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아빠들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골프강국 대한민국을 만든 ‘코리아 골프 대디’들이다. 이들이야말로 LPGA 100승 달성의 주역들이다. 이쪽의 아빠들은 자식들에게 전부를 쏟는다. 캐디는 기본이요, 운전사, 매니저, 요리사, 스포츠 마사지사, 심리상담가 역할까지 한다. 만능 에너자이저다. 그들의 지대한 관심은 자식의 성적과 직결된다. 고되지만 보람이 크다.
그런데 이쪽의 딸들도 문제를 일으킨다.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있는 이 구역 딸들은 아빠를 무시하기 시작한다. 중계방송을 하러 대회 현장에 가면 여지없이 목격하게 되는데 장소도 다양하다. 선수 네 명의 연습라운드에 동참했을 때였다. 한 발자국 앞서 가면서 딸의 샷과 퍼팅을 점검하는 아빠가 있었다. 자꾸 동료들과 수다를 떠는 딸에게 아빠는 한 번이라도 더 쳐보길 권한다. 그러나 딸은 동료 선수들이 보는 앞에서 아빠에게 심한 면박을 준다. 게다가 다른 딸들도 이구동성으로 아빠의 행동을 간섭이라고 맞장구 쳐 준다. 클럽하우스 식당 안에서도 비슷한 광경을 본다. 이번에는 갓 입문한 루키가 아빠에게 큰 목소리로 화를 내고 있다. 옆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는 부녀의 충돌 장면을 쉽게 발견한다.
자신이 골프백을 메주었을 때보다도 성적이 좋게 나오면 아빠는 더욱 조용해진다. 이제 본업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일선을 떠나온 지 너무 오래다. 엄마는 다른 딸들의 엄마들과 골프장 주변 아울렛 매장에 쇼핑을 하러 간다. 그러나 아빠는 돈을 함부로 쓸 수 없다. 조금이라도 눈에 띄는 행동을 하면 ‘자식이 땀 흘려서 번 돈 애비가 날린다’는 뭇매를 맞기 십상이다.
아빠들은 외롭다. 방관하는 아빠도 참견하는 아빠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어깨는 무겁고 뒷모습은 쓸쓸하다. 아이가 달라지고 딸이 우승하면 아빠는 기뻐한다. 그러나 외로움은 남는다. 어쩌면 그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단순할지도 모른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우당탕 맨발로 뛰어나오면서 품으로 파고드는 내 분신들의 한마디!
“아빠!” 하는 외침.
아빠들은 사랑받고 싶어 한다.
SBS아나운서 최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