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총공세 국면전환 노려, 국민의힘서도 반신반의…당선인 측 취임 전 완료 입장 속 출구전략 목소리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윤석열 당선인은 후보 시절 ‘청와대 슬림화’를 언급하긴 했지만 주요 현안으로 다뤄지진 않았다. 그런데 대선이 끝난 후 ‘집무실 이전’은 윤 당선인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임기 시작 전 집무실을 옮긴다는 목표 아래 속도전에 돌입했다. 1992년 대선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이 처음 공약한 이후 번번이 무산됐던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이번엔 현실화가 유력해졌다.
집무실이 이전하면 청와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대신 대통령실이 그 자리를 채운다. 기존 청와대는 국민들에게 개방할 예정이다. 불필요한 인력과 부서는 없애고, ‘민관 합동’으로 일하는 대통령실로 운영한다는 게 윤 당선인 구상이다. 윤 당선인은 후보 때 영부인을 담당하는 2부속실 폐지를, 당선 후엔 민정수석실 폐지를 밝힌 바 있다. 집무실 이전을 임기 시작 전 마무리 지으려는 것도 국정 운영 공백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이를 놓고 민주당은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다. 포스트 대선 정국이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은 집무실 이전 이슈를 최대한 띄워 국면 전환을 노리겠다는 전략이다. 집무실 이전을 서두르는 것에 대한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 민주당 초선 의원은 “윤석열 당선인 지지자들 중에서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면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우리에게 호재가 될 것 같다”고 귀띔했다. 민주당 강경 모드엔 대선 후 책임론을 둘러싸고 어수선한 당내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한 의도도 깔렸다는 분석이다.
민주당은 투트랙 전략을 세웠다. 우선 집무실 이전 추진 시기 및 방법에 대한 지적이다. 앞서의 초선 의원은 “이사 갈 곳도 없는데 우선 짐부터 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충분히 논의해서 풀어야 할 사안을 윤 당선인이 너무 서두르고 있다는 뜻이다. 전재수 민주당 의원도 3월 1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일의 우선순위를 분간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경제와 민생이 우선”이라고 했다.
동시에 윤 당선인이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집무실 이전을 강행하는 부분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공약을 지키겠다는 건 좋은데 임기 전부터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다” “보여주기 식 이벤트” 등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집무실 이전에 다른 속내가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3월 17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국방부 부지는 (국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윤 당선인 측이 집무실 이전 이유 중 하나로 국민들과의 소통을 내건 데 대한 반박이었다.
민주당에선 여러 의혹을 동시에 꺼냈다. 풍수지리도 그중 하나다. 윤 당선인 측이 풍수 때문에 집무실을 옮기려 한다는 것이다. 과거 몇몇 풍수 전문가들은 청와대 터의 기운이 좋지 않아 역대 대통령들이 불운을 겪었다고 주장했었다. 윤호중 민주당 비대위원장은 “일각에서는 풍수가의 자문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대선 때 주술 논란에 휩싸이며 도마 위에 올랐던 윤 후보로선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3월 17일 통화에서 김건희 씨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는 “청와대로 들어가면 ‘영부인 김건희’의 존재는 임기 내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밖에 없다. 본인이 기자회견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겠다고 한 게 오히려 더 발목을 잡을 수 있다”면서 “청와대를 없애고 일하는 집무실로 개편한다는 것 자체가 ‘김건희’ 이름 석 자를 지우기 위한 꼼수 아닌가라는 의심이 든다”고 했다.
민주당 일각에선 ‘광화문 집무실’을 선언했다가 이를 지키지 못한 문 대통령과의 차별화 연장선상 아니냐는 시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앞서의 민주당 중진 의원은 “이유가 어찌됐건 졸속으로 하려다 보니 이런 온갖 말이 나오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앞으로 주요 국정 현안을 이런 식으로 처리할까 걱정이 된다. 윤 당선인은 집무실 이전과 관련해 세간에서 나오고 있는 말들을 잘 귀담아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청와대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3월 17일 페이스북에 “당선인의 청와대 이전에 전혀 의견이 없다”면서도 “여기(청와대) 안 쓸 거면 우리가 그냥 쓰면 안 되나 묻고 싶다”면서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박수현 국민소통수석도 페이스북에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동의 거리가 멀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몰라도 너무 모른다”면서 윤 당선인 측을 우회적으로 꼬집었다.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도 통화에서 “윤 당선인은 선거 승리 후 통합을 천명했다. 그런데 지금 광화문 이전을 두고 다시 여론은 둘로 갈라졌다”고 했다.
윤 당선인 주변과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정권 이양기에 할 게 산더미인데 왜 갑자기 집무실 이전에 힘을 쏟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선 때부터 윤 당선인을 도왔던 임태희 인수위 특별고문은 3월 1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정말 국정에 시급하고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면서 “집무실 이전 시기에서 완급을 조절하는 게 맞다”면서 속도조절론을 꺼냈다.
풍수지리 얘기도 나왔다.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3월 17일 CBS 라디오 ‘한판승부’에서 “군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국방부로 가면 제왕적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라면서 “누가 봐도 용산으로 간다는 것은 풍수지리설을 믿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민주당은 말할 것 없고, 우리 쪽에서도 조마조마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 설마 풍수 때문에 집무실을 옮기는 것은 아니겠지만, 괜한 빌미를 준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라고 했다.
민주당과 청와대는 물론 국민의힘 안팎에서조차 곱지 않은 여론이 조성되자 윤 당선인 측은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임기를 새로운 집무실에서 시작하겠다는 계획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주변에선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임태희 고문이 언급한 것처럼 시기를 늦추거나 또는 단계적으로 이전을 추진하는 방안도 그 중 하나다.
하지만 윤 당선인 측에선 밀릴 수 없다는 분위기가 더 강하다. 당선인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사안인데 정치 공세에 밀려 한 발 후퇴할 경우 정권 초반부터 국정 장악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역대 여러 대통령들이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지키지 못했던 만큼, 윤 당선인이 이를 성사시킬 경우 그 역사적 의미가 남다를 것이란 기대도 읽힌다.
윤석열 당선인 측 관계자는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는 공약을 지키겠다는 것인데, 반대 여론이 높아 조금 당황스러운 건 사실”이라면서 “민주당의 억측, 과도한 비용에 대한 오해 등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윤 당선인이 직접 국민들에게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했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권력의 정점이었던 청와대를 해체하는 일이다. 큰 방향은 맞다. 쉽지 않겠지만 결국엔 긍정적 평가가 나올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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