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시즌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다. 20여 경기를 남기고 순위가 뒤바뀌는 사례도 있어 4강 진출 티켓은 마지막까지 안심할 수 없다. |
“정규 시즌 1위가 목표다.” 삼성 류중일 감독의 취임사는 그랬다. 취임식장에 있던 기자들은 하나같이 “초짜 감독의 목표가 너무 야무지다”며 웃었다. 류 감독도 “목표가 너무 높았나”하며 멋쩍어했다. 하지만, “작년 팀이 한국시리즈 준우승까지 했는데, 신임 감독이 그 아래로 목표를 잡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게 아니냐”며 “꼭 지켜보라”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그로부터 9개월이 흐른 지금. 류 감독의 목표가 현실이 되고 있다. 삼성은 7월 이후 계속 1위를 달리고 있다. 2위와는 4, 5경기 차를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 야구전문가는 “삼성의 독주가 시즌 종료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만약 삼성이 정규 시즌 1위가 된다면 2006년 이후 5년 만의 한국시리즈 직행이 된다. 주전급 선수들의 부상이 다른 구단에 비해 덜하고, 막강한 투수진이 건재한 삼성이기에 한국시리즈에 직행하면 우승 확률도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류 감독은 아직 조심스러운 눈치다. “야구는 9회가 끝날 때까지 승패를 알 수 없는 스포츠다. 정규 시즌도 마찬가지다. 갑작스레 연패를 당하면 언제 2위로 추락할지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자만이 아니라 긴장이다.”
그렇다고 류 감독이 무조건 선수들을 옥죄는 건 아니다. 류 감독은 벌써 포스트 시즌을 대비하고 있다.
“정규 시즌 1위 싸움에만 집중했다간 자칫 주전선수들이 부상을 당할 수 있다. 마지막까지 온 힘을 다하면서 주요 선수들의 체력 안배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래야 포스트 시즌에 올라가도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류 감독은 삼성의 정규 시즌 1위가 확정되면 곧바로 한국시리즈 준비에 들어갈 작정이다. 삼성 관계자들이 “류 감독에게서 조바심이나 압박감은 찾아볼 수 없다. 10년 차 감독처럼 노련함이 느껴진다”고 평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셈이다.
# 롯데 양승호 감독
류 감독처럼 시즌 초 목표를 무리하게 잡았던 초보 사령탑이 있었다. 롯데 양승호 감독이다. 양 감독은 시즌 전 “롯데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려면 준플레이오프가 아닌 최소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해야 승산이 있다”며 “우리의 목표는 정규 시즌 2위 이상”이라고 공표했다.
5월까지만 해도 양 감독의 발언은 공표가 아니라 공수표에 가까웠다. 2위는 고사하고 4위 권 밖으로 밀리며 하위권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반기부터 롯데는 극적인 상승세로 1079일 만에 2위까지 올랐다. 강타선이 살아난 데다 최대 약점으로 꼽힌 불펜진마저 탄탄해진 까닭이었다.
한때 롯데 팬들의 ‘탄핵’ 압박에 시달렸던 양 감독은 지금은 ‘롯데의 구세주’로 통하고 있다. 양 감독은 “코칭스태프의 부족한 면을 선수들이 메워줬다”며 “잦은 작전과 통제 대신 선수들을 신뢰하고, 선수들의 창의력을 믿었던 게 2위까지 오른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양 감독은 이참에 정규 시즌 1위까지 도전하겠다는 자세다. 양 감독은 “원래 계획대로 플레이오프 직행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삼성과의 승차가 2, 3경기 차로 좁혀지면 모든 역량을 투입해 1위 싸움에 매달릴 것이다”라며 속내를 털어놨다.
양 감독은 최근 숙면을 취하고 있다. 시즌 중반만 해도 부진한 팀 성적 때문에 밤잠을 설친 그였다. 내일 야구장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눈이 감기지 않았다. 하지만, 양 감독은 “요즘은 오늘 져도 내일 이긴다는 확신이 있다”며 “잠자리에 누우면 ‘내일은 어떤 멋진 경기를 펼칠까’ 기대가 된다”며 환하게 웃었다.
# KIA 조범현 감독
KIA 조범현 감독은 우울하다. 하루가 다르게 팀이 추락하는 까닭이다. 그도 그럴 게 KIA는 8월 14일부터 20일까지 6연패했다. 그리고 다시 3연패와 2연패를 경험하며 순위가 3위까지 내려앉았다. 주전 선수들의 부상, 선발과 불펜진이 동시에 부진하며 좀체 팀 성적이 오르지 않고 있다.
“팀을 이끌려면 어느 정도 계산이 서야 하는데, 주전선수들의 부상이 이어지면서 전혀 계산을 하지 못하고 있다. KIA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이렇게 힘든 시즌은 처음이다.” 조 감독의 진심이다. 하지만, 조 감독은 “그렇다고 무리수를 던질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부상선수들을 억지로 1군에 등록시킬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조 감독은 허벅지 부상으로 재활 중인 이범호와 어깨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간 손영민에게 “충분히 몸을 만들고서, 1군으로 올라올 것”을 지시했다.
“정규 시즌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하는 건 어려워졌다.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면 좋겠지만, 그마저 확신할 수 없는 상태다. 4위로 준플레이오프에 나간다는 자세로 팀을 이끌 참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부상선수들도 천천히 몸을 만들고, 포스트 시즌에서도 힘을 낼 수 있다고 믿는다.”
조 감독에게 올 시즌은 중요한 해다.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며 3년 계약을 맺었지만, 지난해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올 시즌도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거나 플레이오프까지 오르지 못한다면 지도력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가뜩이나 팀 내 입지가 탄탄하지 않은 조 감독이다.
일부에선 벌써 “어차피 한국시리즈 우승에 실패할 바엔 호남 출신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며 조 감독의 조기 퇴진론을 요구한다. 그러나 조 감독은 그러한 움직임에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이다.
“감독은 성적으로 말해야 한다. 성적이 좋으면 ‘명장’, 나쁘면 ‘졸장’ 소릴 듣는 건 당연하다. 팀을 잘 추슬러 어떻게 해서든 4강까지 진출하겠다.”
KIA 모 코치는 “원래 일찍 잠자리에 드시던 감독님이 요즘엔 밤늦게까지 불을 켜놓고 계신다”며 “침체한 팀을 살리려고 새벽까지 오더와 작전을 짜신다”고 귀띔했다.
# SK 이만수 감독대행
SK 이만수 감독대행은 현역 시절 밤을 새운 적이 없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야구선수는 충분히 수면을 취해야 다음날 잘한다’는 지론 때문이었다. SK 코치가 돼서도 지론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감독대행이 된 이후로는 달라졌다. 불면의 밤이 계속 되고 있다.
8월 18일 김성근 전 감독이 전격 경질되며, 갑작스럽게 1군 감독에 승격된 이 감독대행은 숙면을 취한 적이 없다.
“김 감독님이 계실 때만 해도 팀이 2, 3위 싸움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4위로 떨어져 5위 LG의 맹추격을 받고 있다. 특히나 타선의 힘이 떨어져 골치가 아프다. 어디서부터 팀을 재건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다음날 경기 준비 때문에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
사실이다. 이 감독대행이 팀을 맡고서, SK의 추락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4달 동안 4번에 그쳤던 영봉패를 보름 동안 3번이나 당했다.
많은 야구전문가는 “SK 선수들 특유의 허슬플레이와 근성이 사라졌다”며 “팀 분위기가 되살아나지 않는 한 LG에게 추격을 당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최근 이 감독대행의 밤잠을 더 설치게 할 악재가 발생했다. 9월 중순 1군 복귀가 예상됐던 정근우의 부상이 예상 외로 심각하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7월 30일 정근우는 왼쪽 늑골 통증으로 2군에 내려갔다. 13일 만에 다시 1군으로 올라왔지만, 통증이 재발하며 9월이 넘도록 1군으로 승격하지 못하고 있다.
SK 모 코치는 “정근우의 왼쪽 늑골 부상이 심각한 것으로 안다”며 “잔여경기에서 뛰기 어려울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 감독대행은 ‘팀 전력의 절반’을 차지하는 정근우가 하루라도 빨리 부상에서 회복하길 고대하고 있다.
# LG 박종훈 감독
LG 박종훈 감독은 계절을 잊었다. 3, 4일을 간격으로 온탕과 냉탕을 번갈아 가며 들어가기 때문이다. 8월 27일부터 31일까지 4연승 했을 때는 온탕이었다. 4위권에서 멀어졌던 LG는 4연승을 바탕으로 승률을 4할9푼5리까지 올렸다. 4위에 4경기 차까지 따라붙었다. 하지만, 9월 1일부터 3일까지 3연패를 기록하며 냉탕에 빠졌다. 승률은 다시 4할8푼대로 떨어졌고, 4위와도 승차도 벌어졌다.
한때 박 감독은 팀 성적 부진으로 팬들의 청문회에 불려나가기도 했다. 모그룹으로부터 “생각보다 지도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0년 5년 계약을 맺었지만, 성적이 부진하면 언제 경질될지 모르는 국내 프로야구에서 박 감독의 부담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박 감독의 표정엔 여유가 넘친다. 특유의 부드럽지만 강한 어조로 “어떻게 해서든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겠다. 끝까지 LG의 비상을 지켜봐 달라”고 주문했다.
박 감독의 자신감엔 이유가 있다. 박현준, ‘작은’ 이병규, 이택근 등 주전 선수들이 부상에서 돌아오고, 선발과 불펜진도 다소 안정됐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LG 팬들의 숙원인 4강 진출을 반드시 이뤄 선수단과 팬들이 편히 발을 뻗고 잘 기회를 만들겠다”며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스트레스 덜 받겠다고? 헐~
선두와 4강 다툼을 벌이는 감독들의 여름밤은 ‘불면의 밤’이었다. 가을밤이라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 막중한 부담과 스트레스로 여름밤보다 잠을 이루기 어렵단다. 이는 하위팀 감독들도 마찬가지다.
“4강 싸움을 하지 않아 스트레스를 덜 받겠다”고 하면 당장 “스트레스는 우리가 더 받는다”며 발끈한다. 두산, 한화, 넥센 사령탑은 저마다 고민으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토로한다.
6위 두산 김광수 감독대행은 주변에서 “차라리 감독을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란 말을 자주 듣는다. 김 감독대행은 6월 중순 김경문 감독이 전격 자진사퇴하며 수석코치에서 감독으로 승격했다. 남들은 “꿈에 그리던 감독이 돼서 좋겠다”고 덕담을 늘어놨지만, 김 감독대행은 손을 흔들며 “반대”라고 주장했다.
그도 그럴 게 수석코치로 김 전 감독을 오랫동안 보좌했어도 실제 감독직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투수, 타격, 수비코치가 아닌 수석코치라 특정 분야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졌다.
실제로 김 감독대행은 ‘한 박자 늦은 투수교체’와 ‘타선의 침묵’으로 팬들의 지탄을 받곤 했다. 무엇보다 갑자기 감독대행을 맡으며 앞으로의 진로가 불투명해졌다. 감독 출신의 모 야구해설가는 “감독대행도 감독이다. 감독 출신 야구인이 다른 팀 코치로 가는 건 격이 맞지 않는다. 두산에서 정식 감독으로 임명하면 모르겠지만, 시즌 종료 후 새 감독이 선임된다면 김 감독대행의 거취가 불투명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부에선 “NC 김경문 감독의 부름을 받지 않겠느냐”고 예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칫 김 감독대행의 NC 행은 두산으로부터 “우리 팀 코칭스태프를 죄다 빼 가느냐”는 원망을 살 수 있다. 아군이 한 팀이라도 더 필요한 신생팀 NC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일이다.
김 감독대행은 “시즌 종료 때까지 포스트 시즌 진출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어느 감독이 와도 팀을 이상 없이 맡을 수 있도록 선수단을 잘 이끌고 가는 게 내 임무”라고 말해 정식 감독직에 연연할 생각이 없음을 밝혔다.
한화 한대화 감독은 올 시즌 목표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시즌 전 한 감독은 “승률 4할 이상이 목표”라고 선언한 바 있다. 그래서일까. 한 감독은 7위 팀 감독답지 않게 표정이 밝다. 하위권 감독 가운데 유일하게 잠도 푹 잔다고 한다. 한 감독은 “한화는 올 시즌보다 내년이 더 기대되는 팀”이라며 “내년엔 대형사건 한 번 터트릴 생각”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한화는 내년 시즌 전력 강화 차원에서 일본 프로야구에서 귀환한 김태균을 잡을 계획이다. 한화 모 관계자는 한 술 더 떠 “김태균 말고도 FA(자유계약선수) 선수를 한두 명 영입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화의 계획대로 된다면 내년엔 한 감독의 표정이 더 밝아질 수 있다.
8위 넥센 김시진 감독은 좌불안석이다. 창단 이래 첫 꼴찌를 차지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거기다 시즌 중 3년 재계약에 성공했지만, 여론의 반응이 영 시원찮다. 많은 넥센 팬은 “구단이 선수를 팔 때마다 김 감독이 적극 협조를 해줬다. 팀 성적보다 구단의 트레이드에 협조를 잘해줘 3년 재계약에 성공한 것”이라며 김 감독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김 감독은 “꼴찌만은 탈출하고 싶다”면서 “그러나 만약 꼴찌가 확정되면 팀 체질개선에 돌입하겠다”고 말했다.
넥센 내부에선 ‘올 시즌을 끝으로 베테랑 선수들이 대거 정리될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다. 선수들 사이에서도 ‘노장 타자와 투수 가운데 2, 3명이 은퇴 혹은 방출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퍼져 있다. 8위 팀 감독이지만, 내년 시즌까지 준비해야 하는 김 감독은 오늘도 밤잠을 설치고 있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