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몇 년 사이 부산영화제 개막식에선 개성파 명품 조연 배우들이 뜨거운 환대를 받곤 했다. 올해 역시 이병준이 가장 열렬한 반응을 끌어내며 레드카펫을 통과했다. 사진은 호텔 객실 인터뷰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사회자의 소개를 받으며 레드카펫에 들어서는데 관객들이 정말 뜨거운 박수와 환호성을 보내주셨어요. 다른 배우들도 다 이렇게 환대해주는 거려니 생각했는데 다른 배우들이 소개될 때는 저만큼 환호성이 나오지 않는 것 같더군요. 나중에 소속사 관계자를 통해 내가 가장 많은 박수갈채를 받은 배우 가운데 한 명이라는 얘길 듣고 너무 감사했어요. 인기 스타라 서라기보단 그만큼 대중 가까이에 있다는 의미니까요.”
실제로 이병준은 개막식 당시 가장 뜨거운 반응을 불어 모으며 레드카펫을 통과했다. 최근 몇 년 사이 부산영화제 개막식에선 개성파 명품 조연 배우들이 더 뜨거운 환대를 받곤 했다. 올해 역시 이병준과 김정태가 가장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객실 침대 위에는 이병준이 보고 있던 부일영화제 시상식 행사 대본이 놓여 있었다. 몇 시간 남지 않은 부일영화제 시상식이 무척이나 긴장되는 눈치였다.
“정말 긴장되네요. 예전에 관객 8000여 명 앞에서 재즈 페스티벌 사회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땐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진행하면 됐어요. 그런데 이번엔 워낙 격식 있는 자리인 터라 고민이 많아요. 그래서 계속 대본을 숙지하며 준비 중인데 정말 떨리네요.”
물론 그날 밤 부일영화제 시상식에서 이병준은 무난하게 사회를 봤다. 언제 긴장했는지 모를 정도로 특유의 느끼함과 여유로움으로 멋들어진 진행을 선보인 것. 특유의 코믹 감각에 이런 진행 솜씨까지 갖췄으니 예능계로 진출해도 좋을 듯하다.
“예능 프로그램에 몇 번 출연하긴 했지만 최대한 피하려 해요. 배우가 자꾸 예능 프로그램에서 배우 이외의 모습을 유출하는 것이 작품 속 캐릭터에 몰입해야 하는 시청자들에게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자신은 있죠. ‘1박2일’ 명품조연 특집에 제가 나갔다면 정말 즐겁게 해드릴 수도 있었을 텐데요(웃음).”
이병준은 서울시립뮤지컬단원으로 활동하는 등 오랜 기간 뮤지컬 배우로 무대를 지켜왔다. 그렇게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활동 영역을 연예계로 옮겨 명품 조연의 반열에 올랐다. 넘치는 끼에 잘생긴 외모까지, 보다 젊은 나이에 연예계로 진입했다면 주연급 스타로 발돋움했을 가능성도 커 보인다.
“젊은 시절 무대를 지킨 것을 절대 후회 하지 않아요. 지금도 너무나 뮤지컬을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저는 무대에서 관객과 호흡하며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었어요. 무대에서 체득한 배우로서의 유연함이 지금 내게 그 무엇보다 강한 무기니까요. 하지만 젊은 친구들과 연기하다보면 그들의 젊음, 특히 피부가 부러워요. 요즘 이마에 있는 굵은 주름이 자꾸 신경 쓰여요. 그래서 이마에 보톡스를 맞아볼까 고민도 많이 했죠. 그런데 이마의 굵은 주름이 배우로서의 매력이라는 아내의 얘기에 참고 있어요.”
요즘 젊은 배우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이가 누구냐는 질문에 이병준은 망설임 없이 드라마 <시크릿가든>을 함께 공연했던 현빈을 손꼽았다.
“현빈은 참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배우였어요. 젊고 인기 있는 주연 배우라면 촬영 끝나면 당연히 ‘수고하셨습니다’고 인사한 뒤 자기 밴으로 돌아가야 하거든요. 요즘 대부분 그러니까. 그런데 현빈은 그러지 않았어요. 스태프랑 조연 배우들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고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죠. 그러면 나도 편히 말을 붙이고 농담도 할 수 있게 되죠. 그렇게 되면 전체적인 현장 분위기도 좋아지고.”
드라마 <시크릿가든>은 물론이고 <드림하이> 등 요즘 그가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캐릭터는 대부분 누군가를 음해하는 소위 밉상 캐릭터다. 아무리 그만의 코믹한 연기로 덧칠을 한다지만 악역은 악역이다. 그럼에도 그가 사랑받는 밉상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누군가를 음해하는 캐릭터는 미움을 사야 하지만 나는 거기에 뭔가 허술함을 더하려 노력해요. 그런 과정을 통해 서민적인 모습을 창조하고 싶거든요. <시크릿가든>의 박 상무를 생각해보세요. 상무라는 직책이 밑에 사람들 입장에선 얼마나 높아 보이는 자리예요? 그렇지만 매사를 허술하게 생각하는 상무의 모습에서 서민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거죠. <드림하이>에선 배용준 코스프레를 시도했어요. 이사장인 배용준이 학교를 떠나면서 예술부장에서 교장으로 승진한 뒤 뿔테 안경에 머플러, 심지어 헤어스타일까지 배용준을 따라 했어요. 시청자들이 그런 모습을 재밌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이병준은 현재 드라마 <포세이돈>에 출연하고 있다. 이번 드라마에선 기존의 ‘미친 존재감’에서 벗어나 진솔한 인간미를 선보이고 있다.
“이젠 진솔한 인간미가 드러나는 삼촌이나 아버지 역할을 많이 하고 싶어요. 친구 같은 포근한 아버지 역할을 연기하며 제 연기의 폭을 더 넓힐 수 있었으면 좋겠거든요. 그렇지만 더 중요한 부분은 제가 주어지는 캐릭터에 더 충실해야 한다는 점이죠. 감독들은 제게 유연한 모습, 강한 모습, 또는 독특한 모습의 캐릭터를 주로 주시는 편이에요. 그런 선택에 늘 감사해요. 주어지는 상황에 최선을 다하며 조금씩 변화하고 발전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부산=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