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도 세리가 있다. 지팡이 대신 골프채를 휘둘러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 박세리다! 처음 골프 캐스터로 입문할 당시 그녀의 경기를 녹화해두고 질릴 때까지 중계방송을 연습했었다. 한창 우승을 했던 시기여서 샷 하나하나가 경이롭게 느껴졌다. 선수는 경기장에서 빛을 발할 때 아우라를 발현한다. 현실의 박세리는 어릴 때 동경의 대상이었던 요술공주 세리 못지않았다.
방송으로만 대하던 그녀를 몇 년 전 제주도에서 LPGA대회가 있었을 때 처음 대면했다. 중계석에 해설자로 초빙된 것이다. 낯설었다. 선수 박세리와 해설자 박세리는 간극이 있었다. 여러 사정 때문에 대회 출전을 포기하고 방송을 하게 된 그녀는 생방송 진행을 몹시 어색해 했다. 표정이 어두웠다. 캐스터가 묻는 말에만 대답했다. 해설이 아니라 인터뷰가 돼 버렸다.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는 중계석이 아니라 필드라는 것을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랬던 그녀가 몇 주 전 국내대회에 참석해서 오랜만에 모 방송사의 해설자로 등장했다. 몇 년 사이 그녀는 많이 변해 있었다. 시간이 흐른 탓이 크겠지만 방송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해설위원 박세리는 필드의 그녀만큼 당당했다. 예선 탈락을 했는데도 덤덤하고 여유가 있었다. 이번에는 캐스터가 질문을 하기도 전에 웃으면서 상황을 설명했다.
다음날 그녀가 새로운 스폰서와 조인식을 했다. 이 자리에서 박세리는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심상이 전해져 왔다. 지금 KLPGA는 박세리 키즈를 지나서 신지애 키즈까지 등장했다. 냉혹하지만 선수 박세리는 전성기가 지났다. 스타 박세리가 누렸던 스포트라이트도 예전 같지 않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현역 선수다. 이왕이면 한국인 LPGA 100승 기록을 본인이 세우고 싶다고 얘기한 것도 대선수로서 당연한 목표다.
박세리가 더 이상 우승하지 않아도 괜찮다. 섭섭할지 몰라도 나는 이제 그녀가 편해지길 바란다. 선수 박세리로서 그동안 보여준 것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행복했다. 지금부터는 인간 박세리의 삶이 더 중요하다. 이번에 귀국해서 보여줬던 그녀의 눈물과 웃음은 그래서 편안하게 느껴졌다.
‘남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내 모습도 남이 알아주지 않는 내 모습도 내가 아닙니다. 참 내 모습은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나 앞에 서 있는 나입니다. 홀로일 때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조종민 목사님이 오늘 트위터에 올린 글을 요술공주 박세리에게 전하고 싶다.
SBS 아나운서 최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