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기간 이재명 당 그립력 놓고 뒷말 무성…‘벼랑 끝’ 당권 도전 통한 재신임 승부수 던질 수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아니냐.”
‘12 대 5’로 끝난 6·1 지방선거 직후 정치권 한 관계자가 던진 말이다. 박지현·윤호중 비상대책위원회는 6월 2일 역대급 참패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다. 비대위를 구성한 지 두 달 만이다. 이 관계자는 민주당 진짜 위기는 선거 패배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 했다. 사실상 식물 원톱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당의 폐쇄적 구조’다. 그러면서 “(회의) 개시만 하고 매듭을 못 짓더라”라고 했다. 원톱인 이재명 의원이 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를 주재하지 않으면서 선거 기간 내내 권력공백이 일어난 점을 꼬집은 말이다. 정치권 다른 인사들도 이 지점이 야당 내 ‘이재명 리더십’의 현주소라고 잘라 말했다.
실제 그랬다. 이 의원은 5월 13일 정치적 고향인 경기 수원시 ‘김동연 캠프’에서 열린 첫 중앙선대위에 모습을 드러낸 뒤 서울 여의도를 비롯해 비인천 지역에서 선대위회의를 거의 주재하지 않았다. 되레 당 지도부가 인천 계양을 지역에서 선대위회의를 열고 이 의원을 지원사격 했다. 이는 각 당의 선대위 원톱과는 거리가 먼 행보다. 과거 당 원톱은 선거 국면에서 선대위 회의를 직접 주재, 공중전을 진두지휘했다. 여의도 한 전략통은 “프레임 전쟁을 통한 구도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중전”이라고 했다. 중앙선대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 의원의 전략은 ‘프레임 전쟁’을 포기한 장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반론도 있다.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 의원이 예상 밖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지역에 발이 묶였다’는 것이다. 이 의원이 출마 선언을 한 5월 8일 이후, 서울과 경기 지역에 방문한 횟수는 5회가 채 안 됐다. 자신이 출마한 계양을을 포함, 인천 일정을 소화한 횟수는 50회를 웃돌았다. 지방선거에 출마한 민주당 한 후보는 “거물급 주자인 본인이 정치 신인한테 고전하는데, 타지역 선거유세를 할 수 있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당 내부에선 “전국 단위 선거지원도 못 할 거면 왜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았느냐”라는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민낯을 드러낸 민주당발 권력 공백이다. 특히 비문(비문재인)계 원톱이 나서자 지도부 리더십 공백은 장기화됐다. 이 의원이 선대위 회의 주재를 하지 않는 사이, 친문계 등은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 용퇴’ 발언을 한 박지현 전 공동비대위원장 고립 작전에 나섰다. ‘이준석 대항마’인 박지현 전 위원장은 이재명 의원과 송영길 전 의원 요청으로 비대위에 합류했다. 박 전 위원장을 ‘친명(친이재명)계’로 분류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박지현 난’을 둘러싼 파열음은 이내 터졌다. 윤호중 전 비대위원장은 박 전 위원장이 연이틀 사과를 요구한 5월 25일 비공개 회의에서 “이게 지도부냐”라며 책상을 치고 나갔다. 이 자리에는 윤 전 위원장 이외에도 86그룹인 전해철·김민석·박홍근 의원 등이 있었는데, 이들은 “지도부와 상의하고 말하라” “개인 자격으로 있는 자리가 아니다” 등의 날선 발언으로 박 전 위원장을 압박했다.
“이럴 거면 왜 이 자리에 앉혔느냐”라는 박 전 위원장 발언도 이 과정에서 나왔다. 친명계의 지원으로 원내대표가 된 박홍근 의원도 ‘박지현 저격’에 나서면서 당 내부는 쑥대밭이 됐다. 보수진영 한 인사는 “민주당 기득권 세력이 박 전 위원장이 발언할 때마다 ‘네가 뭔데’라고 한 것”이라며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 산발적으로 터져 나온 당내 구심점 부재는 민주당에 두고두고 부담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의원이 선대위에서 중심축 역할을 전혀 못 했다는 얘기다.
그러자 당 인사들 사이에선 “지난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로 석패한 이 의원조차 당내 그립(장악력)이 없다면, 누가 진짜 원톱이 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심심치 않게 나왔다. 진보진영 한 관계자는 “제1야당의 진짜 위기는 바로 이 지점”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는 친문계의 ‘이재명 고립 작전’과 맞물려 진보진영 안팎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여의도 정치권 안팎에선 선거기간 내내 “친문계가 이재명 책임론을 앞세워 전쟁을 벌인다고 하더라” 등의 얘기가 흘러나왔다. 앞서의 진보진영 관계자는 “차기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명계의 예봉을 꺾겠다는 사전포석”이라고 분석했다.
지방선거 막판, 민주당 내부 갈등 화약고였던 박지현 전 위원장의 ‘86 용퇴론’을 둘러싼 기싸움도 이 계파 전쟁의 복선이었다는 얘기다. 당 복수 인사들에 따르면 친문계 인사들은 박지현 돌출행동에 대해 ‘이재명 책임론을 면피하려는 전략’으로 판단하고 강경파인 윤호중 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을 필두로 파상공세를 폈다. 당 주류 측에선 “박 전 위원장 배후에 누가 있지 않겠느냐”라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일각에선 박 전 위원장이 친명계의 하달을 받고 계파 갈등 최전선에 섰다는 주장도 폈다. 다만 당 복수 관계자들은 “친명계 인사들도 박지현 비토 기류가 많았다”고 일축했다.
‘박지현 배후론’의 진위와 관계없이 ‘비문 원톱의 리더십 공백’은 포스트 지방선거 정국에서 민주당이 풀어내야 할 최대 과제다. 이동윤 민주당보좌진협의회 회장은 사견임을 전제로 “당이 중앙위 투표를 통해 인준한 비대위원장의 공식 기자회견을 단지 개인 차원의 입장 발표라고 할 수 있느냐” “사과로 선거를 이기지 못한다고 하는데, 본인들은 과연 사과라도 하셨나”라고 친문·86그룹을 직격했다. 비문 인사들은 “당 고질병인 패권주의 프레임에 걸리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입을 모았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이 의원의 행보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안갯속’이다. 특히 전쟁에서 패한 이 의원의 정치적 내상은 불가피하다. ‘방탄용 출마’라는 비판 속 연고도 없는 지역에 ‘홀로’ 살아남으면서 정치적 명분도 실익도 잃었다. 이로써 이 의원이 애초 구상한 포스트 전략은 어그러질 것으로 보인다. 당 인사들에 따르면 이 의원이 총괄선대위원장직을 수락한 것은 ‘계양을 출마=방탄 출마’를 상쇄하려는 전략의 일환이었다. 여기엔 지방선거에서 선전할 경우 조기 등판에 대한 비판 여론을 희석할 수 있다는 셈법이 깔렸다. 특히 이재명 조기 등판에 찬성한 인사들은 “이 의원만큼 전국구 카드가 어디 있느냐”며 출마를 옹호했었다.
그러나 이재명식 정면 돌파는 실패했다. 당 일각에선 이 의원의 득표율이 인천 계양을 터줏대감인 송영길 전 대표가 얻은 득표율을 밑돌자, “전투에서도 패한 게 아니냐”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이 의원의 최종 득표율(55.25%)은 송 전 대표가 지난 총선에서 기록한 득표율(58.67%)보다 3.42%포인트 낮다.
당 내부에선 개표가 끝나기도 전에 ‘이재명 책임론’이 터져 나왔다. ‘쓴소리 맨’ 김해영 전 민주당 의원은 6월 1일 SBS 개표방송에서 이 의원을 향해 “지방선거 패배 원인 중 하나”라며 “당이 (이재명에게) 대선과 지방선거, 총 두 번의 기회를 줬지만 패했다. 책임론을 제기할 때”라고 말했다. 범주류인 SK(정세균)계 이원욱 의원도 “상처뿐인 영광”이라고 했다. 이에 친명계 한 의원은 “대선이나 지방선거 모두 민주당에 어려운 선거였다”며 “(이재명 책임론 제기는) 그 점을 간과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의원을 기다리는 허들은 이뿐만이 아니다. 당내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 중반 출생자)들은 세대교체론을 준비 중이다. 수도권 한 의원은 “세대교체 단행 없이 당 구조의 혁신은 불가능하다”며 “3연패를 한 지금이 당의 민주화를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했다. 이 의원이 위로는 친문계, 아래로는 세대교체론에 갇힌 셈이다. 이에 따라 이 의원은 자신에 대한 책임론이 한풀 꺾일 때까지 로키 행보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벼랑 끝으로 내몰린 이 의원으로선 사실상 퇴로가 없어진 만큼, 당권 도전을 통한 ‘재신임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의원의 정치적 생명을 건 베팅이 시작됐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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