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열린 ‘위키리크스 문서공개로 드러난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정 및 한미FTA 협상과정의 진실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정부의 정책에 대해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내용이다.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는 2007년 2월 2일 당시 이명박 후보의 출생부터 정치역정까지 14개 항목을 국무부에 타전했다. 전문에는 한일협정 반대 데모로 인한 투옥으로 고려대 졸업 후에도 취직을 못한 이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정부가 개인의 앞길을 막는다면 정부는 개인에게 영원히 큰 빚을 지게 될 것”이라는 편지를 보냈고, 결국 사면을 받고 현대건설에 취직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 대통령의 초고속 승진에 대한 뒷얘기도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대화를 나누면서 ‘MB(이명박 대통령)를 조심하라’고 했는데 정 회장은 ‘MB를 돌봐주라’는 말로 오인했다는 것이다.
논란을 불러올 수 있는 이 대통령의 발언도 포착됐다. 2007년 6월 5일 버시바우 대사와 만난 이명박 후보는 “몇 안되는 축산업자와 귤 재배자들 때문에 한미 FTA를 포기할 수는 없다” “한국 소는 미국산 사료를 먹기 때문에 한국 쇠고기는 진짜 한국산이 아니며 한국 쇠고기를 살리자고 주장하는 것은 이미 물 건너간 것”이라고 했다. 또 2008년 1월 16일 이 대통령이 버시바우 대사 등과 만나 “기자들이 없으니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 미국산 쇠고기가 좋고 싸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했다는 내용도 있다.
2006년 3월 7일, 8일자 전문에는 당시 이명박 시장이 노무현 정권을 겨냥해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여중생 사건으로 발발된 반미감정으로 만들어진 정권”이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있다.
▲ 2008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일본특사로 방일 귀국한 이상득 국회 부의장이 방일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이상득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2008년 5월 29일자 문서에는 이 부의장이 6·4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전패할 것을 우려해 미 쇠고기 공식 수입재개를 선거 이후로 미루자고 미국에 요청한 내용도 있다. 뿐만 아니라 2009년 5월 15일 전문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이 대통령의 순방 성과로 보도된 ‘카자흐스탄 발하쉬 화력발전소 수주 건’이 이미 2년 3개월 전 삼성물산이 수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대통령과 관련된 내용과 평가들이 수차례 보고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버시바우 대사와 주한미대사관은 ▲대운하 계획은 한국경제를 부흥시킬 요체가 아니며 다른 선거 공약들도 그저 그렇게 끝날 수 있다(2008.12.19) ▲(촛불시위와 관련)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의 지지율을 기록, 곧 절름발이 지도자가 될 것(2008.6.16) ▲대운하 정책은 경부고속도로를 만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책과 비슷하다(2007.1.12)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지만 BBK스캔들로 인해 집권초기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2007.12.19) ▲한국의 건설업은 의심스러운 자금이 개입된다. 이명박 옷장에 많은 해골을 숨겨두고 있을 것이다(2006년 말) ▲상대와 타협하지 않고 몰살시키는 스타일(2006.11.21) ▲이경숙 씨를 정권인수위원장에 임명한 것은 학연타파를 외치던 이 당선자가 교회인맥을 중용한 것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2007.12.28) 등의 내용을 상세히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사이버안전센터를 찾아 김승규 국정원장과 함께 사이버위기대응 통합연습 상황을 보고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미국의 ‘똘마니’를 연상케하는 정권 고위층들의 발언도 적잖이 언급돼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7월 전문에는 당시 보건복지부가 미국이 반대하는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추진하자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버시바우 대사에게 “정부가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담은 건강보험법 시행규칙 개정을 입법예고하지 않도록 죽도록 싸웠다”고 한 내용이 들어있다.
2007년 8월 29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얼 포머로이 하원의원 등과 만나 쌀 추가협상을 약속한 문건도 있다. 쌀과 관련해 미국과 어떤 약속도 없다던 정부 주장을 뒤집는 것이다. 문건에는 김 본부장이 미 쇠고기 수입확대, 자동차 세제와 환경기준 개정을 거론한 대목도 있다.
2008년 6월 26일자 전문에는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쇠고기 협정이 실행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데 대해 이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감사하고 있다”며 “쇠고기 시위로 부시 방한이 연기된 것은 유감스럽다”고 한 것으로 나와 있다.
환경주권을 포기한 듯한 외교부의 처신도 발견됐다. 2008년 5월 열린 한·미 주둔군지위협정 특별공동회의에서 외교통상부는 환경부의 제안을 3~4개만 관철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그 결과 반환 미군기지의 환경위해도 평가는 허술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 2006년 한미 FTA 체결대책특별위원회에 참석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뒤로 김종훈 한미FTA수석본부장이 보인다. |
2008년 7월 25일자 전문에는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금융위원회 위원장 시절 주한 미 대사에게 론스타와 HSBC의 외환은행 매매 계약에 대한 금융위원회의 승인심사 착수 방침을 ‘선물’이라며 공식 발표 전에 알려준 내용도 들어있다.
직분을 망각한 언론인들의 치부도 드러났다. 전문에는 KBS 보도본부장과 고위급 기자들이 2007년 대선 당시 미 대사관 관계자들을 만나 선거전망과 이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전달한 내용이 들어있다. 특히 KBS 보도본부장이 ‘빈번한 대사관 연락책’으로 분류되어 있었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그가 무슨 이유로 미 대사관 측과 접촉을 했는지 모르지만 미 대사관이 그를 주요 정보원으로 활용하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뿐만 아니다. 2006년 8월 19일자 전문을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언론사 간부들과 8월 13일 가진 비공개 면담에서 한 민감한 얘기들이 미 대사관에 고스란히 전달됐다.
북핵문제에 대해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북한은 인도의 상황과 비슷한데 인도는 핵 보유가 용인되고 북한은 왜 안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해서 한국인들이 불안하다고 여기겠느냐”고 했다. 또 “북핵문제에 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다음 정부로 넘길 수밖에 없다. 한국의 국방력 강화는 북한이 아니라 일본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군사적 태세를 갖추는 것이다”고도 했다.
외교전문은 이날 만찬이 노무현 정부에 우호적인 언론사 간부들과 비공개로 이뤄졌으며 만찬에 참석한 간부로부터 대화내용을 입수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비공개 만찬에서 나온 내용이 그대로 미 대사관 측에 전달된 것은 충격에 가깝다. 전문에는 “한국에서는 오프더레코드 따위는 없다”고 비꼬았다.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물론 위키리크스의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고는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가공무원들의 기밀유출은 물론이고 외국 공관인 미 대사관에서 이뤄진 첩보활동 수준의 불법정보수집 및 보고, 대국민 사기극을 방불케 하는 미국과의 뒷거래 의혹 등에 대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번에 공개된 문건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미 대사관이 지난 4년간 본국으로 보낸 1만 2000여 건의 문서 중 공개된 것은 보안등급이 낮은 1800여 건 수준으로 현 정권에 집중돼 있다. 베일에 감춰져 있는 1만여 건의 기밀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구 여권 인사들이 개입된 더욱 경악스러운 비밀들이 담겨져 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박근혜 “북한에 무조건적인 지원 반대”, 손학규 “노 정부 미국 신뢰 잃어 걱정”
외교 전문에 따르면 2006년에서 2010년까지 버시바우 대사는 국내 주요 정치인들을 만나 속깊은 얘기를 나눴다. 2006년 이후 버시바우 대사와 6차례 단독 회동을 가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2008년 3월 18일 “성차별주의가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패배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최근 실패로 인해 당내에서 그런 정서가 누그러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또 박 전 대표는 “서독이 동독 정부에 인도적 지원을 할 땐 늘 인권 개선 등의 조건을 달았었다”며 북한에 대한 무조건적인 인도적 지원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한미FTA를 지지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손 대표는 2006년 11월 “노무현 정부가 북한 핵실험에 제대로 대응을 못 해 한국이 미국의 신뢰를 잃은 것이 걱정스럽다”며 “박근혜가 당 대표로는 강한 리더십을 보여줬지만 국가적 지도자감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2006년 11월 9일자 전문에 따르면 손 대표는 버시바우 대사에게 “김승규 전 국정원장이 간첩사건을 독자적으로 수사했고 이 때문에 국정원장 자리에서 밀려난 것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또 “노무현 대통령이 국제협력보다 남북관계를 우선할 경우 노 정부의 외교적 실패는 계속될 것이다”고 우려했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2010년 1월 스티븐스 대사에게 중국의 경제·문화적 영향력에 대해 미국이 관심을 가져줄 것을 주문했다. 그는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중국은 역사적으로 한국에 유쾌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동영 민주당 의원은 2006~2007년 세 차례에 걸쳐 버시바우 대사와 만났다. 그는 2006년 3월 “북한의 불법적인 행위와 6자회담은 별도로 다루길 추천한다”고 했다. 정 의원도 한미FTA에 대해 지지 입장을 밝혔다. 그는 “53년간 상호방위조약은 한미관계의 기둥이었고, 한미FTA가 되면 향후 50년 동안 양자 관계의 두 번째 중요한 기둥이 될 것이다”고 했다. [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