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득 의원 |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10월 4일 대검찰청을 대상으로 한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장에서 던진 일성이다. 박 의원은 이날 이 의원 외에도 안상수 한나라당 전 대표,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이윤호 전 지식경제부 장관, 신재민 전 문화부 차관, 정정길 전 청와대 대통령실장, 이동관 청와대 언론특보, 김두우·홍상표 전 홍보수석비서관 등이 박 씨와 접촉했다고 폭로했다. 박 의원은 또 박 씨가 조석래 전 전경련 회장과 밀접한 관계이고, 김진선 전 강원도지사와도 막역한 관계라고 주장했다.
특히 박 의원은 부산저축은행 사건은 당·정·청과 재계, 지방정부가 연관이 있는 ‘이명박 정부의 권력형 로비게이트’라고 규정했다. 그는 “박 씨가 활동하는데 이 분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검찰이 밝혀야 한다”며 “어떤 역할을 했기에 부산저축은행이 부실화되는 것을 알고도 삼성꿈재단과 포스텍에서 1000억 원을 대출해줬는가를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저축은행 사건과 관련해 정치권에서 공개적으로 실명이 거론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대다수 언론들은 ‘박태규 리스트’ 등 저축은행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정·관·재계 인사들을 영문 이니셜로 처리했다. 물론 이니셜로 표기된 인사들 중 몇몇 인사는 검찰수사 과정에서 혐의가 인정돼 사법처리되기도 했다.
박 의원이 실명으로 거론한 인사들 중에는 <일요신문>이 먼저 공개(1011·1012호)한 인사들도 포함돼 있었다. 문제는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이 리스트 명단에 실명으로 거론됐다는 사실이다. 이 의원은 현 정권 최고 실세라는 점에서 각종 권력형 비리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몸통설’에 시달려야 했다. 언론에서도 실명은 거론하지 못했지만 ‘몸통’ ‘핵심 실세’ 등으로 이 의원을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 이처럼 뒷말만 무성했지 이 의원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비리 사건에 연루된 혐의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 박 의원의 폭로로 실명이 공개된 이 의원이 실제로 박 씨와 접촉했는지, 나아가 부산저축은행의 정관계 로비 의혹 사건에 연루됐는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4일 국감장에 출석한 한상대 검찰총장은 “언론에 거론되고 있는 ‘박태규 리스트’는 확인된 바가 없다”면서도 “모든 의혹에 대해 철저하게 수사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일선 검찰 관계자들은 브로커 박 씨와 접촉한 인사들의 실명이 공개된 만큼 어떤 식으로든 조사가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이 사건의 핵심 참고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박 씨의 측근 A 씨는 기자와 수차례 접촉을 통해 고위층 인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 가능성을 예고한 바 있다.
검찰 출석을 미루다 9월 28일 출두해 검찰 조사를 받은 A 씨는 9월 30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핵심 참고인이었던 저의 진술을 확보한 만큼 박 회장(박태규)과 접촉한 고위층 인사들에 대한 수사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 왼쪽부터 박영준 전 차관, 신재민 전 차관. |
민주당은 9월 27일 이명박 정권 4년간 발생한 11대 권력형 비리 의혹 사건을 공개하면서 내년 총선에서 다수당을 차지할 경우 이들 사건들을 집중적으로 재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영준(지식경제부)·신재민(문화체육관광부) 전 차관 등 현 정부 인사들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했다고 폭로한 이국철 회장 사건의 불똥이 또 다른 정권 고위층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이 회장 폭로건은 당사자들이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면서 진실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하지만 10월 3일 검찰에 재소환된 이 회장은 해외에서 사용한 SLS그룹 법인카드 내역서를 검찰에 제출하면서 신 전 차관이 이 법인카드를 청와대 인사와 다른 정부기관 관계자와 돌려썼다고 주장해 파문을 확산시키고 있다. 따라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될 경우 또 다른 정권 고위층이 수사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또한 이 회장은 박 전 차관이 SLS그룹으로부터 접대를 받지 않았다고 제시한 증빙자료에 대해 “카드 영수증이 아니라 빌(bill)지, 즉 가게에서 발행한 청구서”라고 반박하면서 ‘박 전 차관 접대’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처럼 현 정권 핵심 실세들은 물론 형님까지 비리 사건 리스트에 오르내리자 여권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대책 마련에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권은 9월 27일 대통령 측근과 친인척들의 비리 가능성을 철저히 차단하기 위해 사정기관 위주로 구성된 상설 범정부 대책기구를 출범시켜 사실상 활동에 들어갔다(1012호 2면 참조). 가칭 ‘권력형 비리근절 대책회의’로 명명된 이 기구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비롯해 총리실, 감사원, 법무부, 경찰청,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이 참여해 감찰 활동과 함께 정례적으로 회의를 개최할 방침이다. 이는 최근 대통령 측근 비리 의혹이 잇따르면서 정권의 도덕성이 상처를 입었고, 이 대통령이 측근과 친인척 비리일수록 더욱 철저히 대처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특히 ‘이대로 가다간 모두가 공멸’이라는 위기감과 함께 자칫하다간 극심한 레임덕으로 임기 말 국정 과제가 좌초될 수 있다는 여권 핵심부의 절박함이 투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은 이 기구와는 별도로 현재 진행 중인 측근비리 수사에 박차를 가하는 동시에 실명이 거론된 고위층 인사들에 대한 조사 시기 및 방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이국철 폭로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신 전 차관을 10월 9일 전격소환 조사하는 등 측근비리 수사를 본격화하고 있다. 폭로자(이국철)와 핵심 참고인들에 대한 조사를 마친 검찰의 수사 칼날이 여권 실세들과 형님까지 겨냥할 수 있을지 국민적 시선이 서초동 검찰 청사로 쏠리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