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일각의 이야기는 친박 쪽이 당초 서울시장 후보로 나 의원을 못마땅해 했다는 것이다.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앞두고 나 의원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계백 장군에 비유하며 적극 지지했던 것이 현재보다 더 복지를 확대한다는 ‘맞춤형 복지’를 주장하는 박 전 대표의 입장과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당 사무총장은 아마 “‘당이 확정할 복지 당론’이 박 전 대표의 ‘복지’와 다르지 않다”고 읍소한 후에, 억지 지지선언을 얻은 것 같다. 한나라당이 두 나라, 세 나라당의 상황이고, 박 전 대표의 심리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사실 박 전 대표의 지원 유세에 그들이 목을 매고 있을 상황이 전혀 아니다.
모두들 박 전 대표가 ‘나경원 후보’ 지원에 적극 나서기만 하면 선거구도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특히, 나경원 후보의 지지가 아직 박원순 후보보다 더 강하지 않은 상황에서 박 전 대표의 적극적인 유세 지원은 국면 전환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런 예상은 대중의 심리도 모르고, 박 전 대표의 마음도 못 읽는 단순한 한나라당 사람들의 희망사항이다.
서울시장 선거판에서의 대중의 마음은 박 전 대표가 나서든 나서지 않든 바뀌지 않는다. 왜냐하면, 박 전 대표에 열광할 이유가 이제는 없기 때문이다. 과거 ‘대전은요?’와 유사한 ‘서울은요?’ 하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이것을 현재 누구보다 박 전 대표가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더 이상 당신은 과거 핍박 받고, 불쌍한 모습으로 나설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에서 그녀가 ‘저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습니다’라고 했을 때, 적어도 막연히 대중은 느끼고 있었다, ‘속았다는 것을’. 그녀는 국회의원 공천을 지칭했을지 몰라도 국민들은 그 당시 대선을 연상했을 가능성이 높다. 어찌되었든 그녀는 국민의 마음을 대변했다. 하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그녀는 이제 대중들의 마음속에 ‘여왕’과 같은 존재다. 여당의 대표가 알현해야 하고, 심지어 대통령마저도 눈치를 보아야 하는 높은 정치인이다.
▲ 박근혜 전 대표가 지난 6일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를 돕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그렇다면 한나라당이 박근혜 ‘의원’에게 선거 운동의 지위를 부여하면 되지 않을까? 박 전 대표에게 나경원 후보를 위한 선거운동 본부장이나 그 이상의 자리에 앉힐 수 있을까? 없다. 영국 수상이 여왕 폐하를 런던 시장의 선거 본부장에 앉힐 수 없는 것과 같다. 이것이 현재 그녀가 처한 상황이다. 여기에 누구도 언급할 수 없지만, 그녀가 점점 절실하게 인식하고 있는 더 큰 장애물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녀 자신의 영향력의 정체다. 더 이상 자신이 선거의 여왕이라는 칭송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와 지금의 자신의 위치가 달라졌을 뿐 아니라, 대중이 보는 그녀에 대한 이미지도 달라졌다.
과거와 달리 현재의 선거 장면에서 그녀는 더 이상 핍박받는 사람을 대변하지 않는다. 심지어 본인이 애처로워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는 그런 상황도 아니다. 높은 정치인이고, 여당이 대세론으로 미는 대권후보다. 이런 분이 자신의 위치에 맞지 않는 처신을 하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운 일이 된다.
그녀는 이미 본인도 모르게 이런 수치를 당했다. 어느 자치단체장 보궐선거에서, 정치적 고향이라 할 만한 지역에서 자신이 미는 특정 후보가 무소속 후보에게 패배한 그런 경험을 했다. 대중적 인지도와 지지도가 있어도 대중과 이슈를 공감하지 못하면 그 정치인은 무시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속한 당의 후보를 위해 그냥 나서는 것은 여왕님이 하실 일이 아니다.
혹자는 여당의 ‘여자 서울시장’에 ‘여자 대통령’의 구도가 박 전 대표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라고도 해석한다. 전형적인 정치 공학적 해석이다. 박 전 대표는 자기중심적, 이익을 위한 계산적 정치 행위를 하는 사람은 결코 아니다. 박 전 대표의 진짜 고민은 바로 한나라당과 당신이 대중들과 더 이상 소통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시장 보궐 선거가 여왕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 국가 대사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서 당을 위기에서 구해야 한다는 절박함이라도 있다면 그나마 나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한나라당을 구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다. 여왕이 출전을 할 이유가 뚜렷하지 않다.
이제 모두들 그분의 하명을 기다리고 있다. 국민들은 별로 궁금하지 않지만 마음이 타는 분들은 분명 있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지지자들이 막연히 믿는 ‘선거의 여왕’이라는 신화를 박 전 대표가 스스로 파괴하는 종결자의 역할을 할지 지켜볼 일이다.
연세대 심리학 교수 황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