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간조사업체 ‘셜록 홈즈’를 운영하고 있는 박경도 국장. 민간조사원은 차세대 유망 직종으로 꼽히는 직업이기도 하다. |
‘흥신소’ ‘심부름센터’ 등으로 불리며 오랫동안 천대받았던 민간조사업계가 달라지고 있다. 협회를 만들어 전문적인 교육을 시키는가 하면 민간조사원들끼리 회사를 꾸려 조직적·전문적인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형국이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민간조사원을 차세대 유망 직종의 하나로 꼽기도 한다.
민간조사원을 직접 만나 사립탐정의 세계를 들어봤다.
민간조사업체 ‘셜록 홈즈’를 운영하고 있는 박경도 국장은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이 업계에 뛰어들었다. 그는 “많은 흥신소에서 제대로 업무처리를 안 해주고 현장조사 한번 없이 의뢰비만 챙기는 경우를 봐 왔다. 민간조사 체계가 잡히기 시작한 것은 몇 년도 채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과거 민간조사의 경우 배우자의 불륜 현장을 잡아달라거나 실종자를 찾아달라는 의뢰가 대부분이었다면 현재는 산업스파이에서부터 해외도피사범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이 한층 넓어졌다. 해외 로펌에서 짝퉁 유통업자를 찾아달라는 의뢰가 들어오기도 한다.
박 국장에게 기업 의뢰에 관한 사례를 물었다. 그는 한 중견업체 사장이 회사 임원을 조사해달라고 의뢰한 일화를 들려줬다. “이 회사는 7년간 기술개발을 거쳐 올해 중국 수출을 시작하며 빛을 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다 중국에 유사 제품이 돌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우리에게 조사를 의뢰했는데 두 달 정도 진행한 결과 한 임원이 회사 몰래 바이어와 만나는 장면을 포착했다. 게다가 몰래 다른 회사를 설립한 것까지 찾아냈다. 결국 그 임원은 지난 8월 처벌되었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민간조사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이다. 그들은 증거 수집을 위해 때론 노숙자로, 때론 비즈니스맨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사기꾼들을 속여 넘길 만큼의 언변도 갖춰야 한다. 돈 벌 목적만으로 뛰어들었다간 1년을 버티지 못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해외도피사범의 경우 외국어 능력이 필수다. 박 국장은 “회사돈을 횡령한 후 도피한 사람의 경우 주변 지인들과 접촉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외도피사범은 국내로 들어오게 하기까지가 매우 어려운데 이때 미국서 활동하는 사립탐정들과 공조해 추적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현재 박 국장은 ‘나일론 환자’에 관한 조사에 착수했다. “이 환자는 허리가 아프다며 여러 보험회사를 통해 억대의 보험료를 탔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다가 최근 집으로 퇴원했다. 허리를 15도 이상 움직이지 못한다는 환자의 설명을 뒤집기 위해 보험사에서 의뢰를 요청했다. 인근 주민의 제보로 백화점을 가거나 배드민턴을 치는 것은 봤다는 진술을 확보한 상태”라며 “아마 우리가 만든 증거를 토대로 보험금 환수 조치가 이뤄질 것 같다”고 자신했다.
이처럼 수많은 곳에서 활약하는 박 국장은 하루빨리 민간조사업이 법제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민간조사업법’은 2007년 법안이 추진된 이후 매년 거론되고 있지만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태다. 항간에는 개인 사생활보호 문제와 더불어 민간조사원을 검찰과 경찰 중 어느 기관의 관리감독을 받을지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원인으로 꼽는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흥신업이 성행하고 개인정보 피해가 잇따르자 2007년 6월 ‘탐정업무의 적정화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여 현재는 신고제로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사립탐정이 총을 소지할 수 있고 국가 전산망을 볼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경우도 있다.
박 국장은 “매년 통과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가 엎어지는 현실이 안타깝다. 제대로 된 법이 있어야지 피해자가 덜 발생하고 형평에 맞는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최근에도 다른 민간조사원에게 의뢰했다 피해를 입고 우리에게 찾아오는 사례가 있었다”며 관련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아직 국내에는 사립탐정(민간조사원)에 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관련법도 전무한 상태다. 하지만 이미 1500여 명 이상의 사립탐정이 활동하고 있고, 서울에만 200여 개가 넘는 회사가 존재하는 거대한 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현재 협회를 통해 민간 자격을 부여해 주는 곳은 ‘PIA(Private Investigation Administrator)협회’와 ‘민간조사협회’가 있다.
PIA 협회에서 주관하는 ‘PIA 탐정·민간조사 자격시험’의 경우 연 2회 실시된다. 시험 과목은 법학개론, 범죄심리학, 민간조사실무 등으로 만만치 않다. 또 동종업계 경력자에 한해 대학교에서 최고위 과정을 이수할 수도 있다.
협회 관계자는 “매년 자격시험을 통해 80여 명, 최고위 과정을 통해 200여 명의 민간조사원들이 배출되고 있다”며 “이 중에는 현직 교수를 비롯해 경찰관과 로펌 사무장 등 직업도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한국특수직능교육재단 하금석 회장은 “OECD 선진국 중 사립탐정제도가 없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라며 “가장 문제시 되었던 사생활침해 문제에 관해서도 2011년 9월 30일 개인정보보호법이 시행되면서 우려가 크게 불식되었다”고 주장했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