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19일 SK와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이 벌어진 인천 문학 경기장. 프로야구 600만 시대, 야구를 즐기는 팬들의 열기가 가을하늘을 뚫을 기세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지난 10월 19일, 플레이오프 3차전이 있던 인천 문학경기장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야구장하면 빼놓을 수 없는 치맥(치킨과 맥주를 줄여 부르는 말) 행렬은 문학경기장역 입구에서부터 길게 늘어섰다. 한 노점상은 “점심도 못 먹고 나왔다”며 “경기 시작 전까지 준비한 음식을 다 팔 수 있을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오후 세 시. 경기가 3시간 이상 남은 시각임에도 매표소 앞은 인파로 북적였다. 아침 10시부터 티켓 교환을 기다리고 있다는 한 롯데 팬은 “19년을 기다리다 머리가 홀라당 벗겨졌다”는 플래카드를 자랑스럽게 꺼내보였다. 또 다른 팬은 “수시로 예매창구를 들락날락하다 17일 저녁에서야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며 가을야구를 맛보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당초 ‘취소표에 한해 당일 현장 판매를 진행한다’고 알려진 바와 달리 이번 플레이오프는 현장 판매가 이뤄지지 않았다. 때문에 미리 공지를 확인하지 못한 몇몇 팬들은 매표소 앞에서 ‘현장 판매 없음’ 문구를 확인하고 발걸음을 돌리거나 암표를 구하기 위해 서성이기도 했다.
가을야구를 즐기기 위해서는 인내심과 동시에 조직력도 필요하다. 각 구단의 팬들은 매표소 앞 ‘티켓 교환조’와 경기장 출입구 ‘대기조’로 흩어져 티켓 교환 후 바로 입장할 수 있도록 동선을 짰다. 그들은 오후 3시쯤 경기장 문이 열리자마자 ‘로열 외야석’을 차지하기 위해 돌진하는 진풍경을 펼쳤다.
# 시험공부도 제친 열성팬
현장에서 포스트시즌을 느끼려는 열망은 중간고사도 꺾을 수 없었다. SK팬이라고 밝힌 명지대학교 한 재학생은 “매번 플레이오프와 학교 중간고사 기간이 겹쳐 갈까 말까 고민했지만 이번 3차전은 놓칠 수 없어서 왔다”며 “SK가 이기기만 한다면 하루쯤 손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밝혔다.
아예 학교 과제물을 싸들고 야구장을 찾은 이들도 있었다. 응원지정석 뒤에 앉아 리포트 작성에 열중하던 한 학생은 경기가 무르익자 결국 노트북을 접고 친구들과 응원에 돌입하기도 했다.
1·3루 쪽 응원지정석은 순수하게 응원을 위한 열혈 팬들과 애정을 과시하는 커플이 주를 이뤘는데 뜻밖에도 남매가 함께 와서 경기를 관람하기도 했다. 커플인 줄 알고 인터뷰를 시도했던 조주희·조준영 남매가 그런 경우다. ‘키스타임’ 때 카메라에 잡히면 어쩔 거냐는 기자의 짓궂은 질문에 그들은 “잠깐 나갔다 오면 된다”며 재치 있게 응수했다.
▲ 플레이오프 3차전이 벌어진 인천 문학 경기장. 한 롯데팬은 19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기쁨을 재미있는 플래카드로 표현하기도 했다. |
그런가 하면 가을야구는 노년층의 마음도 움직였다. 경기장에는 삼사오오 모인 어르신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인천에 사는 이영권 씨는 “현대 유니콘스 때 경기를 관람한 이후 처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인천을 연고지 삼아 현대 유니콘스가 활동하던 것은 1996년부터 1999년까지로 12년이 훌쩍 지난 세월이다. 그는 “야구는 변함없지만 문화가 달라졌다. 특히 젊은이들 응원 구경이 볼 만하다”며 신명을 감추지 못했다.
# 열기는 화끈 매너는 주춤
매 경기마다 3만 명 가까운 인파가 모여 열띤 응원을 펼치는 탓에 곳곳에 부작용이 나타났다. 특히 늦게 도착하는 일행을 위해 비지정석을 점거하는 모습은 포스트시즌에서도 이어졌다. 몇몇은 의자를 테이핑하거나 A4 용지에 ‘자리있음’을 표시하고 자리를 비워 일찍 온 관중들에게 빈축을 샀다. 경기진행요원들이 테이프를 제거하려 애를 썼지만 이를 두고 관람객과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기업들의 단체 관람도 말썽이었다. 롯데백화점 인천점의 경우 비지정석 한 블록을 점거하고 아직 퇴근 전인 동료들을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때문에 몇몇 개인 관람객들은 자리를 찾지 못해 3층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지나친 음주 문화 역시 여전했다. 문학경기장의 경우 “알코올 함량 6% 이상의 주류, 캔류 및 유리병의 반입을 금지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이를 지키거나 단속하는 이는 찾아볼 수 없었다. 때문에 좌석과 통로 곳곳에 소주병이 뒹굴었다. 급기야 술에 취한 한 직장인은 마운드를 향해 바나나 껍질을 던지기도 했다.
2009년 WBC 경기 이후 야구에 푹 빠졌다는 강지희 씨(여·23)는 “친구들 중에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혼자 오게 됐다”며 예매한 나머지 티켓 2장을 현장에서 양도했다. 그는 “게시판에 티켓 양도 글을 올리자마자 문자가 30통 넘게 왔다”며 플레이오프 열기를 실감했다고 밝혔다. 경기 당일 직접 티켓을 주고받은 그녀는 “티켓을 교환하려면 예매번호와 예매당사자 주민등록번호를 알아야 하는데 직접 티켓을 주는 경우가 아닌 모르는 사람에게 거리낌 없이 개인 신상을 알려주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우려를 표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 사진출처=김용일 미니홈피 |
현재 삼성의 공식 응원단장은 ‘애니 비(ANY B)’라는 마스코트다. 대신 김용일 전 응원단장은 장내 아나운서 개념인 ‘스포츠자키’로서 진행을 담당한다. 경기대학교 이벤트국제회의학 출신답게 능수능란한 솜씨로 팬들을 즐겁게 하지만 타 구단에 비해 박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다. 이에 그는 “대구시민야구장은 다른 구단 경기장과 달리 도심가와 매우 가깝기 때문에 조금만 시끄러우면 민원이 제기된다”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페넌트레이스 우승 후 오랜 기간 충전해 온 만큼 삼성이 우승하는 데 한몫 거들겠다”며 단단히 벼르는 중이다. [수]
▲ 사진제공=SK 와이번스 |
SK 와이번스 박홍구 응원단장은 노련한 승부사다. 2009년부터 SK 와이번스의 응원단장을 지낸 그는 3년 연속 한국시리즈에서 팬들을 이끌게 됐다. 지난 플레이오프 1,2차전을 마치고 “사직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말로 소감을 표현했던 그는 때로는 절도 있는 점프로, 때로는 귀여운 짱구춤으로 관중을 사로잡는다. 지난 플레이오프 때 연신 쉰 목소리로 응원한 탓에 TV중계를 본 일부 팬들은 “걸걸한 목소리가 거슬린다”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상대 응원팀이 도발할 때마다 흘러나오는 엘비스 코스텔로의 ‘she’는 짧으면서도 위트 넘치는 반격이 될 것이다. [수]
애매함다… 정가에 팔아도 불법임다~
기자가 경기장을 찾아 확인한 결과 경기장 매표소에서는 여전히 암표상들이 들끓었고 단속하는 사람들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암표상들은 통상 2만~3만 원짜리 티켓을 3만~5만 원에 팔았는데, 지정석의 경우는 10만 원을 호가하기도 했다. 특히 티켓 경쟁이 치열했던 사직구장의 경우 2만 원짜리 비지정석 티켓이 10만 원에 팔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플레이오프 5차전을 앞두고는 “20만 원을 투자하면 100만 원을 벌 수 있다”는 글이 인터넷에 나돌았다. 부산 야구팬들의 열망을 금전화한 것이다.
어떻게 암표를 구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암표상은 “공식적인 예매말고도 연간 회원에게 부여되는 사전 판매나 기업의 단체 관람권 등 여러 루트를 통해 구하고 있다”며 “요즘은 그마저도 쉽지 않아 20장 정도만 구해와도 많이 구한 편”이라고 귀띔했다.
인터넷 예매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현장에서 암표상들 간 경쟁이 뜨거워지는 기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표를 팔기보다는 남은 표를 사려는 암표상들이 득세하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 예매가 익숙하지 않는 암표상들은 연신 남은 표를 자신에게 팔라며 구걸하다시피 해 관중들에게 불편을 초래했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한 암표 거래도 활성화됐다. 회원들끼리 물건을 사고파는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에서는 검색 한 번으로 티켓을 양도한다는 글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곳을 통해 티켓을 양도한 강 아무개 씨는 “서버까지 다운되며 순식간에 다 팔린 표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 장터에서 원래 예매가보다 몇 만 원씩 비싸게 올라온 것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타인에게 정가로 팔 경우에도 암표로 규정하는 것을 알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몰랐다”며 당황해했다.
카페 운영진들은 신고가 들어올 때마다 회원을 탈퇴시키는 등의 강한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그 수가 워낙 많아 사실상 속수무책인 상태다. 암표 매매에 항의하는 회원의 글에 한 운영진은 “표 값에 수수료만 더해서 파는 회원의 경우 탈퇴시켜야 하는지 등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있다”고 답했다.
KBO를 향한 팬들의 원성도 이어지고 있다. 고작 10만~20만 원 이익 보겠다고 진짜 관람을 원하는 야구팬들을 경기장 밖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KBO 홈페이지에는 암표상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는 글들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황 아무개 씨는 지난 7월 KBO 자유게시판에 “큰 경기에 암표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무분별한 암표 거래가 근절되지 않는다면 한국 야구의 발전도 더디게 진행될 것”이라며 티켓 실명제를 건의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KBO 측은 여전히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