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구아트 사무실. 영구아트가 폐업 위기에 몰리자 심형래를 둘러 싼 각종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강서구 오곡동에 위치한 영구아트 사무실과 스튜디오는 황폐할 정도로 방치돼 있었다. 사무실 문은 굳게 잠겨있고, 스튜디오에는 먼지만 쌓인 채 여기저기 압류 통지서들이 눈에 띌 뿐이었다.
영구아트에 이상 기류가 감지된 것은 엉뚱하게도 <디 워>를 통해 영구아트의 뛰어난 CG와 미니어처 실력을 인정받고 흥행에서도 성공을 거둔 직후였다. 몇몇 퇴직 직원들을 통해 심형래와 관련된 의혹들을 풀어봤다.
“그 즈음에 (심형래) 사장님이 정선 카지노에 자주 다닌다는 얘기가 회사에 떠돌았어요. 오죽하면 직원들이 강하게 사장님을 만류했을 정도니까요.”
퇴직 직원들에 따르면 심형래가 정선 카지노를 자주 다닌 시점은 최근이 아닌 <디 워> 개봉 이후라고 한다. 처음엔 소문으로만 떠돌았지만 하나 둘 정황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그 즈음 심형래가 유독 강원도 정선 소재 은행에서 발행한 수표를 자주 사용하자 이를 의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직원들이 하나 둘 생겨난 것. 더욱 결정적인 부분은 심형래를 픽업하기 위해 영구아트 사무실 앞에 종종 나타난 고급 리무진이었다.
“(심형래) 사장님은 본래 운전을 남한테 맡기지 않고 직접 하는 편이에요. 외국 나가려고 공항 갈 때만 운전을 남한테 맡겼는데 그것도 차를 공항에서 가져올 사람이 필요하니까 그런 거죠. 그런데 언제부턴가 고급 리무진이 종종 회사로 오고 사장님이 그걸 타고 나가시곤 했어요. 당연히 직원들 사이에선 그 리무진의 정체가 화제가 되면서 그게 정선 카지노에서 보내준 거라고 알려진 거죠.”
그렇지만 심형래의 정선 카지노 출입이 최근까지 이어진 것은 아니라고 한다. 심형래의 정선 카지노 출입 관련 소문이 떠돌기 시작하고 한 매체에서 S라는 이니셜로 기사까지 나오자 심형래는 정선 카지노 출입을 중단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항간에 제기되고 있는 의혹처럼 영구아트가 심형래의 상습 도박으로 인해 폐업 위기에 몰린 것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
▲ 압류통지서가 붙은 미니어처 보관실(왼쪽). 영구아트의 각종 미니어처(오른쪽). |
<라스트 갓파더> 제작에 돌입하면서 회사 분위기는 더 애매해졌다. 영구아트 직원 대부분은 한국형 괴수 SF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모여 있는 이들이다. 그런데 <디 워> 차기작이 코미디 영화로 정해진 것. 그럼에도 대부분의 직원들은 심형래의 코미디에 대한 애정을 알고 있는 터라 적극 협조했다. 다만 문제는 미국에서 대부분의 촬영이 이뤄진다는 점이었다.
“<라스트 갓파더>를 미국에서 촬영했는데 미국은 영화스태프 노조가 막강해 미국에서 촬영하는 모든 영화는 미국 현지 스태프를 고용해야 해요. 그렇게 미국 스태프와 함께 <라스트 갓파더> 촬영이 이뤄지는 동안 영구아트 직원들은 한국에 방치됐어요. 직원들이 차기작을 미리 정해 한국에서 차기작 준비에 돌입하자는 의견을 냈지만 묵살당하고 말았죠.”
당시만 해도 <디 워> 성공으로 투자가 원활한 편이라 월급이 밀리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문제는 <라스트 갓파더>가 흥행에 참패하면서 시작됐다. 2010년은 최악이었다. 12개월 가운데 8개월 동안 월급이 지급되지 못한 것. 다시 월급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2011년 초 또 두 달 치 월급이 체불됐다. 2년 동안 총 10개월 치 월급이 지급되지 못했다.
“올 초에 다시 월급이 나오지 않자 몇몇 직원들이 퇴사했어요. 직원들 사이에선 이미 영구아트의 회생이 어려워진 게 아니냐는 말들도 나돌았어요. 그때 사장님이 ‘나를 믿고 한 번만 따라와 달라’고 했어요. 회사 부지만 처분하면 밀린 월급과 퇴직금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지만 지금 처분하면 더 이상 영화를 못 만들 수도 있다고 눈물까지 흘리며 믿어달라고 했어요. 우린 한 번 더 믿었죠. 그만큼 사장님을 믿었던 터라 사실 지금 상황도 잘 믿어지지 않을 정도예요.”
그렇지만 이미 그 당시 오곡동 소재 영구아트 사무실과 스튜디오 부지는 80억여 원의 담보대출이 설정돼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직원들이 권고 사직한 7월에는 몇 건의 압류에 이어 임시경매개시 결정까지 내려져 있었다.
“직원들이 사장님을 믿기로 하고 다시 업무에 복귀했지만 그때부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어요. 차량 등 회사 물품을 처분하기 시작했거든요. 직원들이 폐업하려는 거냐고 물었지만 위에선 절대 아니라고 그랬어요. 그 즈음 사장님도 이혼하시고.”
심형래가 이혼했다는 얘기는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이에 기자가 재차 이혼 여부를 물었더니 이 말을 들려준 퇴직 직원은 정확히 이혼했는지 여부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 즈음 심형래가 몇몇 직원에게 ‘내일 이혼 서류 작성하러 간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창 영구아트가 직원들 몰래 폐업을 준비하는 과정에 이혼 얘길 들었기 때문에 퇴직 직원들 사이에선 폐업과 부도 준비 과정의 하나로 위장 이혼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던 것이다.
심형래 측이 매스컴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어 직원들이 알고 있듯이 실제로 이혼했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확인 결과 심형래의 자택은 부인과 공동 소유로 돼 있었다. 실제로 이혼한 것이 아니라면 어떤 이유로 심형래가 직원들에게 이혼한다고 언급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한편 영구아트 퇴사 직원 일부가 지난 2일 오곡동 소재 영구아트 회사 뒤편 공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심형래 도박설과 관련해 구체적인 정황들을 밝힌 퇴사 직원들은 심형래가 가스총을 개조해 불법 총기를 제작해서 사용했다는 점, <디 워> 등 영화의 제작비가 부풀려졌다는 점 등의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심형래가 여자 연예인과 기업인 등 정관계 인사의 해외여행에 주선했다는 소문에 대해서는 “회사 재직 당시에도 그런 소문이 돌긴 했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고만 밝혔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김임수 인턴기자 imsu@ilyo.co.kr
폐업이냐 장르변화냐 ‘아리송’
▲ 2003년 심형래 사장이 <디워> 제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노무사를 통해 확인한 결과 반드시 폐업 신고를 해야 체당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회사가 6개월 이내에 체불 임금을 정산할 수 없는 상태여야 한다. 행여 영구아트가 회사 시스템 변화 차원에서 40여 명의 직원을 권고사직시킨 것이며 정상적으로 차기작 <유령도둑>을 제작할 경우 권고 사직한 직원들은 체당금을 받지 못한다. 회사(영구아트)가 신규사업(차기작 제작)을 진행할 수 있다면 체불 임금도 정산할 수 있다고 판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말 매스컴을 통해 영구아트 폐업설이 대두됐다. 그 즈음 직원 40여 명이 권고사직으로 회사를 떠났지만 이런 구체적인 상황까지는 알려지지 않았었다. 당시 영구아트 김민구 팀장은 “회사 시스템 변화가 폐업으로 와전된 것으로 차기작도 정상적으로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김 팀장은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선 “가족들과 저녁 식사 하러 나왔다가 루머를 듣고 어이가 없었다. 폐업하게 됐다면 지금 가족들과 한가롭게 외식하러 나왔겠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즈음 대부분의 직원들은 권고 사직서를 쓴 뒤 짐을 챙겨 하나 둘 회사를 떠나고 있었다.
퇴직 직원들이 노동청에 진정서를 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김 팀장은 연락두절이다. 또 다른 심형래의 측근인 영구아트 최성호 이사를 영구아트 사무실 앞에서 어렵게 만날 수 있었지만 역시 묵묵부답, 나중에 “죄송합니다”라는 문자만 보내왔을 뿐이다. 현재의 상황이 시스템 변화인지 폐업인지 설명해줄 창구가 닫혀 있는 것. 심형래는 한 매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아직은 할 말이 없다. 작품을 준비하고 있으니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답했다.
시스템 변화란 영구아트가 괴수물 등의 SF 영화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영화사에서 코미디 영화를 주로 제작하는 회사로의 변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영구아트는 <라스트 갓파더>에 이어 차기작 역시 코미디 영화인 <유령도둑>을 준비 중이었다. 더 이상 CG와 미니어처 등의 고급 기술이 접목된 SF 영화가 아닌 코미디 영화를 주로 제작하는 방향으로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것. 이 과정에서 기존 직원 40여 명의 권고사직이 이뤄졌다.
지난 2일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퇴직 직원은 “우리가 노동청에 진정한 내용이 보도되자 사장 측근 간부들이 일부 퇴직 직원들에게 전화해 새 영화를 준비 중인데 선배 직원들이 일을 벌여 어렵게 됐다는 식으로 얘길 했다더라”며 격분했다.
퇴직 직원들의 입장도 ‘체당금이라도 받게 해달라’에서 ‘체불 임금 및 퇴직금 지급과 심형래의 공식사과’로 변했다. 이 과정에서 퇴직 직원들은 <라스트 갓파더> 제작을 위해 미국에 설립한 법인에 현금이 있을 가능성, 심형래가 그의 형 등 가족을 통해 돈을 빼돌렸을 가능성 등의 의혹까지 제기하고 나섰다. [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