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때부터 특사경 100명 증원 모색…라임·옵티머스 등 펀드사기 재주목
이복현 신임 금감원장은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1998년 공인회계사 시험에 먼저 합격한 뒤 200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32기로 검사에 임용된 뒤로는 군산지청 검사, 법무부 검사과 검사, 춘천지검 검사,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4부장,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장 등을 지냈다.
특히 2019년 8월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분식회계 사건 수사를 맡아 삼성그룹 불법 합병 및 회계 부정 의혹 사건과 관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2020년에는 전직 KT 임직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수사를 맡는 등 조세범죄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검찰 내에서는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된다. 2006년 윤석열 대통령이 대검 중수1과장으로 현대차 비자금,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등을 수사할 당시 차출됐고, 2013년 윤 대통령이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팀을 이끌 때에도 참여했다. 또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검 수사 팀에 파견돼 삼성그룹 승계 문제를 수사한 바 있다.
올해 4월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한 것에 반발해 검찰 내에서는 가장 먼저 사표를 냈는데, 한 달여 만에 금감원장으로 복귀하게 됐다.
#자본시장 특수사법경찰 100명 증원 계획…재소환된 라임‧옵티머스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이 금감원장의 취임으로 금감원 내 금융 검사·조사 기능이 확대될 것으로 본다. 금감원 내 수사기관인 자본시장 특별사법경찰관(특사경) 규모와 권한이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자본시장 범죄 수사를 위해 마련된 특사경은 검찰청 등에 파견돼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은 사건에 관한 수사를 진행한다. 특히, 금융 관련 사건에 있어서만큼은 검찰보다 빠른 수사가 가능하다는 평가다. 검찰의 영장 집행은 법원 통제를 받지만 특사경은 ‘금융감독원 특별사법경찰관리 집무규칙’에 따라 필요시 임의제출서를 작성하고 영장 없이도 압수‧수색이 가능하다.
자본시장 특사경 확대는 이미 대통령 인수위에서 예고된 바 있다. 법무부는 윤 대통령이 정식 취임 전이었던 4월 5일 문재인 정부에서 해체됐던 검찰의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의 정식 직제화를 추진하는 계획을 보고하면서 서울남부지검에 범죄수익환수부, 범죄수익환수과 등의 신설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이때 함께 제안된 것이 금융위·금감원 특사경 100명 이상 증원 계획이었다. 합수단이 부활하고 금융·증권범죄 수사를 확대할 경우, 자본시장 범죄에 특화된 특사경의 수요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는 기존에 16명(금융위 1명, 금감원 15명)이던 인원을 31명(금융위 5명, 금감원 26명)으로 늘리고, 남부지검 파견 인원도 6명(금융위 1명, 금감원 5명)에서 9명(금융위 2명, 금감원 7명)으로 확대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금감원장 취임으로 라임‧옵티머스 등 전 정부에서 일어난 펀드 사기 사건이 다시 주목 받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 불공정 거래 방지인 데다 여당에서도 여러 차례 라임‧옵티머스를 재수사하라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특수통 검사를 신임 금감원장으로 보낸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는 관측이다.
이 금감원장 개인의 의지도 엿보인다. 그는 6월 7일 취임사에서 “불공정 거래 행위 근절은 시장 질서에 대한 참여자들의 신뢰를 제고해 종국적으로는 금융시장 활성화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 하루 만인 8일에는 사모펀드 사태 재조사 가능성을 묻는 질의에 “개별 사모펀드 사건은 종결되고 (수사당국으로) 넘어간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여러가지 사회 일각의 문제 제기가 있는 것도 알고 있다. 시스템을 통해 (사건을 다시) 볼 여지가 있는지 점검하겠다”고 답했다. 과거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은 셈이다.
한 정치권 인사는 “윤 대통령은 당선 이전부터 문 정부에서 벌어진 사모펀드 사태에 대한 재수사 필요성을 여러 번 강조했다. 이미 새 정부 출범 전부터 증권·금융범죄합동수사단 부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는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호 지시로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부활시켰다. 이번 인사로 윤석열 사단의 두 검사가 정부 부처와 공직유관단체의 지휘권을 갖게 되면서 금융 관련 수사에도 속도가 날 것으로 본다”고 했다.
#금융계, 사정기관화 우려…'이재용 기소한 리더십 통할까' 지켜보는 눈도
금감원 설립 이래 처음으로 특수통 검사를 수장으로 맞게 된 금융권의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일각에서는 과도한 감독 및 제재에 대한 우려와 안정적인 리더십을 요구하는 의견이 많았다. 장기간 특정 분야 수사만 해 온 검사의 경우 경제 관료에 비해 시장 전체를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이 다소 부족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또, 금융 수사에만 무게를 두다 당면한 현안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업계 사정을 잘 아는 관료 출신이 아닌 검찰 출신이 금감원장으로 오게 되면서 금융사에 칼바람이 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안 그래도 금융사를 대하는 금감원의 고압적인 태도가 논란이 된 적이 있었는데, 이런 분위기가 더 팽배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도덕적 해이로 발생하는 내부 횡령 문제에 있어서는 감독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외에도 금리 인상, 산업 진흥 등 당면한 현안이 많다. 디지털 혁신 전환기에 서 있는 많은 금융사들과 소통해가면서 산업 진흥과 혁신에 대한 방법도 모색할 수 있는 안정적이고 전문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이 금감원장의 지난 행보를 바탕으로 앞으로를 관측했다. 세무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공인회계사 자격이 있고, 굵직한 금융‧경제 관련 범죄 수사를 맡아 실무적 역량이 있다는 평가가 많다. 능력 면에서 모자람이 없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금융 전문 변호사는 이 금감원장의 리더십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부장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이라는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의 권고에도 기소를 결정했다. 대검 수심위 불기소 권고를 따르지 않은 첫 사례라 수사팀 개개인에게도 엄청난 부담이 있었을 텐데 이를 끌고 간 것”이라면서도 “다만, 상명하복의 검찰식 리더십이 금융계에서도 통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는 2020년 6월 삼바 분식회계 관련 이 부회장 등에 대한 혐의 입증이 어려울 것이라면서 불기소 및 수사 중단을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금감원장이 이끌던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는 그해 9월 “사안이 중대하고 객관적 증거가 명백한 데다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사건으로서 사법적 판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면서 이 부회장 등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와 별개로 윤 정부의 검찰 편중 인사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이 금감원장과 한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최근에는 조상준 전 서울고검 차장검사가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에, 박성근 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이 국무총리 비서실장으로 인선됐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 등 정치인 경력의 검사를 제외하더라도 정부와 대통령실의 핵심 보직에 임명된 검찰 출신 인사는 현재까지만 13명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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