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7월 4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SK 대 롯데 경기에서 고 최동원이 시구를 하고 있다. |
고장효조는 건강엔 일가견이 있었다. 얼굴 혈색이 좋았다. 본인도 건강에 자신이 있는지 기자를 만나면 항상 “하루 30분씩 뛰고, 스트레칭을 하라”고 권했다. 그래야 50세가 넘어서도 자신처럼 건강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장효조는 지난 7월 말 올스타전을 전후로 심한 복통에 시달렸다. 갑자기 살도 빠졌다. ‘설마’하는 기분으로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위암과 간암 모두 4기”라고 진단했다. 청천벽력이었다. 누구보다 건강을 자신했기에 더 큰 충격이었다. 이후 장효조는 9월 7일 조용히 눈을 감았다.
고 최동원은 ‘건강의 화신’이었다. 술·담배는 고사하고,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은퇴 후에도 늘 규칙적인 생활을 했고, 하루도 운동을 거르지 않았다. 그러나 최동원 역시 암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007년 대장암 수술 이후 4년 동안 투병했다. 그러다 결국 암이 온몸으로 전이되며 9월 14일 유명을 달리했다.
누구보다 건강했던 두 이가 어째서 다른 야구인들보다 세상을 먼저 뜬 것일까. 이용철 KBS 해설위원은 “스트레스가 주범”이라고 말한다.
“장효조, 최동원 두 선배 모두 현역 시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최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과 이름값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강했다. 여기다 구단과 자주 대립각을 세우며 마음고생이 심했다. 은퇴하고서도 강한 자존심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으로 안다.”
사실이다. 장효조, 최동원 두 이는 현역시절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현역에서 은퇴한 뒤로도 스트레스는 심했다. 공교롭게 두 사람은 ‘현역 시절 이기적인 선수였다’는 선입견 때문에 성공적인 지도자의 길을 걷지 못했다. 변방에서 떠돌다 늦은 나이에 코치를 거쳐 2군 감독까지 됐다.
하지만, 그 정도 스트레스는 야구선수라면 누구나 받았을 일이다. 일부 야구인은 “스트레스보다 불규칙한 식습관이 야구선수의 암을 부른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야구선수들의 식습관은 매우 불규칙하다. 저녁식사를 거르고, 경기가 끝난 새벽에 저녁을 먹기 일쑤다. 원정경기가 있는 날엔 식사를 건너뛴 채 폭식으로 대신하게 마련이다. 체력 보강과 근육강화를 위해 육식 위주의 식단을 꾸리는 것도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모 구단의 트레이너는 “요즘엔 선수들의 식단도 과학적으로 준비하기 때문에 덜하지만, 과거엔 육류 위주의 식단이었기에 위암과 대장암의 발생빈도가 높을 수 있었다”며 “경기 후 폭음을 하는 것도 암 발병을 높이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장효조, 최동원의 죽음 이후 야구인들은 서둘러 종합검진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의학계는 야구선수의 암 발병률이 다른 분야보다 높지 않다고 말한다. 정작 문제는 건강관리다. 현역 선수는 구단에서 건강관리를 하지만, 은퇴하면 스스로 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야구인은 자신의 건강을 과신해 건강검진은 고사하고, 현역시절과 같은 식습관을 유지한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은 다르다. 은퇴선수협회가 가동해 그 안에서 은퇴선수들의 건강을 집중관리한다. 건강검진은 물론이려니와 식습관 개선에도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연금도 은퇴선수협회에서 지급되는 통에 은퇴 후, 생활고로 시달릴 확률이 낮다.
그러나 한국은 은퇴선수협이 양분된 상태다. 사단법인 일구회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산하에 서로 다른 은퇴선수협이 있다. 세력 다툼은 있을지 몰라도 체계적인 은퇴선수 관리는 기대하기 어렵다.
통일된 은퇴선수의 구심체가 없는 바람에 야구인의 장례 역시 초라하게 치러지고 있다. 최동원의 장례식에서 만난 박철영 SK 스카우트는 “코미디언이나 영화인이 별세하면 전체 희극인과 영화인이 하나가 돼 ‘코미디언장’, ‘영화인장’을 치른다. 반면에 야구인은 대선수가 별세해도 개인 장례식으로 치러진다. ‘야구인장’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야구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통탄했다.
틀린 말도 아니다. 장효조, 최동원의 장례식은 모두 개인장으로 치러졌다. 그러다 보니 야구인들은 개별적으로 장례식장을 찾았고, 위대한 두 야구인의 장례식은 여느 장례식과 다름 없이 평범하게 치러졌다. 야구인들은 “지금이라도 은퇴선수협이 하나로 똘똘 뭉쳐 야구인들이 별세할 때마다 사안에 따라 ‘야구인장’을 치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야구계는 “장효조상, 최동원상을 제정해 이들의 업적을 기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위대한 야구인의 업적을 후대에까지 전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시기상조”란 입장도 만만치 않다. “아직 프로야구 역사가 30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의식 있는 야구인들은 “상보단 레전드 야구인들을 기억할 수 있는 ‘명예의 전당’ 건립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구본능 총재가 “명예의 전당 건립 추진을 서두르겠다”고 한 것도 이러한 주장을 반영한 까닭이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명예의 전당을 운영하고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일본은 별도의 역사위원회를 조직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선수를 선정하고, 이를 관리한다. KBO도 두 나라의 예를 참고해 ‘한국 프로야구 역사위원회’를 검토하고 있다. KBO의 한 관계자는 “더 많은 야구선수가 세상을 등지기 전에 이들의 목소리를 녹취하고, 이들이 가진 역사적 자료를 모을 필요가 있다”며 “KBO 역사위원회가 이를 전담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