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날 내내 부부는 나를 놀라게 했다. 우선 거리로 분위기를 완전히 제압했다. 도저히 예순을 넘긴 시니어라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거리가 나왔다. 남편은 드라이버 거리가 250~260야드를 넘나들었고 부인은 200야드를 훌쩍 넘겼다. 18홀 동안 흔들림이 없었다. 골프를 제대로 배운 사람들은 이 정도 비거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절감한다. 젊은 남성들 중에 자신이 거리가 좀 나온다고 생각하는 아마추어의 비거리를 면밀히 조사해보면, 평균 220~230 정도다. 대부분 한두 홀에서 어쩌다 잘 맞은 거리를 자신의 비거리로 착각한다.
게다가 두 분은 놀랄 만큼 스윙이 부드러웠다. ‘저렇게 살살 치는데, 어떻게 거리가 나올 수 있지?’ 의문이 떠나질 않았다. 보통 구력이 쌓이면 퍼팅과 숏 게임은 웬만큼 뒷받침된다. 하지만 매 홀 안정적인 비거리는 구력과 비례하지 않는다. 보면서도 믿겨지지 않았다.
‘나이를 속였나?’, ‘매일 골프만 치나?’ ‘아! 매일 레슨을 받나보다!’
라운드 내내 혼자 생각이 많아졌다. 당연히 나는 무너졌다. 그들보다 젊다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유연한 스윙에 압도당해 오히려 점점 템포가 빨라졌다. 스윙에 힘도 잔뜩 들어갔다. 스코어가 말해줬다. 그날 남편은 75타, 아내는 80타를 기록했다. 나는? 밝힐 수 없다. 아직도 기억나는 참담한 스코어였다.
나중에야 알았다. 바로 그 부드러움이 비법이었다. 의문이 풀리지 않아서 마지막 홀에 두 분께 양해를 구하고 동영상 촬영을 해뒀다. 아카데미를 함께 진행하고 있는 김학서 프로께서 보시더니 한마디로 정리를 하셨다. “아! 이렇게 치면 나이 먹어도 거리 나지. 굉장히 천천히 치는 것 같지만 기본을 잘 지키잖아. 무리한 힘을 하나도 안 쓰고 자기 힘만큼만 제대로 쓰네.”
그 후로 나는 시니어 골퍼들이 두려워졌다. 특히 거리 나는 시니어 골퍼들이 무섭다. 그들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아니 나이가 있을수록 유리하다. 숏게임은 숏게임대로, 스윙템포는 템포대로 조절하는 프로대우 아마추어 어르신들을 조심하라! 혹시 우연히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시니어 골퍼와 조우해서 라운드하게 된다면, 절대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스윙할 때 그분보다 훨씬 더 힘을 빼야 한다. 젊다고 힘자랑하다 망신당할 수 있다.^^
SBS 아나운서 최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