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황보관·강신우 합류 시절 존재감 보여…“수업 모두 듣고 훈련, 시험 망쳐도 안 봐줘”
하지만 서울대라고 해서 모든 분야에서 좋은 결과만 내는 것은 아니다. 엘리트 선수 위주가 아닌 동아리 형태로 운영되는 서울대 운동부는 항상 약체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서울대 야구부는 창단 이후 200경기 가까이 승리하지 못한 것으로 유명세를 떨친 바 있다. 축구부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대 축구부는 대학축구 리그인 U리그에서 2009년 첫 참가 이래 최하위를 벗어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수준이다.
현재는 패배가 자연스러운 서울대 축구부지만 한때 이들도 화려했던 시절이 있었다. 엘리트 축구 선수들을 다수 선발하던 1980년대를 전후로는 전국 단위 대학축구대회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등 '다크호스'로 군림했다. 강신우, 이용수, 황보관 등 유명 축구인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추억은 서울대 축구부 OB 모임에서 이어지고 있다. 추억 속의 주인공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대 축구부의 황금기
봄기운이 완연한 지난 12일, 서울 성동구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한쪽 가슴에 서울대 정문 특유의 문양이 박힌 유니폼을 입은 중년 남성들이 모여들었다. 서울대 축구부 OB 모임 멤버들이었다. 선수생활을 마무리한 지 20~30년 세월이 흘렀지만 이들은 그동안에도 이따금 손발을 맞춰왔다. 이날은 성동구 50대 생활체육 연합팀과 친선경기를 가졌다.
1940년대부터 창단돼 명맥이 이어져온 것으로 알려진 서울대 축구부가 본격 존재감을 드러낸 시기는 1970년대다. 당시 '동일계열 선발전형'이라는 입시제도가 탄생하며 축구 명문으로 불리던 서울체육고등학교의 엘리트 학생들을 데려오면서 팀의 전력이 강화됐다. 이때 서울대에 합류한 이들이 강신우 해설위원,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황보관 대한축구협회협회 대회기술본부장 등이다.
서울체고 외에도 각 지역의 체고에서 선수들을 선발했다. 동일계열 선발전형 이외로도 입학한 학생들 중 테스트를 거쳐 축구부원으로 충원했다. 동아리 형태로 운영되던 축구부의 전력이 급격히 상승했다.
제주 오현고등학교의 존재도 축구부 전력 상승의 한 축을 담당했다. 최종학 씨(82학번)는 "오현고 축구부 학생들도 한 해에 2~3명씩 입단했던 것 같다. 당시 오현고는 축구부원들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보기 드문 학교였다. 그래서 일부 선수들이 서울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축구부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축구 명문대학과 경기도 대등하게 치렀고 대회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서울대 '화려한 시절'의 후반부를 함께했던 최상혁 씨(86학번) 는 "열심히 훈련을 한다고 하더라도 기량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엘리트 선수들이 들어오면서 서울대 전력이 강해진 것"이라며 "황보관 선배는 졸업 이후 국가대표로 선발돼 월드컵까지 뛰었던 스타 플레이어였고 최종학 선배는 대학 1학년 시절 청소년 월드컵에 참가했다. 프로무대에도 다수 선수들을 배출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동일계열 선발전형이라는 제도가 사라지고 서울체고도 축구부 운영을 중단하자 서울대 축구부 전력도 약화됐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까지도 서울대 축구부는 꼴찌를 도맡아 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최상혁 씨는 "축구를 전문적으로 하던 다른 학교들에 비해 부족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수비를 할 때면 언제나 맨투맨 수비 전술만 사용했다. 부족한 개인 기량을 팀워크로 만회해야 했다. 그래도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던 팀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팀 전력이 약화되며 이들의 관심사는 다른 쪽으로 흘러갔다. 최 씨는 "일반 축구부들이 나서는 대회에선 역부족이 됐다. 그때부턴 국립대 체육대회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대회가 됐다(웃음). 마치 고려대나 연세대가 연고전에 집중을 하듯이 말이다. 국립대 체육대회에서만큼은 우리가 강자였다"라며 웃었다.
#공부하는 운동선수
서울대 축구부 출신 인사들은 사회 각계 각층에 분포해 있다. 황금기 시절 선수들은 엘리트 선수 출신이기에 졸업 이후로도 선수 커리어를 이어나가기도 했다. 그 외 선수들은 체육교육과 졸업 이후로 상당수가 교편을 잡기도 했다.
서울대 축구부를 대표하는 인사인 이용수 부회장, 황보관 본부장은 나란히 대한축구협회 임원을 맡고 있다. 이 부회장은 교수, 황 본부장은 구단 프런트로도 오랜 기간 활약했다. 이외에도 스포츠 에이전시, 종목 단체, 기업 등 다양한 분야에 서울대 축구부 출신 인물들이 분포해 있다.
김경수 중등축구연맹 회장(78학번)은 축구부 출신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는 이유로 '학창 시절의 공부'를 꼽았다. 그는 "서울대 축구부는 그 당시에도 수업이 우선이었다. 각자 수업을 모두 마치고 오후 4~5시나 돼야 모여서 훈련을 시작했다. 오직 축구에만 '올인'하는 당시 세태와 달랐다"며 "어떻게 보면 앞서나간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학교 운동부 현장은 학생들의 공부와 관련한 고민이 많다. 서울대 축구부는 이미 40년 전에 공부를 우선하는 형태로 운영이 됐다"고 말했다.
한때 축구부의 전력이 강했다고 해서 동아리였던 운영 형태가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대회 참가 등 특별한 사유를 제외하면 선수들은 훈련을 이유로 수업에 빠질 수 없었다. 시험을 망쳐도 축구선수라고 해서 구제해줄 방법도 없었다. 축구부 예산은 학교의 동아리 지원금이 전부였고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대회가 열릴 때면 선수들은 지하철을 타고 집결했다.
U-20 대표팀 일원으로 세계 대회에 나서고 졸업 이후 프로에 입단해 선수 커리어를 이어나갔던 최종학 씨가 서울대를 선택한 이유는 공부였다. 그는 뒤늦은 시점인 고등학교 2학년 때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축구 선수로선 불리한 부분일 수 있었지만 되레 서울대 입학에는 유리하게 작용했다. 다른 축구 선수들과 달리 학교생활을 지속하고 있었기에 학력고사를 보는 데 도움이 됐다.
"다른 것보다 축구 선수 생활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와 서울대를 선택했다. 각자 수업을 듣고 모여 운동을 하는 시스템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운동이 끝나면 다시 기숙사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합숙은 방학기간 등에만 짧게 진행했다. 대부분 운동선수들이 학창 시절 추억이 없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 하루 한 번 운동을 제외하면 각자 자유시간이었다. 공부할 사람은 공부하고, 놀 사람은 놀고, 미팅하거나 애인 만나는 친구들도 있었고(웃음)."
그는 다만 오직 선수 커리어만 고려하는 이들에게는 당시 서울대 축구부 시스템은 '고민해볼 문제'라고 짚었다. 그는 "졸업 이후 프로(울산 현대)와 실업에서 5년 동안 축구 선수로 뛰었다. 학창 시절 대학 4년까지 축구만 해왔던 선수들과 경쟁을 해보니 '축구만 하는 대학에 갔더라면 더 잘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확실히 차이가 있었을 것"이라며 "프로나 실업은 어린 시절 기른 기량을 펼쳐 보이는 곳인데 나는 좀 더 경기력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느꼈다. 은퇴를 마음먹은 선수 5년 차가 돼서야 축구가 보이더라. 감독도 그만둔다는 나를 말리더라"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실 나의 최종 목표는 교수였다. 선수생활을 하면서 대학원도 다녔고 그래서 미련없이 축구화를 벗었다. 하지만 엘리트 선수 육성이 목표라면 좀 더 축구에 몰입하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공부하는 운동선수가 요즘 현장에서 화두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교육 당국이나 축구협회 등이 깊이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니폼을 맞춰 입은 서울대 축구부 OB 멤버들은 한 입으로 한 인물을 추억했다. 36년간 축구부 지도교수를 맡았던 고(故) 김의수 교수(2020년 작고)다. 멤버들은 한결같이 김 교수 덕분에 당시 축구부의 틀을 잡을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이어져 올 수 있었다고 전했다. 최상혁 씨는 "축구부원들은 교수님을 '대부님'이라고도 한다. 우리를 잘 이끌어주셨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나 도와주셨다"고 설명했다. 최종학 씨는 OB 모임도 김 교수의 뜻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전에도 모임이 있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결속이 약해지던 상황이었다. 그때 교수님께서 황보관 선배에게 OB 모임 회장, 나에게 단장직을 맡기셨다"며 "이후 1년에 한 번씩은 재학생들과 경기를 펼치고 후원도 한다. 교수님의 뜻을 우리가 잘 이어가보려 한다"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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