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한국 프로야구 출신 타자들의 일본 진출사는 실패로 얼룩졌다. ‘천재 타자’로 불린 해태(KIA의 전신) 이종범은 1998년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했다. 28세로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였다. 당시 주니치는 이종범 영입을 위해 해태에 이적료로 4억 5000만 엔을 지급했고, 이종범에게도 계약금 5000만 엔, 연봉 8000만 엔을 안겼다. 일본야구계가 “매머드 계약”으로 부를 정도로, 주니치의 이종범에 대한 기대는 컸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여니 기대는 실망으로 변했다. 이종범은 팔꿈치 부상 이후 제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1, 2군을 전전하다가 결국 2001년 귀국했다.
이종범에 이어 한국 프로 출신으로 일본땅을 밟은 이승엽도 고전을 거듭했다. 2004년 지바롯데 마린스와 2년 계약을 맺은 이승엽은 연봉 2억 엔의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애초 이승엽은 타율 2할9푼, 30홈런 이상을 자신했지만, 결과는 타율 2할4푼에 14홈런이었다.
200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하고서 그해 타율 3할2푼3리, 41홈런, 108타점을 기록하며 한국 타자의 자존심을 세운 이승엽은 그러나 이듬해부터 조금씩 성적이 떨어졌다. 그리고 결국, 올 시즌을 끝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2006년 주니치에 입단했던 이병규도 3년 동안 2할 중반대의 평범한 타자로 전락했다가 지난해 친정팀 LG로 돌아왔다. 이범호 역시 지난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입단하며 일본 진출에 성공했으나, 타격부진으로 계약기간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올 시즌 KIA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마지막은 김태균이었다. 2009년 국내 시즌을 마치고 FA 자격을 얻어 총 5억 5000만 엔에 3년 계약으로 지바롯데에 입단한 김태균은 곧바로 4번 타자를 꿰차며 2010시즌 팀의 일본시리즈 우승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올해는 부상으로 고전했고, 타율 2할5푼, 1홈런, 14타점에 그쳤다. 그리고 시즌 중 스스로 퇴단을 선언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가뜩이나 한국 프로 타자들이 고전하는 가운데 김태균이 시즌 중 퇴단을 선언하며 일본야구계엔 한국 선수 불신풍조가 만연한 상태다. 일본 구단 관계자들은 ‘몸값은 높으나 실력은 떨어지고, 자존심은 강하나 팀워크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국 선수 영입에 난색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오릭스 버펄로스가 이대호 영입에 나선 건 일본야구계에서도 뜻밖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타격만 잘하면 그만?
이대호가 앞선 한국 프로 출신 타자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연 뛰어난 야구기술로 일본야구를 극복해야 한다. 2010년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뛰었던 이범호(KIA)는 “일본에는 각 팀마다 류현진, 오승환 같은 투수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의 차이를 선수층에서 찾았다.
“한국이 스타선수들을 총출동해야 대표팀을 만들 수 있다면 일본은 4, 5개 팀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선수층이 탄탄하다. 어느 팀 마운드에도 만만한 투수가 없다.”
특히나 일본은 ‘현미경 야구’로 풀릴 만큼 타자의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하기로 유명하다. 이승엽이 8년 내내 일본 투수들의 몸쪽 승부에 고전했던 게 좋은 예다.
이대호 역시 몸쪽이 약점으로 알려졌다. 여기다 포크볼 등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에 취약점을 드러낸 바 있다.
무엇보다 이대호는 일본에서도 ‘타격을 제외하면 크게 주목할 게 없는 선수’로 알려졌다. 그의 수비와 주루는 한국에 있을 때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일본은 ‘공수주’를 두루 갖춘 선수를 좋은 타자로 정의한다. 만약 이대호가 타격만 좋고, 주루와 수비에서 기대치를 밑돈다면 ‘반쪽 타자’로 불리며, 주전 라인업에서 수시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자신의 약점을 보통 이상의 노력으로 보강하지 않는 이상 이대호 역시 역대 한국 프로 출신 타자들의 실패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낯선 일본에 적응할까
하지만, 일본 야구 경험자들은 하나같이 “기술보다 정신력이 더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특히나 적응력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이대호가 한국에선 슈퍼스타로 통했을지 몰라도 일본에선 외국인 선수 가운데 한 명에 불과하다. 내국인 선수는 부진해도 구단과 팬이 기다리지만, 외국인 선수는 당장 퇴출이 거론되거나 찬밥 신세다.
올 시즌 김태균은 1군 코칭스태프와 불화를 빚었다. 지난해 잘할 때는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친절했던 코칭스태프가 올 시즌 부진을 거듭하자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특히나 타격코치는 김태균과 함께 부진의 이유를 밝히고 타격훈련을 도와주기는 고사하고 철저히 외면으로 일관했다. 코치가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는 한국 야구계 입장에선 그 코치의 행동이 이상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고액연봉자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 일본 야구풍토에선 어쩌면 당연한 태도였다. 물론 외국인 선수가 받는 유무형의 차별도 있다. 하지만, 이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똑같다.
두 번째는 외로움과 소통 단절 극복이다. 일본에서 활약했던 거의 모든 선수가 가장 큰 적을 ‘외로움’으로 꼽았다. 일본에서 8년간 뛰었던 이승엽은 뛰어난 인간성과 특유의 겸손함으로 많은 일본인 지인을 뒀다. 하지만, 그런 이승엽도 “일본에 있을 땐 혼자 속으로 아픔과 고통을 삭여야 했다”고 털어놓을 정도였다.
가뜩이나 일본어가 서투른 한국 선수들은 코칭스태프, 동료와 소통이 잘 되지 않아 곤란할 때가 잦다. 과거 요미우리에서 뛰었던 정민철 넥센 코치는 “말이 통하지 않으면 오해가 쌓이게 마련이고, 그 오해가 부진의 단초가 된다”고 경고했다.
이용철 KBS 해설위원이 “이대호는 야구를 시작한 이래 줄곧 부산에서만 있었다. 슈퍼스타로만 대접만 받아왔던 이대호가 낯선 일본땅에서 얼마나 고난을 이겨낼지 궁금하다”고 지적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