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직원들 “주식 매입 압박” 불만, 새노조 “구 대표 연임과 우호지분 확보 위한 것”…KT “자율로 이뤄진 건”
KT의 우리사주 매입 청약 신청 기간이 6월 15일 종료됐다. 종료일에 임박해 사측이 직원들에게 우리사주 매입 청약을 강요했다는 내부 고발이 익명 사이트 블라인드를 비롯해 직원들이 모여 있는 익명 카카오톡 단체방 등지에서 터져 나왔다. KT 직원 A 씨는 “상부에서 팀별로 집계해서 현황 보고 받고 있기 때문에 직책자들이 인사 평가에 반영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저희 팀장도 휴직자한테까지 거듭 전화로 물어보고 안 하겠다고 하면 사유서 작성까지 지시했다. 저도 눈치가 보여서 가장 적은 금액으로 청약을 넣었다”고 말했다.
KT가 직원 복지를 위해 추진 중인 우리사주조합원 대상 청약은 사내근로복지기금을 활용해 100만 원 상당의 무이자·무담보 대출을 받아 우리사주를 매입하는 것과 청약금액 2000만 원 한도 내에서 500만 원 단위로 청약을 신청하는 방식으로 나뉜다. 후자의 경우에도 대출 이자는 KT가 100% 지원한다. 최근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올 3월 말 기준 KT 전체 직원 수는 기간제 근로자 705명을 포함해 2만 1410명이다.
일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다소 황당한 방식의 복지라는 주장이 나온다. KT 새노조 관계자는 “자사주를 저렴하게 또는 무상으로 주는 게 아니라 대출을 알선해 자사주를 매입하게 하고 주가 방어시키는 게 직원 입장에서 복지라 보기 어렵다. 비록 무이자라도 대출과 빚투자가 복지로 포장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다만 KT 측은 주가 상승으로 인한 이득과 더불어 연말에 400만 원까지 소득공제가 되고 직원들이 취득한 우리사주를 통해 배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KT는 취득 주식수의 15%를 무상으로 지급한다는 조항도 추가했다.
직원들 불만은 사그라지지 않는 분위기다. KT 직원들은 지난해 임금단체협약 결과 추가근무수당이 삭감되며 실질적으로 연봉이 깎였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회사의 처우에 불만이 크다. 그런 와중에 우리사주 매입 압박이 들어오자 내부에서 일부 직원들을 중심으로 불만이 들끓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KT 직원 B 씨는 “계속 전화하고, 숫자 집계하고, 물어보고, 면담하고… 복지 혜택 안 받겠다는 게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쫓아다닐 일이냐”며 “영업실적이 역대급으로 나왔으면 성과급을 줘야지 무이자 대출로 주식 강매하니까 납득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대출 원금을 갚아야 하는 직원들 입장에서는 매입 청약한 우리사주의 주가가 하락하는 것도 리스크다. 현재 KT 주가는 최근 10년 사이 최고점을 찍고 있다. 증권사들이 잡은 KT 목표 주가는 4만 원 중반 수준이다. 현재 주가는 3만 원 후반대로 상당히 근접한 상태다. 구현모 KT 대표이사는 그동안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통신주가 경기방어주인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주가가 크게 오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현재 기업공개(IPO·상장) 시장이 얼어붙어 자회사 상장이 불투명해진 점도 주가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직원들이 자기 의사에 반해서 주식을 매입했다면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재열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어느 정도 수위의 강요였는지, 실제 요건을 충족하는지는 법정에 가서 다퉈봐야 하지만 원칙적으로 따지면 협박 등으로 타인에게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할 경우 형법상 강요죄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조합원들이 불만이 있더라도 현재 실제로 발생한 피해사실이 없어서 손해배상 청구는 어려워 보인다. 사실관계를 더 따져봐야겠지만 금융감독원에 진정서를 넣어서 다퉈볼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측의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두고, 구현모 대표의 연임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구현모 대표는 실적 개선을 이끌었지만 사법 리스크도 안고 있다. KT는 올해 1분기 연결기준 매출 6조 2777억 원, 영업이익 6266억 원을 기록하며 어닝서프라이즈를 달성했다.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41%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2010년 이후 12년 만에 달성한 역대 최고 실적이다. 특히 5G(5세대 이동통신)를 비롯해 구 대표가 이끈 DIGICO나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사업 등이 크게 약진한 덕택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구현모 대표는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구 대표는 2014~2017년 회사 돈으로 상품권을 사들였다가 되판 금액으로 100여 명의 국회의원을 후원해 황창규 전 KT 회장을 포함한 전직 임원들과 함께 기소됐다. 지난 6월 16일 KT 전직 임원들 4명은 1심에서 정치자금법 위반과 업무상 횡령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구 대표 외 5명의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지만 이번 1심 판결로 유죄 판결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상태다.
KT 지분의 13%를 들고 있는 국민연금이 연임을 반대할 가능성이 높은 이상 구현모 대표 연임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실제로 같은 ‘쪼개기 후원’ 논란의 당사자이자 구 대표의 측근인 박종욱 KT 각자대표(경영기획부문장·안전보건총괄) 또한 지난 3월 31일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의 반대에 부딪혀 자진 사퇴했다. KT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당시 내부적으로도 국민연금이 반대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어서 박종욱 전 이사가 자진 사임하는 형태로 모양새를 갖춘 것”이라고 귀띔했다.
구현모 대표가 연임에 나선다면 국민연금의 반대를 넘어서야 하는데 그러려면 내년 주총을 대비해 우호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KT 새노조 관계자는 “우리사주 매입 청약 강요는 직원들에게 강제로 주식을 매수하게 만들어 주가 띄우고, 이를 실적이라며 연임하고, 의결권을 위임 강요해서 우호지분 확보하는 일석삼조를 효과를 노린 경영행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KT는 박 전 이사 선임 문제가 불거진 지난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우리사주를 포함한 개인주식의 의결권 위임을 강요하는 문제로 내홍을 겪은 바 있다.
이와 관련, KT 관계자는 “우리사주 매입 청약 제도는 자율 하에 이뤄진 건이기 때문에 별도로 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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