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이 서울대 로스쿨 졸업 예정자를 대상으로 검사 지원자 신상정보를 사전에 확보하려 했다는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서울대 정문.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11월 20일 서울대에 따르면 지난 11월 17일 서울대 로스쿨 온라인 커뮤니티 익명게시판에 “검찰은 서울대 로스쿨 졸업예정자 가운데 우수학생을 선발하고자 검찰 리쿠르팅에 관심 있는 졸업예정자를 비공식적으로 파악하고 싶어 한다”며 “검찰 지원 예정인 학우 분들은 기재된 이메일 주소로 간단한 인적사항을 보내 달라”는 내용의 글이 게시됐다. 익명의 게시자는 서울중앙지검 김 아무개 검사의 부탁을 받고 글을 올렸다고 설명하면서 ‘검찰이 서울대 로스쿨 학생을 대상으로 비공식적인 관심을 갖고 있는 사실이 외부에 유출되지 않도록 당부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사법연수원생을 비롯한 타 대학 로스쿨생들 사이에서는 검찰을 향한 비난여론이 들끓고 있다. 검찰이 서울대 로스쿨에게만 사전 러브콜을 보내는 식의 일종의 특혜를 제공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형국이다. 논란이 일자 검찰 측은 ‘김 검사가 사적으로 알아본 것일 뿐 법무부의 검사 선발과는 일절 관련없다’고 급히 해명했고, 논란을 야기한 해당 글도 삭제된 상태다.
검찰이 서울대 로스쿨에 보낸 러브콜을 둘러싼 논란과 그 자세한 내막을 들여다봤다.
검찰 측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현직 검사가 서울대 로스쿨생 중 검사 지원자들의 인적사항을 사전 조사하려고 했던 사건은 여전히 사법연수원생들 사이에선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우선 논란을 일으킨 해당 글의 내용이 문제였다. 당시 게시자는 “본격적인 지원에 앞서 본인을 어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검찰 지원 예정인 (서울대 로스쿨) 학우 분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채용 시 혜택이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버젓이 적시했기 때문이다. 또한 검사 지원자들에게 성명과 나이를 비롯해 성적, 어학능력 등 본인의 장점 사항을 요구하는 등 세밀한 정보를 수집하려고 한 것도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글의 의도가 너무 대담하고 황당하다보니 이 글을 의뢰했다는 김 아무개 검사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의견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익명의 로스쿨 생이 장난삼아 올린 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요신문> 취재결과 김 아무개 검사(30·사시47기)는 서울대 법대 출신의 실존 인물인 것으로 확인됐다. 기자가 김 검사와 여러 번 접촉을 시도했으나 김 검사는 여론을 의식했는지 이미 잠수를 탄 상태였다.
사법연수원생들은 이번 일을 두고 내심 불편해 하는 눈치다. 일례로 사법연수원 익명게시판에서 한 연수생은 “(검찰 측이) 4단계 역량 평가를 통해 연수생과 로스쿨생을 공정하게 경쟁시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비밀리에 서울대 로스쿨생들과 접촉해 검찰 지원 수요 조사를 하려고 했다. 로스쿨 검사 임용 한도를 정해놓지 않겠다더니…. 이런 비밀 조사를 통해서 (로스쿨생들을 위한) 채용 한도를 확정하려는 꼼수를 부렸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실제로 법무부는 내년 1월 사법연수원 출신자와 변호사시험을 통과한 로스쿨생을 대상으로 동일하게 역량평가를 한 뒤 신규 검사를 4월 임용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상황이 격해지자 검찰은 적극 해명에 나섰다. 법무부 검찰과 검사선발업무담당 박주성 검사는 “검찰 단독으로 로스쿨생 사전 조사를 하려는 내부적인 조치는 없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계획은 없다”며 “김 아무개 검사가 한 일은 공식채용 활동이 아니고 선배로서 개인적인 권유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원래 대형로펌이나 법원, 일반기업 등 채용에 앞서 현직에 있는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조언 차 접근하는 일이 으레 있었듯이 김 검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란 설명이다. 박 검사는 “김 검사는 평검사로서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들을 실질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다만 직업적인 면에 대한 조언을 해주고 싶은 선배의 마음에서 그런 글을 올리게 됐을 것”이라며 공식적인 채용과정과 관계가 없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검찰 측 해명에 사법연수원생들은 여전히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기자님은 그 말을 정말 믿으세요?” 양재규 41기 사법연수원 전 자치회장은 이번 검찰 측 해명에 강하게 반발했다. 양 씨는 “서울대 법대 출신 법조인이 서울대 로스쿨생의 직속 선배는 아니다. 법대와 로스쿨은 완전히 다른 개념인데 문제의 김 검사가 동문 선배로서 조언을 해주려고 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며 “바쁘기로 유명한 서울중앙지검의 평검사가 수사에 전념해야할 시간에 검사지원자를 알아보는 것도 이상하다. 인사담당자로부터 부탁을 받지 않고선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사법연수원생 이 아무개 씨는 “워낙 로스쿨 출신들이 법학실력이 형편없으니까 검찰 측이 서울대 로스쿨 출신들이라도 영입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는 강도 높은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검찰이 대형로펌에게 인재를 뺏기지 않기 위해 입도선매 작전을 벌인다는 게 이 씨의 주장이다.
타 대학 로스쿨생들 역시 최근 사건에 대해 언짢아하고 있다. 한 지방 로스쿨 학생은 “검찰이 이미 소위 명문 로스쿨생들한테만 알음알음 채용 제안을 한 것으로 들었다”고 전했다.
덕분에 서울대 로스쿨 측은 졸지에 주변의 눈치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대 로스쿨생 김 아무개 씨는 “검찰에서 비공식적으로 실시한 로스쿨 검사 지원자 수요 조사는 서울대 말고도 연세대를 비롯한 다른 주요 대학에서도 있었다고 들었다”며 “가뜩이나 변호사시험을 코앞에 두고 있는 예민한 시점에 괜한 일로 서울대 로스쿨생들만 오해를 산 것 같다”며 억울해 했다.
이에 대해 검찰 측 한 관계자는 “대형로펌에 로스쿨 출신 인재를 뺏길까봐 입도선매한다는 여론이 있는데 이는 와전된 사실”이라며 “로스쿨생들을 검사로 채용하려면 우선 내년도 변호사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사전채용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이어 그는 “지난 5월 법무부가 주관한 검찰설명회는 전국 25개 로스쿨에서 모두 실시됐다. 지방대 로스쿨이 채용과정에서 소외됐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루머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각 로스쿨마다 로스쿨생들을 관리하는 검사가 있다는데 사실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관계자는 “각 학교마다 실무 강의를 위해 파견된 검사들이 있고 이들이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입장이지, 관리 검사로 표현하기엔 어폐가 있다”고 답했다.
한편 지난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선거에 출마해 ‘청년변호사 열풍’을 일으켰던 나승철 변호사는 로스쿨 출신을 검사로 임용하는 것에 대해 분명한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나 변호사는 “로스쿨 출신을 검사로 임용하는 것은 법조일원화이라는 로스쿨 도입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법연수원생들은 애시 당초 판검사, 변호사가 되는 것을 전제해서 들어온 이들인 반면 로스쿨은 그렇지 않다. 로스쿨을 위해 시험 명칭도 사법시험에서 변호사시험으로 바꿨지 않은가. 변호사시험을 통과한 이들에게 검사 자리를 내주는 게 부적절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나 변호사는 검찰 측이 로스쿨생들을 입도선매하고 있다는 소문과 관련해서는 “검사와 같은 공무원 채용은 공채든 특채든 정식 절차를 거쳐야 한다. 만일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분명 위법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변협 가입비 증액에 꼼수 있다’
2012년부터 시행될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로스쿨 졸업생들은 정식 법조인으로 활동하기 전 의무적으로 6개월간의 실무수습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최근 변협이 실무수습처를 구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취업자(1000여 명 추정)에 대한 실무 연수비용을 책임지기로 했다는 내용의 글이 사법연수원 자치회 게시판 및 변호사 커뮤니티 등지에 올라오면서 청년변호사들을 비롯한 사법연수원생들 사이에서 큰 논란이 일고 있다.
변협이 로스쿨생들의 실무수습비용을 감당해낼 만한 예산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은 이미 업계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취재결과 변협의 1년 예산은 약 60억 원 수준으로 로스쿨 졸업생들의 실무수습을 재정적으로 감당해내기 어려운 실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변협은 정부에 예산지원을 요청했으나 정부 측은 ‘공인회계사의 예’를 제시하며 “변호사 연수비용을 국가가 부담할 이유가 없다”고 거절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게시판에 글을 올린 익명의 제보자는 “지난 11월 7일 변협 소위원회에서 미취업자에 대한 연수비용을 변협 예산으로 부담하기로 하는 안건이 통과됐다. 다만 연수비용 전액을 변협에서 부담할 경우에 나올 비판적인 시선을 고려해 실무수습 대상자들로부터 약 20%를 실비로 정산받기로 했다”면서 “결국 연수비용 중 80%가량은 변협 자체예산으로 충당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내년부터 변협 가입비를 대폭 증액해 예산부족 문제를 해결할 계획인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이 제보자는 당시 소위원회 회의석에서 한 청년변호사가 “취업 못한 로스쿨생 연수비용을 왜 변협에서 부담해야 하느냐. 변협 예산은 회원들이 낸 소중한 회비로 충당되는데, 이런 식으로 사용해서는 곤란하다. 공인회계사의 경우처럼 실무수습지를 구하지 못한 로스쿨 출신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더욱 논란이 일고 있는 부분은 바로 변협 가입비 증액을 로스쿨 출신뿐만 아니라 실무수습과 전혀 무관한 사법연수원 출신, 법무관 출신, 재조 출신 변호사 가입자에게도 동일 적용한다는 점이다. 사법연수원생들이 단단히 화가 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례로 취업을 앞둔 41기 사법연수원생 이 아무개 씨는 “결국 41기 연수원생 및 38기 법무관 출신 변호사들의 변호사 가입비로 로스쿨 1기생들의 실무연수를 시켜주는 셈”이라면서 “그럼 우리도 미취업 상태일 때 실업수당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 변협이 로스쿨의 베이비시터라도 되려고 하는 건지 의문이다”고 비판했다.
검사임용 방안으로 검사직 자릿수를 두고 로스쿨과 다퉈야 하는 등 예민한 상황에서 가입비 증액 문제까지 터져나오자 연수원생들이 발끈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조직적으로 뭉치지 않기로 유명해 ‘모래알’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던 연수원생들이 이번엔 발 빠른 대처에 나서고 있다. 연수원생들이 시험기간인데도 불구하고 변협에 하루 20~30통에 가까운 항의 전화를 했다는 게 변협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손정윤 연수원42기 자치회장은 “수익자 비용부담 원칙에 따른다면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로스쿨생들의 실무수습 비용을 부담하는 게 옳다”며 “애당초 변협 집행부에서 그런 ‘안건’ 자체를 만들지 않았어야 한다. 이는 훗날 연수원,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서로 더 편을 가르는 계기를 만들어줄 뿐”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신진우 변협 사무차장은 가입비 증액으로 로스쿨 실무수습 비용을 충당하겠다는 안은 소위 단계에서 잠시 논의가 된 것일 뿐”이라며 “변협은 정부의 예산지원이 없는 한 로스쿨생들의 실무수습을 맡기 어렵다는 기본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로스쿨 실무수습 비용을 정부가 부담하는 것 이외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과연 정부예산만이 합리적인 대안일까. 국내 유명 로펌에서 로스쿨생 교육을 담당해온 박 아무개 변호사는 “지금 비단 법조계뿐만 아니라 금융, 의료업계 등 너도 나도 청년실업인 상황에서 정부가 유독 로스쿨생들만 지원해준다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처사”라며 “그동안 로스쿨 측은 ‘일단 변호사로 뽑아만 달라. 그 후 시장의 평가에 맡기겠다’며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올려달라고 해놓고, 정작 실무수습을 비롯해 취업 과정은 정부에게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모순적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변호사는 “앞으로 로스쿨이 이 같은 문제를 자체적으로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엔 제 무덤을 파는 꼴이 돼버릴 것이다”고 강조했다.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