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을 당한 사실을 SNS에 게시한 청소년, 남편의 불륜 사실을 말한 60대 주부, 학교의 비리를 알린 학생과 활동가, 성폭력 피해를 폭로한 20대 여성,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시위했던 아이 엄마. 이들은 모두 명예훼손으로 피의자가 됐다.
공익성을 겨우 인정받아 무죄를 받거나 그중 일부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결국 전과자가 됐다. 현행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사례를 추적하던 중 그간 언론에 알려진 것과 다른 상황을 접했다. 2015년 스포츠 스타 김병지 씨의 아들이 같은 반 친구를 폭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병지 씨는 피해자 측의 주장이 거짓이라 말하며 의혹을 제기한 학부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약 3년 뒤 김병지 씨는 자신의 SNS에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다며 승소했다는 글을 남겼다.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런데 김병지 씨가 제기한 민사, 형사 소송의 판결문들을 직접 확인한 결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법 조항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부조리한 진실들을 은폐시키고 국가, 공직자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한 시민은 "형법 제307조 제1항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 청구를 제기했고 2021년 2월 헌법재판소는 기각 결정을 내렸다. 체면과 위신을 중요시하는 한국에서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표현이 온라인이나 SNS에 올라가면 그의 인격이 회복될 길이 없다며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한 판결이라고 했다.
한국처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형사 처벌하는 나라는 드물다. 영국은 명예훼손죄를 폐지했고 미국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자체를 형법상 범죄로 인정하지 않는다. 독일과 스위스 등은 '진실한 사실'이 입증되면 처벌받지 않는다.
2011년, 2015년 유엔은 대한민국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하라고 두 차례 권고했다.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유엔 유럽 본부를 직접 방문해 2021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합헌 결정 이후 유엔의 첫 공식 입장을 인터뷰했다.
호세 산토스 파이스 유엔 시민적, 정치적 권리위원회 위원은 "명예훼손의 범죄화가 개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하여 필수적인가에 대하여 생각을 해 봐야 합니다. 저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와 또 다른 기본권인 인격권이 충돌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알아본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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