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월 23일 박근혜 전 대표가 대전대학교를 방문해 ‘내 마음속의 사진’을 주제로 학생들에게 특강을 하고 있다. 뉴시스 |
박 전 대표의 대권 프로젝트는 특강정치를 통한 여론전과 세미나를 통한 정책전의 투 트랙으로 전개되고 있다. ‘차기 1순위’의 대권 프로젝트 ‘첫 작품’을 지켜본 사람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대전대 특강을 지켜본 당 관계자들은 “‘안풍’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안철수 프레임에 말려들고 있다”는 쪽과 “교장 선생님 훈시 스타일에서 벗어나 소통 중심으로 진행된 진일보한 모습”이라는 반응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언급한 대학졸업자들의 취업자격 시험 공약도 뜨거운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박근혜의 대권도전 전략 공개 막후를 따라가 봤다.
신제품을 출시하는 기업은 시장의 첫 반응에 사활을 건다. 초반에 시장의 주목을 확 끌지 못하면 판매 내내 고전하게 되는 게 불문율이다. 출시 초반 대대적인 홍보전을 전개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정치도 시장 반응과 유사하다. 정치권에선 ‘기다리고 기다리던’ 박근혜 전 대표의 대권전략 신제품이 출시되자마자 그 품평에 열을 올리며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
박 전 대표에게 지난 11월 23일 대전대 특강은 “더 이상의 침묵은 없다”는 선언과 함께한 사실상의 대권도전 출정식이었다. 박 전 대표가 대전을 방문해 특강을 한 것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목원대 특강 이후 4년여 만이다. 더구나 그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2006년 11월 2일 한 특강에서 안보정책을 밝히면서 본격 대권 행보를 시작한 바 있다. 박 전 대표에게 특강은 그 자체로 중요한 정치 무대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대전대 특강은 4년 만에 선보이는 ‘박근혜 2.0’ 버전이다. 정치권에서도 강연 전 그 내용과 형식 등에 비상한 관심을 나타냈다. 실제로 박 전 대표가 특강에서 보인 퍼포먼스는 그동안의 점잖은 스타일을 훌쩍 뛰어넘는 파격 그 자체였다. 박 전 대표의 활동 모습이 담긴 동영상으로 시작한 강연은 ‘내 마음속의 사진’이라는 강연 제목에 맞게 남산타워의 자물쇠, 잎 많은 가지와 앙상한 가지가 나뉜 나무 등 5개의 독특한 사진을 무대 화면에 차례로 띄우고 사진 설명을 하면서 자신의 철학과 정책을 ‘프레젠테이션’ 하는 이채로운 방식이었다. 복장도 회색 폴라티와 바지, 검정 재킷에 구두를 선택해 간소한 차림을 즐기던 스티브 잡스를 연상케 한다는 평가도 있었다.
정치권에서는 대전대 강연이 4년여의 칩거를 벗어난 박 전 대표의 첫 번째 ‘작품’이었다는 점에서 향후 그의 대권 전략을 엿보게 하는 중요한 바로미터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긍정적인 해석을 하는 한 친박계 재선 의원은 “박 전 대표가 강연을 위해 준비를 많이 했다고 들었다. 강연 중 동선은 물론 농담도 몇 가지를 챙기는 등 꼼꼼하게 살핀 것으로 안다. 사실 박 전 대표는 대통령의 딸이라는 점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기 힘든 이미지에다 다소 권위적이라는 평가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 강연을 통해 그런 점들이 많이 희석되었다고 본다. 특강도 초반에 다소 어색했지만 농담이 반복되면서 막판에는 분위기가 상당히 좋았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친박계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의 ‘퍼포먼스’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친박계의 한 핵심 전략 관계자는 “기존의 딱딱한 형식의 특강에서 벗어나 변화를 주려는 것에는 찬성한다. 하지만 강연 형식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청춘콘서트’에 맞서는 일종의 ‘박근혜 식 청춘콘서트’였다는 일각의 평가를 냉정하게 봐야 한다”라고 전제하면서 “박 전 대표는 그만의 장점과 색깔이 있는 정치인이다. 짧지만 간결한 말로 책임과 원칙을 강조하는 스타일이다. 이미지 정치는 그와는 맞지 않다. 지금 온통 안철수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해서 박 전 대표마저 그 트렌드를 따라가도 되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왜 박근혜가 안철수 문법으로 이야기를 해야 하느냐. 박근혜는 박근혜의 문법으로 말을 할 때 빛이 나는 사람이다. 마이크를 들고 요즘 유행하는 토크콘서트 형식을 따라 하는 박 전 대표가 못내 어색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더라”고 말했다.
사실 이런 일각의 지적은 사소한 문제일 수 있지만 대선의 프레임 전쟁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 지금 박 전 대표는 대세론을 유지해오다 대선 1년여를 남겨 두고 ‘안풍’이라는 복병을 만난 셈이다. 1위는 2위에게 모든 면에서 비교를 당하면서 ‘구태’로 몰리게 돼 있다. 이때 박 전 대표가 2위를 이기기 위해 안철수 프레임(이미지와 바람)으로 뛰어들 경우 자신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덫에 빠지기 십상이다. 이회창 전 총재(원칙)가 2번이나 대선에서 패배한 까닭도 김대중(경제)과 노무현(개혁)이 만든 프레임에 어설프게 맞서려다가 실패한 경우다.
이번 첫 번째 특강은 박 전 대표의 소장파 측근들의 참모들이 기획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은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국회가 아닌 모처에서 박 전 대표의 첫 번째 공개 활동에 관한 전반적인 기획을 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친박계의 중진그룹에서는 “박 전 대표가 괜히 안철수 바람의 트렌드에 대응하려는 일부 소장파들의 조언에 솔깃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어색한 옷을 입고 대외활동을 시작하는 것 같아 불안하다”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표의 변신은 그만큼 절박한 현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본다(지난 11월 24일 오마이뉴스 여론조사에서는 안철수 원장이 52.5%, 박근혜 전 대표는 39.3%로 나타났다. 두 사람 간 격차가 13.2%p나 벌어진 것은 이번 조사가 처음이다). 그럼에도 그의 첫 번째 강연은 안철수의 청춘콘서트와 같은 감동을 주지 못했다는 게 중론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변화 의지에는 점수가 높게 매겨지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소장파의 한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박 전 대표가 나무사진 하나 걸어 놓고 꿈과 이상을 얘기하는 감성적인 접근을 통해 젊은 층의 돌아선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한다면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다. 국민들은 마이크를 잡고 스티브 잡스식의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세련된 박근혜를 원하는 게 아니다. 짧고 재미없는 강연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하지 못한, 시도도 하지 않았던 구체적이고 더 구체적인 해답과 대안을 원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 박근혜 식 ‘썰렁 개그’로 국민들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지금 시국이 한가한지 묻고 싶다”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특강을 통한 여론전과 함께 각종 세미나를 통한 정책전도 동시에 벌이고 있다. 정책분야는 박 전 대표가 안철수 원장과 가장 확실하게 차별화를 둘 수 있는 분야다. 그래서 그가 발표할 대선공약 성격의 정책에도 많은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박 전 대표 측은 최근 국가가 대학 졸업생의 직무 능력을 평가해 인증하는 ‘핵심 직업능력 평가 제도’를 내년 총선과 대선 때 공약화하는 방안을 추진하려다가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수능 점수로 대학 순위가 결정되고, 졸업 후엔 대학의 간판에 따라 ‘일자리의 질’이 결정되는 구조를 깨뜨려 지방대와 비 명문대 학생들에게도 취업의 기회를 주겠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직업능력평가 자체가 또 다른 ‘취업수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설익은 정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시험선수’인 명문대생들에게 더 유리할 것이라는 해석과 입사시험과 함께 별도의 시험이 더해져 대학생들의 부담만 늘어날 것이라는 지적 등이 쏟아지고 있다.
친이계의 한 재선 의원은 “4년 동안 그렇게 준비를 하더니 고작 내놓은 게 취업자격 시험 같은 것이냐.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아마추어적이고 즉흥적인 발상이라고 본다. 안철수 바람을 보고 바짝 긴장을 했는지 포퓰리즘적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안풍이 언제까지 불지 아무도 모른다. 차기 유력한 집권세력으로서 책임 있는 정책을 계속 개발하는 데 치중해야지 어설프게 안철수 바람을 따라가다가는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안철수는 앉아서 주워먹기
▲ 사진제공=노컷뉴스 |
지난 22~23일 실시된 동아일보·리서치앤리서치 여론조사에서 김선동 의원의 최루탄 투척에 대해 ‘국회를 모독한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의견이 68.9%에 달했고, ‘한나라당의 단독 처리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의견은 22.9%에 불과했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한·미 FTA처럼 여야 간 합의가 어려운 현안의 국회 처리 방식에 대해서는 ‘최대한 협상을 하되 다수결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52.4%)는 의견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다수당의 단독 처리는 안 된다’(43.6%)는 쪽보다 많았던 점을 감안하면, 여론은 ‘최루탄 투척과 같은 부적절 행위로 막는 것에 대해 매우 너그럽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트위터 등 진보적인 색채가 강한 일부 미디어에서는 여전히 김 의원의 행동을 ‘의거’ 수준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해 심각한 여론의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같은 조사에서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를 물은 결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29.4%로 박근혜 전 대표(27.3%)를 앞섰다. 리얼미터가 비준동의안 처리 직후인 22~23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안 원장의 지지율은 전날 대비 2.1%P 상승한 30.5%,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지지율은 2.7%P 감소한 24.7%로 나타났다.
FTA 정국에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은 안철수 원장의 지지율 상승에는 최루탄 사태가 호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 본부장은 “여론은 FTA 비준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여야가 타협과 조정을 해 가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으나 이에 대한 실망감이 기존 정치권에 대한 혐오감 증폭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전 대표를 포함한 정치권에 대한 반감이 안 원장의 지지율 상승을 낳게 되었다는 분석이다. 배 본부장은 “정당조직을 갖고 있지 못한 안철수 원장의 가장 큰 조직은 바로 민심이 담긴 ‘유권자 조직’이 된 형국이다. 이번 최루탄 가스가 박근혜 전 대표에게도 매우 매웠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