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11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표팀 대 UAE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전에서 UAE 감독진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 정치인이야, 축구인이야
명확한 포지션이 없다. 한국 축구를 가장 밑바닥에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공로를 인정받고 있는 정몽준 한나라당 전 대표의 최근 행보는 정치와 축구를 사이에 두고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는 모양새다.
정 전 대표는 현재 축구협회의 명예회장이란 직함이 갖고 있지만 엄밀하게 말해 실무적인 일을 담당하지는 않고 있다.
많은 축구인들이 이를 걱정한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해 이제는 진정한 결단과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이 왔다는 현실적인 의견들을 내놓고 있다.
정 전 대표는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아시안컵에 앞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선거에서 요르단 압둘라 국왕의 동생이자 요르단축구협회장을 맡고 있는 알리 빈 알 후세인 왕세자에게 무릎을 꿇었다. 20년 가까이 유지해온 FIFA 부회장의 타이틀을 잃어버린 최악의 순간이었다.
공교롭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정 전 대표와 AFC 총회 내 FIFA 부회장 선거 당시 공동 전선을 이뤘던 카타르 출신의 모하메드 빈 함맘 전 회장이 AFC 수장직에서 물러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함맘 전 회장은 FIFA 회장 선거에 도전했다가 제프 블래터 현 FIFA 회장에게 역풍을 맞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함맘 전 회장은 아시아 축구를 이끄는 동안 항상 최고의 무기로 간직해온 도덕성과 청렴성이 FIFA 윤리위원회로부터 지적을 받으며 그간 쌓은 노력들을 속절없이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로써 한국 축구도 큰 위기를 맞이했다. 중국축구협회 수장 겸 AFC 부회장 직함을 지닌 중국인 장지롱이 AFC를 임시로 이끌면서 국제 축구계는 물론, 아시아 축구계에서도 위상을 잃는 상황이 됐다. AFC가 아시아 축구를 세계적인 레벨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수많은 프로젝트들 중 상당수는 당장 한국 축구의 현실과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다. 프로축구연맹이 많은 시간과 정력을 투자하고 있는 2부 리그 창설만 해도 AFC가 한국 축구를 견제하기 위함이라는 시선도 분명히 있다.
일단 정 전 대표는 AFC 회장직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실제로 정치권이나 축구계 대부분의 인사들도 AFC 수장은 더 이상 정 전 대표의 레벨이나 위상에 걸맞지 않다고 본다. 어색한 옷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FIFA의 2인자로서 오랜 세월 활동해왔고, (다소 기세는 꺾였지만) 유력 대권주자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사실 일정 수준 이상의 재력도 지녔고, 정치적인 파워도 상당한 정 전 대표가 마음먹고 AFC 회장에 도전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여론이 축구계의 주를 이룬다.
하지만 현재 진정한 축구인도, 완벽한 정치인도 아닌 정 전 대표의 모습은 다소 아쉽게 비치는 것만은 틀림없다.
한 축구인은 “정 전 대표가 자신의 위치를 명확하게 설정하지 않을 경우, 축구계와 정치권 모두로부터 신임을 잃는 상황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 네 번째 후원 계약은…
축구협회의 공식 후원사는 모두 12곳. 후원금 액수를 기준으로 한 가장 최상위권에는 세계적인 스포츠 용품업체 나이키가 그 위치를 굳게 지키고 있다. 협회가 각급 대표팀이 소집돼 선수 인터뷰가 이뤄질 때마다 내놓는 스폰서 패널에도 나이키가 가장 윗부분에 로고를 새겨놓는다. 4년 단위로 한 차례씩 협회는 용품 후원 계약을 체결한다.
나이키는 1996년 미국 애틀랜타올림픽을 기점으로 협회의 공식 후원 스폰서가 됐다. 2007년 10월 세 번째 계약을 확정했으니 첫 계약으로부터 대략 15년이 흘렀다. 그리고 현재 네 번째 계약 여부를 놓고 교섭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외부에 알려진 규모도 상당하다. 나이키는 2007년 협회와 계약을 하며 현금 250억 원(연 62억 5000만 원), 현물 240억 원(연간 60억 원)의 금액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꾸준히 한국 축구의 위상이 올라가던 만큼 두 번째 재계약을 할 때보다 110% 인상된 금액이었다.
그러나 물품 공급과 거의 50 대 50 비율에 가까운 현금의 비중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점차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나이키와 후원사 경쟁을 벌였던 당시 아디다스는 협회 측에 현금으로 290억 원 이상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현물 지원의 규모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 대표팀 유니폼에 협회의 공식 후원 스폰서인 나이키 로고가 새겨져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나이키는 현재 진행 중인 재계약 협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협회 측과의 우선협상권도 갖고 있다. 거의 마무리됐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물론 예전에 비해 훨씬 계약 과정이 투명해진 것은 맞다. 예전에는 여러 가지 말들이 많았다.
한 축구인에 따르면 나이키는 ‘경쟁 업체가 제시한 금액을 협상 과정에서 사전에 공지해줄 것’을 요청했고, 사전에 영업 정보를 입수함에 따라 협상 테이블에서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점했던 것이 사실이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스폰서 협약 업무를 담당하는 협회 내 부서가 또 다른 오해를 산 것 역시 사실이다.
특히 협회가 계약 과정을 오픈하지 않고 발표만 해 투명성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시선이 있다. 대표팀에 속한 선수들이 타 업체와 개인 스폰서를 맺고 해당 용품을 사용할 때는 반드시 해당 업체 로고를 삭제해야 한다는 부당한 (나이키 입장은 당연하지만) 계약 조항이 없어진 게 그나마 개선된 정도이다.
그럼에도 축구인 다수는 “나이키가 아니면 협회와 (스폰서 계약을) 맺기 어렵다”는 부정적인 시선을 내비친다. 이는 뿌리 깊은 불신에서 비롯됐다. 한국 축구를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시절, 선뜻 투자를 결정하고 스폰서를 맡았으니 분명, 일정 수준 어드밴티지를 받는 게 당연하다는 얘기도 많지만 일단 협회가 모두의 공감을 얻을 만한 스폰서 계약을 하기 위해선 현금 비중을 끌어올리고, 계약 과정을 좀 더 투명하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생색내기 활동은 이제 그만!
축구협회가 겉으로 드러나는 활동에만 주력한다는 얘기도 늘 들려온다.
대표적인 예가 K리그 2부 리그 창설이다. 한국 축구는 2013시즌부터 2부 리그를 운영한다는 마스터플랜을 짜놓은 상태다. 물론 강제 사항은 아니다. 하지만 1, 2부 리그를 운영하면서 승격-강등 제도를 시행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건 많은 차이를 낸다.
승강제가 없을 경우, 당장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 쿼터부터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현재 K리그는 4장의 챔스리그 출전 티켓을 부여받고 있는데, 승강제를 시행하지 못할 경우에는 아시아 클럽 대항전에 참가할 클럽들의 숫자가 줄어들 수 있다.
프로축구연맹은 AFC의 요구 기준을 충족시키고자 9월 초, ‘승강제 태스크 포스(T/F)’ 팀 직원 6명을 스코틀랜드와 네덜란드로 파견해 K리그에 가장 적합한 2부 리그 운용 모델을 살피고 돌아왔다.
하지만 프로연맹의 노력에 비해 협회의 노력은 미미해 보인다. 올해 협회가 계획해 놓은 사업계획을 살펴보면, 승강제 시행이 두 번째 파트로 짜여 있다. 그만큼 중요하고 중대한 사업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딱히 마련된 계획은 없다.
디비전 시스템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개괄적이고 포괄적인 내용도 아직까진 없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시즌 후반기가 거의 끝나가는 마당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013년 프로축구 승강제 실시를 목표로 2011년 말까지 추진 방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협회, 프로연맹, 실업연맹 공동으로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한국 축구 전체의 디비전 시스템 구축 방안, 이를 위한 선결 과제 등에 대해 연구하고 방침을 마련해야 한다.
2부 리그의 뼈대를 이룰 실업축구 내셔널리그에도 별도의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지도록 하고, 향후 승강제에 대비해 더욱 내실을 기할 수 있도록 프로연맹과 각 구단들의 노력을 촉구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어떤 것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은 전혀 마련하지 못했다.
프로연맹이 2부 리그 운영의 롤모델로 삼고 있는 네덜란드와 스코틀랜드 리그만 살펴도 리그 사무국은 오직 리그 운영에만 신경을 쓸 뿐이다. 마케팅이나 기타 사업들은 대개 해당 협회 주관이다. 프로연맹을 늘 산하기관으로 여기고, 또 그렇게 행동해온 협회로서는 많은 반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들이 끊이질 않는다.
여기에 중대 사태를 회피하는 듯한 인상도 축구계의 질타의 대상이 됐다. 얼마 전, 국내 축구계는 K리그 승부조작이라는 희대의 사태를 겪었다. 그러나 총대를 메고 당당히 물러난 이는 1차 승부조작 수사를 통해 대거 선수들이 군 검찰과 창원지방법원에 의해 불려 들어간 대전 시티즌의 김윤식 전 사장과 왕선재 전 감독에 불과했다. 연맹 역시 딱히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지만 축구계의 전반적인 제반 사항을 이끌어가는 협회는 어느 누구도 ‘책임을 통감한다’는 자세를 취한 적이 없었다. 은근슬쩍 모든 잘못과 관리에 대한 책임을 프로연맹과 각 구단들에 지우려는 모습이 엿보였다.
역 피라미드 구조의 축구협회 인력 구성도 도마에 올라있다. 실무자들은 턱없이 부족한 데 반해, 상급 관리자들은 차고 넘친다. 수년째 신입 직원 공채를 안해 젊은 인재들이 부족하다. 조직이 참신한 느낌보다는 고루하다는 느낌을 준다. 현재 자리를 채우고 있는 관리자급 협회 직원들의 역량이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신선한 피를 수혈해 분위기를 바꿀 필요도 있다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
▲ 경기 후 ‘사랑의 프러포즈’ 행사. 사진제공=FC서울 |
무엇보다 다양한 행사와 볼거리는 그네들만의 자랑거리다. 서울 구단이 홈 구장으로 활용하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여느 유럽 스타디움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경기장 인근 북측광장은 서울의 경기가 펼쳐지는 날이면 온갖 행사로 꽉꽉 들어찬다. 프로그램도 알짜배기다.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길 수 있는 온갖 ‘꺼리’들이 풍성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국내 최고 수준의 스포츠 마케팅을 인정받아온 서울 구단의 축구 마케팅이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구단만의 마케팅 부서가 존재하고 있고, 티켓 전담 판매 직원들까지 따로 고용할 정도로 자생의 의지가 대단하다.
그 결과, 흑자까지는 아니지만 모기업의 많은 지원을 받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자급자족이 가능한 수준에 다다랐다. 별도 마케팅을 위해 대행업체를 따로 끌어들이는 등 아예 모기업의 지원에만 의존하는 대다수 팀들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AFC는 최근 모기업 지원에 의존하는 프로축구 구단들의 풍토를 타파하고, 자생력을 높이기 위해 법인화 작업을 강력히 권고한 바 있다. 성적이 프로 구단의 모든 걸 의미하지 않는 작금의 국제 축구계의 상황을 살필 때, 서울의 모습은 K리그의 롤모델이라고 불러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