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고 한적한 인천의 바닷가 마을. 이곳에 50여 마리의 고양이들을 위해 천국을 만든 사나이가 있다. 자신을 '고양이 기숙사 학생주임'이라 칭하는 김영재 씨(48)가 그 주인공이다.
기숙사라고 해서 근엄하고 진지한 분위기를 상상한다면 오산이다. 집 앞으로는 넓은 바다가 펼쳐지고 푸른 잔디밭 위엔 알록달록한 색감의 건물과 캣 타워 수십여 개의 숨숨집이 시선을 잡아끈다.
고양이들이 단체 생활을 하는 공간답게 '편식 금지', '물 찍어 먹기 금지', '9시 취침' 등 정확한 규칙까지 세워 놓았다. 대표적인 '영역 동물'로 알려진 고양이들이 한 지붕 아래에서 서로 부대끼며 한솥밥을 먹게 된 사연은 뭘까.
본래 도시에서 프랜차이즈 식당 사업을 했다는 영재 씨. 사업이 어려움에 처해 절망에 빠졌을 때 끈끈이 덫에 걸린 고양이 한 마리를 구조하게 되며 고양이와의 연이 처음 시작됐다. 녀석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보니 괴로움에 빠져 있을 시간도 없어지고 오히려 함께 살고 싶어졌다는 것.
그 일을 시작으로 병원에 유기된 아픈 고양이들을 한두 마리씩 입양하기 시작한 후 마릿수가 점점 늘어나다 보니 지금의 대가족을 꾸리게 됐다.
고양이들이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도시 생활을 과감히 접고 가족과 함께 4년 전 이곳에 정착했다는 영재 씨. 사랑스러운 고양이 원생들과 함께하는 그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아침 8시 단체 기상 시간을 시작으로 식사 시간과 놀이시간은 물론 취침 시간까지 규칙에 맞춰 운영되는 이곳. 신기한 것은 수십여 마리 고양이들이 영재 씨의 신호에 맞춰 질서 정연하게 움직인다.
영재 씨와 찰떡 호흡을 자랑하는 이 녀석들도 처음엔 사람에 대한 경계심으로 눈 한 번 맞추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잔병치레가 많다는 이유로 버려지고, 물건을 망가트린다고 버려지고, 보호자가 해외로 가서 버려지는 등 하나같이 아픔 없는 아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라서 더 극진한 사랑으로 보듬어줘야 한다는 게 영재 씨의 철칙이다. 먹이고 놀아주고 재우기까지 어디 하나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그의 지극정성이 통했던 것일까. 고양이들을 위해 쓰라며 마을 사람들은 건축 자재를 나눠주기도 하고 실제로 운행되었던 기차 한 칸을 뚝 떼어 기부해주기도 했다. 과거의 상처는 옛말, 따스한 사랑 속에서 살아가는 바닷가 고양이네의 봄날 일기가 펼쳐진다.
햇살 좋은 어느 날 고양이네 새 식구가 찾아왔다. 영재 씨가 버선발로 맞이한 아이들은 최근 많은 사람의 공분을 산 '동탄 고양이 학대' 현장에서 구조된 '동이'와 '탄이'다. 다행히 몸에 상처는 없지만 참혹한 현장 속에서 공포에 떨었을 두 녀석. 사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밥도 물도 거부하는 모습에 영재 씨는 가슴이 미어진다.
상처가 깊은 아이들일수록 더 천천히 세심하게 다가가는 게 중요하다는데 과연 동이와 탄이는 영재 씨에게 마음을 열고 이곳에 무사히 적응할 수 있을까.
천국보다 아름다운 곳. 사랑이 넘치는 바닷가 고양이네 이야기를 만나본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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