철저한 관리 속 치러지는 선거다. 지금 선관위는 그 부분에서 철저하게 빈틈을 노출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한쪽이 100만 표, 3% 이상의 격차로 승리하면 단순한 책임론 및 재발 방지로 넘어갈 수 있지만 만일 격차가 초박빙 승부로 치러지면서 패배한 쪽에서 이를 명분 삼아 불복이라도 한다면 선관위도 수사 및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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