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질식수비
동부의 가장 큰 무기를 꼽는다면 ‘질식수비’다. 강동희 감독의 색깔을 대별하는 질식수비는 부임 3년차가 되면서 더욱 견고해졌다. 그런데 동부의 질식수비 농구로 인해 농구가 재미없어졌다는 평가도 있다. 이에 대해 김주성은 강하게 반박했다.
“먼저 알아야 할 기록이 있다. 지난 시즌 동부가 속공 1위였다는 사실을. 농구의 묘미는 속공에 있다. 빠른 농구를 잘 구사해야 팬들을 즐겁게 하는 경기를 보여줄 수 있다. 속공에다 질식수비까지, 3점슛 등 외곽슛이 적은 것 빼고는 경기 때마다 박진감 넘치는 플레이를 보여줬다고 자신한다. 동부는 빠르고 재미있는 농구를 해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속공을 펼치며 압박을 가하는 수비를 펼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느냐.”
# 혹사 논란
김주성을 대변하는 몇 개의 단어들 중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혹사’다. 강동희 감독은 이 단어가 등장할 때마다 나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팬들 입장에선 혹사일 수도 있겠지만, 선수단을 이끄는 감독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 감독은 김주성의 출전 시간을 배려하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김주성 자신이 이런 논란에 대해 할 말이 있다며 나섰다.
“혹사라는 단어는 남이 억지로 시켜서 힘들게 일을 하는 거 아닌가. 그러나 난 지금까지 내 의지대로 경기를 뛰었다. 솔직히 내가 힘들어서 못 뛰겠다고 하면 감독님께서 쉬게 해주신다. 항상 의사를 물어보시고 출전 여부를 결정하시기 때문에 ‘혹사’란 말은 완전히 잘못된 단어다. 하지만 간혹, 감독님한테 미안해서 아파도, 힘들어도 그냥 뛰겠다고 말한 적은 있었다. 내가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 게 혹사는 아니지 않나.”
# 김승현에 대한 아쉬움
“나를 비롯해서 김승현, 방성윤 선수 등이 제 역할을 못했다. 스타플레이어로 사랑을 받고 농구의 부활을 이끌며 국민적인 관심을 한몸에 받을 수 있는 선수가 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승현이 형의 부재는 많은 아쉬움을 안겨준다. 실력도 외모도 인기도, 최고의 정점을 이룬 선수라 승현이 형이 계속 코트에 남아 있었더라면 농구가 더 많은 주목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승현이 형이 왜 대단한 선수인지는, 같이 뛰어본 선수들만이 알 수 있다. 대표팀에서 승현이 형과 함께 뛰면서 이 형과 동부에서 뛸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생각도 했었다.”
# 대표팀
김주성은 지난 아시아선수권 대회 참가 후 대표팀 은퇴를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그러나 현재 허재 감독이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어 자신의 의사를 강하게 어필하기도 어려웠다. 지금 김주성은 대표팀 발탁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일단 부르면 가야 한다(웃음). 박지성 선수처럼 유명한 선수들은 대표팀 은퇴할 때 기자회견도 하는데, 난 공식적으로 그런 자리를 만드는 게 부끄러웠다. 내가 뭐라고 기자분들 모셔놓고 은퇴 운운하느냐 싶어서였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었더니 자연스럽게 대표팀 재합류로 분위기가 흐른 듯하다. 대표팀이 가기 싫어서, 힘들어서 은퇴하려 했던 게 아니다. 내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같았고,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럴 바엔 후배들이 들어와서 경험을 쌓고 기량을 키우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은 허재 감독님과의 대화가 필요할 것 같다.”
# 은퇴 후
1979년생인 김주성은 ‘아직은’ 자신의 나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서른 세 살의 나이는 호적상의 나이일 뿐 자신은 여전히 20대 중반인 것 같은 착각이 든다는 것.
“그래도 나이는 속일 수 없더라. 요즘 들어 자꾸 나와 인연을 맺었던 감독님들의 농구 지도법이나 전략, 색깔 등등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걸 보면. 전창진, 유재학, 허재, 강동희 감독님들의 좋은 점들만을 뽑아서 내 걸로 만들고 싶다. 한국 최고의 명장 소리를 듣는 분들의 농구를 자꾸 훔쳐보게 된다. 내가 은퇴 후 가고자 하는 길이 바로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
김주성은 해마다 농구 인생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 농구 선수들 중 최고의 몸값(6억 9000만 원)을 자랑하는 탓에 ‘밥값’을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지만 위기를 겪고 그걸 이겨낼 때의 희열 또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김주성한테 마지막으로 물었다. 농구 선수 중 최고의 롤 모델은?
“(서)장훈이 형이다. 신장도, 슛도, 체격도 모두 나보다 월등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더라. 장훈이 형 앞에선.”
부산=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