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인화학교의 장애아 성폭행 사건 대책위원회의 김용목 위원장이 “성폭력 사태에 대한 학교 측과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배경은 광주인화학교 전경.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9월21일 기자는 김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광주 홀더센터를 찾았다. 홀더센터는 소설 <도가니>에서 동명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홀더는 ‘홀로 삶을 세우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뜻으로 인화학교 피해자들의 교육과 보살핌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영화 <도가니>에서도 홀더센터를 본 딴 피해아동들의 새 보금자리가 말미에 등장한다.
기자가 만난 김 대표는 벌써 6년째 대책위를 이끌고 있다. 김 대표는 인터뷰 초반부터 “시간이 6년이나 지났지만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대책위 활동 역시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라며 힘주어 말했다.
‘광주인화학교사태’는 지난 2005년 세상에 드러난 희대의 장애아 집단성폭행사건이다. 당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조사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인화학교에 재학 중이던 초중고 학생 9명으로 밝혀졌고, 가해자들은 김강석 당시 교장(2009년 사망)과 행정실장을 포함해 교직원 6명이었다. 가해자들이 범한 성폭행과 성추행은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오랫동안 이루어졌던 것으로 밝혀져 세간에 큰 충격을 던져줬다.
지난 2008년 가해자들은 징역 8개월에서 2년 사이의 솜방망이 처벌에 처해졌다. 이마저도 김 교장과 행정실장은 항소심을 통해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혐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소시효가 지난 관계로 어떤 처벌도 받지 않은 교직원 2명은 학교에 복귀했다. 그중 1명은 현재도 근무 중이다.
김 대표는 “학교는 지금까지 피해아동들에게 한마디의 사죄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피해보상과 심리치료를 약속했지만 현재까지 어느 하나 이행된 것이 없다. 사건이 벌어진 지 6년 후인 현재의 모습이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김 대표는 인권위가 발표한 조사결과 외에도 공식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와 가해자는 더 많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 대책위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피해자와 가해자는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확실한 증거가 없거나 있어도 피해자와 부모들이 밝히기 꺼리는 경우다. 가해자 역시 마찬가지다. 적발된 6명 이외에도 우리가 확인한 가해자는 더 존재한다. 또 졸업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공식적인 사건발생 시점인 2000년 이전에도 성폭행과 성추행 피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광주인화학교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학교의 모재단인 ‘우석재단’의 폐쇄적인 족벌체제를 꼽았다. 그는 “당시 교장은 재단 이사장의 장남이었다. 또 다른 가해자였던 행정실장은 이사장의 차남, 즉 교장의 동생이었다. 당시 사건의 은폐 및 위조에 협조한 학생부장과 교감 역시 친인척 사이다. 6년이 지난 현재 이사장직은 전 이사장의 사위가 맡고 있다. 교장직무대행을 겸하고 있는 현 교감 역시 전 이사장 삼남의 친구가 맡고 있다. 학교의 폐쇄적인 족벌체제는 사건 당시뿐 아니라 현재도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결국 학교의 폐쇄적인 족벌운영이 사건의 축소와 장기간 은폐를 키웠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2005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광주인화학교사태는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갔다. 2008년 공식 판결 이후 사건은 마무리되는 듯했다. 피해자 보상 등 기본적인 문제조차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 광주인화학교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도가니>. |
김 대표는 “사실 걱정이 많았다. 어제 영화를 봤지만 피해아동들과 함께 볼 용기가 없었다.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작가와 감독의 진정성이 있다고 느꼈다. 현재진행형의 사건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는 것이 안타까웠고 대책위의 결속력이 약해지던 시점이었는데 든든한 우군을 얻은 심정이다”고 말했다.
끔찍한 사건을 겪은 피해아동들은 아직까지도 기나긴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김 대표에 따르면 피해아동들은 여전히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아이들은 아직까지 학교가 약속한 적절한 심리치료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대책위 차원에서 간헐적인 심리치료를 진행하고 있지만 전문가가 아닌 이상 역부족이다”며 안타까워했다.
사건 이후 광주인화학교의 학생 수는 많이 줄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현재 광주인화학교 안에는 21명의 극소수 청각장애 아동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교직원보다도 적은 숫자다. 이마저도 대부분 아무 연고가 없는 아동들이 머무는 인화원의 원생들이다. 사건 이후 존폐위기까지 내몰린 재단은 반성은커녕 이미지 쇄신을 위한 교명 변경과 업종 확장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재단은 여전히 피해아동들에 대한 진정성이 없다. 교명을 바꾸고 청각장애 아동과 더불어 지적장애 아동까지 업종을 확대하려고 한다. 살아남기 위한 꼼수다”며 재단의 행태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재단과 학교에 크게 세 가지를 바란다. 첫째, 아이들에게 사죄하고 피해보상 및 치료비용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둘째, 재단의 친인척 족벌체제를 타파하고 공익이사참여를 통한 투명한 의사결정구조를 실행해야 한다. 셋째, 재단 시설 안에 있는 원생들의 인권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책임자들의 도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기자는 김 대표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광주인화학교를 직접 방문했다. 교사(校舍)는 꽤 컸다. 21명이 뛰어 놀기에 학교는 너무나도 휑했다. 학교는 광주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외곽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외부인들의 접근이 원천적으로 어려워 보였다. 아이들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라 그런지 전체적으로 섬뜩한 느낌도 들었다. 기자 일행을 경계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몇몇 학교 관계자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사태와는 무관하게 학교 앞에는 아이들의 고사리 손으로 심어 놓은 옥수수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한 광주인화학교사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조속한 피해학생들의 보상과 마음의 상처를 지울 수 있는 적절한 치료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영화 <도가니>에서 피해아동 민수(백승환 분)는 어른들에게 수화로 열변을 토한다. “내가 용서 안했는데 누가 용서했다고 그래요? 나랑 동생 앞에 와서 무릎 꿇고 빌지도 않았는데…”라는 대사가 문뜩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학력인증 사기에 강제 노역까지”
광주인화학교의 내부 폐해 사실들이 하나둘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광주인화학교 1984년 졸업생 15명은 학교의 ‘학력인증사기’와 ‘강제노역’ 혐의에 대해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의 내부 폐해는 지난 2005년 일련의 성폭행 사건 외에도 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화학교성폭력대책위에 접수된 84년 졸업생들의 피해사례는 매우 심각했다. 그들이 보낸 문자 내용에 따르면 학교가 고등부 인가가 나지 않은 상황에서 ‘학력인증’ 여부를 속이고 학생들을 모집했다는 것이다. 졸업생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졸업장을 받았지만 그 졸업장은 ‘고등학력인증’과 무관한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비인가 학교를 3년간 값비싼 등록금만 내고 다녔던 것이다.
또한 피해자들과 만난 김 대표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재학기간 3년 동안 교사(校舍) 이전을 위한 강제노역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당시 졸업생들은 건축기금을 조성하기 위한 모금활동에 강제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아동·청소년 노동력 착취에 해당하는 피해사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권위는 이들이 제출한 진정서를 기각했다. 인권위는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흐른 탓에 공소시효가 지나 조사 범위에 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이들이 당시 피해를 증명하고 보상받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