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오 의원.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모두 오만한 권력을 싫어하는 민심의 심판이라 했다. 2년이 지난 지난해 7월, 그는 다시 선거에 나섰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과시하는 듯한 유세도 없었고, 권력의 흔적을 지우려 했다. 혼자 자전거를 탄 채 지역구를 누볐다. 특유의 90도 인사까지 선보였다. ‘낮추는 모습’으로 “반성했다”는 이미지를 주려고 했다. 정권 심판론이 난무한 가운데서도 대중은 그를 ‘권력 실세’가 아닌 ‘돌아온 탕자’로 받아들였다. 이 사람이 바로 얼마 전에 특임장관에서 다시 국회로 복귀한 이재오 의원이다.
이재오 의원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권력 2인자’라는 그의 위치가 문제가 아니라, 그가 보여주는 정치인으로서의 변신 과정 때문이다.
과거 독재정권에 대항하여 싸웠다는 이 의원의 이력은 MB 정부를 통해 더욱 ‘권력’을 향한 정치인의 욕망으로 뚜렷해졌다. 분명 겸손한 모습으로 다시 정치로 복귀했지만 그가 특임장관이 되었을 때 대중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배후에서 조종하고, 뒤에서 또 다른 권력을 행사하는 이미지가 연상되었을지 모른다. ‘가카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라는 나꼼수의 2인자 버전을 상상했을 것이다. 이제 몰락해 가는 MB 정부에서, 아니 숙적이라고 믿는 ‘친박계’가 지배하는 한나라당 내에서 이재오 의원은 다시 권력의 실세 또는 ‘친이계’의 수장으로 새로운 입지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제 원래 친정인 여의도로 돌아간다. 불의와 타협하지도, 갈등의 중심에 서지도 않고 토의종군(土衣從軍:벼슬을 버렸음을 상징하는 ‘백의(白衣)’가 흙투성이가 되도록 몸을 낮춰 뛰겠다는 뜻)의 자세로 새로운 정치의 장을 열겠다. 낮은 자세로 정치를 처음 시작했던 마음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내 이름 앞에 붙던 ‘정권 2인자’ ‘왕의 남자’ 등의 수식어는 다 광화문에 내려놓고 정치인 이재오, 은평을 지역구 국회의원 이재오로 돌아가겠다.”
특임장관을 마치는 이임식에서 그가 한 말이다. 자신이 ‘2인자’였고, ‘불의와의 타협’과 ‘갈등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발언이다. 이런 사람이 당으로 복귀한다면 그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언론에서도 이재오 전 장관이 당에 복귀하면서 친이계가 다시 뭉치면서 계파갈등이 심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틀렸다. 복귀했지만 당에서 그의 존재감은 찾기 힘든 정도가 되었다. 아니 대중이 그렇게 보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그것은 무엇보다 한나라당은 더 이상 ‘친이계’나 MB 정권의 영향력이 지배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스가 바뀐 곳에서 과거 보스의 ‘2인자’가 겪어야 하는 운명이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서 소신과 고집이 있다. 1인자를 보좌하는 2인자의 역할에 어울린다. 강한 카리스마를 보이려고 한다. 보스를 중심으로 한 전형적인 계파 정치에 익숙한 사람이다. 강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굽힐 줄 모른다. 전형적이며 구태의연한 정치인의 모습을 보인다. 언행에 거침이 없고 공격적이며 독선적이다. 타이밍이 적절한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정을 중시하고, 의리가 있다. 내 사람과 남의 사람을 확실히 구분하여 챙긴다.”
대중이 보는 이재오 의원의 이미지다. 그는 국회의원들 중에서도 비교적 카리스마를 보이면서도 나름 권위를 가진 사람이다. 그를 통해 대중은 강력한 권력이 행사되는 것을 기대도 한다. 가부장적 모습이지만, 그 속에는 자수성가한 힘과 추진력이 있다. MB의 인내와 끈기, 그리고 섬세함이 그의 에너지와 결합될 때, 그는 분명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돌격 대장이 될 수 있었다.
싸움꾼의 이미지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분명한 보스가 있고 보스를 위해 총대를 메고 갈 때 그의 모습은 뚜렷하다. 평시보다 전시에 빛을 본다. 나름 보스를 위한 충성과 정의감을 주장하지만, 이런 정의에는 사적 기준이 적용된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성향의 사람은 1인자가 무너지면 같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분명 나름의 정치적 야망은 있으나, 개인적 성향이 부각될 아젠다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때로 이것을 자신은 청렴이나 욕심 없다는 것으로 포장하지만, 대중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맞서 싸워야 할 거악이 필요하다.
대중은 이런 2인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을 좋게 평가하기 힘들다. 하지만 때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이런 사람을 대중은 바라기도 한다. 왜냐하면 누구와 또는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 상황에서 이 사람의 존재 가치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반면 안타까운 점은 자신이 잘 싸울 수 있는 타이밍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보스에 의해 설정된 목표를 잘 따르고 그것에 따라 열심히 행동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때로 스스로 보스가 되어 보려 하지만 그것은 가장 힘든 일이다.
과거 그는 이명박 정부로 복귀한 후, 개헌전도사를 자처하면서 정치권의 변화를 일으켜 보려고 했다. 하지만 박근혜라는 강력한 차기 주자의 보이지 않은 힘에 의해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개헌을 이야기 하면 할수록 개헌으로 당권을 장악하려는 권력욕에 의한 개헌 노력처럼 보여질 뿐이었다. 이재오 의원의 정체이자 한계다. 그는 이제 한나라당 내에서 더 이상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지배하는 한나라당 내에서 더 이상 자신의 입지를 찾지 못하고 있는 과거의 넘버 2 정치인이다. 보스가 쇠약해지면서 본인도 스스로 몰락을 체험하기 시작하는 집권세력 중의 한 사람에 불과한 상황이 된다.
이제 그가 살 길은 한나라당 내에서 다시 싸움의 정치에 완전히 복귀하든지, 아니면 새로운 1인자를 찾아내어야 하든지 선택해야 한다. 그를 위해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여 또 다른 시대를 만들 수 있다면 그는 새로운 실세로 등장할 것이다.
연세대 심리학 교수 황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