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탈원전 정책 등 겨냥 사정정국 본격화, 진지전 넘어 전면전 갈 수도…‘강공 드라이브 부메랑 될 것’ 지적도
정가에선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탈원전 정책 등 족집게식으로 ‘적폐’를 도려내는 진지전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일단 나온다. 그러나 전임 정권의 족적을 전방위적으로 들여다보는 전면전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고개를 들었다. 김정숙 여사의 옷값 논란을 건드린다면 그때부터는 전면전이 된다는 기류도 감지된다.
#예고편대로 진행 중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 2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해야죠. 해야죠. (수사가) 돼야죠”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발끈했고, 정치 보복 프레임을 윤 대통령에게 씌우면서 총공세를 폈다.
이제 야당이 된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6월 16일 입장문을 내고 지난 2월 윤 대통령 발언을 소환하며 맹공을 퍼부었다. 윤건영 고민정 등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의원 15명이 참여한 입장문에서 이들은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집권하면 당연히 수사하겠다며 정치보복을 공언했다”며 “국민 우려의 근거는 바로 윤 대통령 본인의 말”이라고 했다.
실제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 때 일어났던 여러 정책 집행에 대해 글자 그대로 ‘총체적’ 재검에 나선 모양새다. 이를 통해 문제점이 있으면 밝히고, 또 필요한 경우 수사까지 진행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윤 대통령은 6월 22일 원자력발전 설비 업체인 창원의 진영TBX를 찾은 자리에서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에 대해 “우리가 5년간 바보 같은 짓 안하고 원전 생태계를 더욱 탄탄히 구축했다면 지금은 아마 경쟁자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행태를 ‘바보 같은 행동’으로 몰아붙인 셈이다. 또 윤 대통령은 “지금 여기 원전 업계는 전시다. 탈원전이라는 폭탄이 터져 폐허가 된 전쟁터”라고 덧붙였다. 전임 정권이 원전 업계에 폭탄을 터뜨려 난장판을 만들었다는 의미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6월 21일 공공기관 혁신을 강조한 것도 문재인 정부의 잘못을 질타하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전력 등 많은 공기업이 재무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 부분이 전임 정부의 실책과 직결돼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임기 5년 동안 공공기관이 29곳, 인력은 11만 6000명 각각 증가했다. 부채는 84조 원 늘었다.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공기업이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5곳에서, 2021년 18곳으로 늘었다고 대통령실은 집계했다. 윤 대통령의 한 측근 인사는 “윤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과도하게 공공 부문을 확대했다. 이를 반드시 바로잡겠다는 게 윤 대통령 의지”라고 전했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 대북 정책에 대해서도 전면적 검증을 예고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0년 9월 일어났던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이다. 서해상에서 표류 중 북한군 총격에 의해 사망한 뒤 시신이 불태워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 씨 사건은 월북 시도 중 일어난 것으로 사건 발생 당시 단정됐는데 이 부분이 잘못됐다는 게 윤석열 정부 입장이다.
국방부와 해경은 6월 16일 보도자료와 기자회견을 통해 과거 고인의 빚 등을 근거로 월북 시도 중 표류했다고 단정한 데 대해 공식 사과했다. 해경은 이 씨가 월북했다고 단정할 근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2년 전 중간수사 결과를 스스로 뒤집었다. 현재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당시 해경과 국방부 측 조사 과정을 면밀히 되짚어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의 윤 대통령 측근 인사는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사석에서 이 사건을 두고 ‘북한 눈치를 보느라 사건을 조작하거나 은폐했다면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6월 17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 해양경찰청 및 국방부 등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감사에 착수했다. 감사원 감사와 함께 이 사건은 수사로 확대될 것이 확실시된다. 이대준 씨 유족은 고인이 월북한 것으로 몰아가도록 지침을 하달한 것으로 의심된다며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등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을 6월 22일 검찰에 고발했다(관련기사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검찰의 시간’ 다가오는 까닭).
이미 관련된 사람들이 기소돼 재판이 진행중인 ‘대장동 사건’과 비슷한 유형으로 의심받아온 성남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을 둘러싼 수사가 속도를 내는 것도 정치권의 주목 대상이다. 경찰은 6월 16일 성남시청을 압수수색해 용도변경 특혜 의혹이 제기된 백현동 개발사업에 대한 강제 수사에 착수했다. 2017년에서 2018년 사이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기업 기관장 사퇴를 둘러싼 ‘산업부 블랙리스트’ 수사 역시 수사 범위가 크게 확대되는 형국이다.
#정치보복 아니다?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남북관계, 그리고 에너지 정책, 부동산 시장 정상화 등의 차원에서 당연히 진행되어야 할 사안일 뿐, 사정 정국에다 정치 보복 프레임까지 씌우는 것은 과도한 상상력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취재를 위해 만난 국민의힘 의원들은 정권교체의 의미, 그리고 보수 정부의 가치를 세우기 위해서라도 남북관계·에너지 정책·부동산 시장 정상화 항목에 대해서는 직전 정권의 잘못을 분명히 밝히고 바로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런 생각을 갖는 이유는 나라 밖의 여러 악재로 인해 국내 경제가 단기간 회복되기 어려운 판에 경제 회복 이슈만 갖고 가서는 정권 초반 국민 마음을 잡기가 어렵다는 해석을 하기 때문으로 읽힌다. 실제 6월 22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후 처음으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섰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임기 초반인 윤 대통령 지지율 정체 내지 하락이 계속될 경우 사정 정국이 전면전 수준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면전 방아쇠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직접 겨누는 사안이 당길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이 법적으로 관련돼 있는 김정숙 여사의 옷값에 대한 소송을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관심이 집중되는 까닭이다.
대통령실은 전임 문재인 정부의 ‘정보공개소송 대응 현황’ 전수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의 고인 유족이 제기한 정보공개소송에서 항소를 취하하고 해경이 보유한 당시 수사 자료를 공개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정부가 보유한 정보를 가급적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 직접 지시를 받는 대통령실이 정보공개소송의 피고로서 소송을 이어갈 경우, 전임 정부와 상반된 결정이 검토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옷값 소송에 대한 대통령실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올해 초 대통령 비서실 특활비 지출 결의서와 운영 지침, 문 전 대통령 부부의 의전 비용과 일자별 지출 내역 등을 한 시민단체에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없다’며 정보공개를 명령한 판결에 불복, “공익을 해칠 수 있다”며 항소했고 서울고법에서 첫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여권은 김 여사의 의상비 과다 지출 의혹을 제기해왔으며 일단 투명한 공개가 맞지 않느냐는 원칙론만 내세우고 있을 뿐 아직 구체적인 언급은 내놓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들도 이 사안에 대해서는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은 검사가 아냐"
윤 대통령은 6월 17일 출근길 도어스테핑(약식회견)에서 야권의 정치보복 주장에 대해 “정상적인 사법 시스템을 정치논쟁화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힌 뒤 “우리나라에서 정권이 교체되고 나면, 형사사건 수사라는 것은 과거 일을 수사하는 것이지 미래 일을 수사할 수는 없지 않으냐. 민주당 정부 때는 (과거정부 수사를) 안 했습니까”라고 했다. 윤 대통령 말을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정상적 시스템에 의해 수사가 이뤄지는 것을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의미로 들린다.
여권에서는 윤 대통령 언급처럼 정권 초반 강한 드라이브가 필요하다는 강경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하지만 정가에선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나온다. 민주당 내부 야당으로 불리다 당을 떠난 금태섭 전 의원은 6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새로 들어선 정부가 가장 쉽게 지지율을 올릴 수 있는 수단은 과거 정권의 잘못에 대한 단죄”라며 “쉽게 쌓아 올린 지지율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린다”고 했다.
금 전 의원은 “과거를 바라보고 하는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현실적인 성과와 상관이 없다는 점”이라며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과거에 있는데 어떻게 미래를 내다보고 필요한 일에 노력을 쏟을 수 있겠나”라고 되물었다. 이어 “윤 정부에서 일하는 분들이나 지지자들은 지금 하는 일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과 질적으로 다른, 정말 법에 어긋난 일만 골라서 바로잡은 작업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그건 어느 정권이나 마찬가지였다”며 “스스로 정치보복한다고 생각하는 집권 세력은 없다”고 지적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도 6월 20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30년간 과거사 진상 규명, 진상조사, 적폐 청산에 국민들이 지쳤다”고 말했다. 박 전 원장은 이날 “사정을 하더라도 간단하게, 간결하게 빨리 끝내는 것이 좋다. 지금은 경제에 전념할 때”라며 이같이 밝혔다.
박 전 원장은 사정 정국의 최소화를 주장하면서 “제가 국정원장이 돼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을 빨리 사면하자는 건의를 했다”며 “국정원장이 되고 나서 간헐적으로 회의석상에서, 간담회 상에서 그런 제 개인적 의견을 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박 전 원장 말을 재해석해 보면 문재인 전 대통령도 적폐 청산을 빨리 끝내고 통합 행보를 보였더라면 더 나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는 의미로 들린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윤 대통령이 검찰 출신인데 적폐 청산 작업의 결과물이 미칠 여파는 누구보다 잘 안다”며 “법과 원칙을 지키되 절제된 행보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감에서 탄생한 게 윤석열 정부다. 새로운 걸 기대했기 때문에 ‘정치 신인’ 윤석열이 대통령까지 된 것이다. ‘너네가 하면 적폐 청산이고 우리가 하면 정치보복이냐’와 같은 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좋지 않다”면서 “엄중한 사안이 아니고선 대승적이고 정치적인 접근이 필요할 때다. 대통령은 검사가 아니다”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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