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저축은행의 구명로비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로비스트 박태규 씨가 지난 8월 31일 밤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구치소로 이송되고 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일요신문> 취재결과 거물브로커 박태규 씨는 알려진 대로 정관계는 물론 법조계와 언론계 등 사회지도층 곳곳에 막강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박 씨가 구속된 이후 사정당국 주변에서 ‘박태규 리스트’가 설득력 있게 나돌았던 것도 박 씨의 막강 인맥과 맞물려 있었다.
검찰 수사 초기에 나돌았던 ‘박 리스트’에는 한나라당 중진인 K 의원과 또 다른 K 의원, H J K P의원, 사정기관 수장을 지낸 K 씨, 민주당 중진 J 의원, 참여정부 실세였던 B 전 의원과 민주당 H 전 의원 등 10여 명의 전현직 정치인들이 대거 등장했다.
하지만 이들 정치인들에 대한 검찰 수사는 답보상태를 면치 못했다. 박 씨가 ‘입’을 열지 않았고, 리스트에 등장한 인물들의 혐의점을 잡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간에는 이번에도 ‘용두사미’ 수사로 막을 내릴 것이란 비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코너에 몰린 검찰이 김두우 전 수석이 박 씨로부터 1억 원대의 금품을 수수한 정황을 잡고 그를 구속하면서 수사는 다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여기에 지난 9월 28일 박 씨의 로비 의혹 사건의 열쇠를 쥔 핵심 당사자로 지목받았던 A 씨가 검찰에 출두해 ‘신 로비 리스트’를 진술함에 따라 검찰 수사는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 왼쪽부터 안상수 전 대표, 박근혜 전 대표. |
관계 인사 중에는 현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Y 전 장관과 공기업 사장을 지낸 K 씨 등이 박 씨와 두터운 친분을 맺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여권 내 유력한 차기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또한 지난해 11월 G20 정상회의 때 박 씨와 접촉한 것으로 확인됐다. A 씨는 9월 20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지난해 11월 G20 회의 정상회의 때 박 회장이 ‘오늘 만나러 가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 박 대통령 따님이야’라고 자랑했다”고 전했다. A 씨는 “당시 박 씨가 ‘부친인 박 전 대통령께 실수한 게 있다’ ‘따님인 박 전 대표가 용서해 달라’ ‘그리고 박 전 대표가 현 상황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는 등의 말을 박 전 대표에게 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도 이들 인사들이 박 씨와 몇 차례 접촉하거나 통화한 정황을 잡고 박 씨를 상대로 접촉 사실 및 청탁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검찰은 핵심 참고인인 A 씨가 검찰에 출석해 박 씨와 위에서 언급한 거물급들이 접촉한 정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한 만큼 조만간 이들을 소환해 조사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검찰 조사를 마친 A 씨는 9월 30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28일 검찰에 출두해 6시간 30분 정도 조사를 받았다. <일요신문>에 제보한 내용대로 진술했다. 핵심 참고인이었던 저의 진술을 확보한 만큼 박 회장(박태규)과 접촉한 고위층 인사들에 대한 수사도 본격화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신 로비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는 거물급 인사들이 단순히 박 씨와 만났거나 접촉한 사실만으로 이들이 박 씨의 로비를 받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민감한 시기에 거물 브로커와 접촉했다는 것은 박 씨로부터 부산저축은행 구명 청탁 등 로비를 받았을 개연성이 없지 않은 만큼 이들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여기에 최근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는 대통령 측근비리 의혹에 대해 이 대통령이 척결 의지를 분명히 한 만큼 어떤 형태로든 성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게 검찰 수뇌부의 입장이다.
사정당국 일각에서는 김 전 수석을 구속하면서 탄력을 받은 검찰 수사가 ‘몸통’을 겨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검찰 수사팀은 박 씨가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대기업 재단의 부산저축은행 1000억 원 투자건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지난해 6월 삼성재단과 학교법인 포스텍은 당시 부실 우려가 제기됐던 부산저축은행에 각각 500억 원을 투자했다. 검찰은 두 재단이 500억 원이라는 거액을 약속이나 한 듯 부산저축은행에 투자한 배경에 강한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박 씨 또한 1000억 원 투자금 유치 과정에 깊숙이 개입해 김양 부산저축은행 부회장으로부터 6억 원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이 두 재단의 자금을 유치하는 과정에 박 씨를 매개로 한 정관계 유력인사가 개입했고, 거액의 리베이트가 오갔을 가능성을 열어놓고 은밀히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 일각에서는 1000억 원 유치건에 박 씨와 여권 거물인 B 씨가 연루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와 관련 A 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박 회장이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 2~3개월 전에 삼성 본사를 3번 정도 방문한 적이 있다”며 “나중에 알고보니 삼성재단의 500억 유치건과 관련이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김 전 수석을 구속하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검찰 수사의 칼끝이 ‘신 로비리스트’를 넘어 몸통으로 지목받고 있는 여권 핵심 실세까지 겨냥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
박태규 세 번 보냈다
거물브로커 박태규 씨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된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박 씨로부터 골프채를 건네받았다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검찰은 박 씨가 김양 부회장으로부터 받은 로비자금 15억 원 중 1억 원 안팎의 금품을 상품권이나 현금, 골프용품 등의 형태로 김 전 수석에게 건넨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9월 27일 김 전 수석을 구속한 대검 중수부는 김 전 수석을 상대로 박 씨로부터 금품을 전달받은 경위 및 그 대가로 다른 인사들에게 부산저축은행 퇴출 저지 청탁과 관련된 압력을 행사했는지 여부를 집중 추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박 씨가 지난해 4월 강남의 한 골프숍에서 여성용 골프세트를 구입한 뒤 김 전 수석의 부인에게 건넨 정황을 잡고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다. 지난해 4월은 박 씨가 김 부회장한테서 로비자금을 받기 시작한 무렵이다.
<일요신문> 취재결과 박 씨는 모두 세 차례에 걸쳐 김 전 수석에게 골프채를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A 씨는 기자에게 “여성용 풀세트는 김 전 수석의 집으로 가서 사모님에게 전달했고, 중고채 세트는 경비실에 맡겼던 것으로 안다”며 “드라이브 1개도 전달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