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균은 일본에서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한화는 그에게 최고 대우를 약속하며 영입을 추진 중이다. 일요신문DB |
“이대호보다 100원이라도 더 주겠다.” 한화 노재덕 단장은 “김태균 몸값으로 얼마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FA 이대호는 롯데와의 우선협상에서 80억 원의 보장금액과 20억 원의 옵션액을 제시받았다. 두 금액을 합치면 정확히 100억 원이었다. 그러니까 한화는 김태균에 100억 원을 줄 의사가 있다는 뜻이었다.
한화 관계자는 “정확히 말하면 롯데가 제시한 옵션액을 뺀 80억 원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80억 원이라도 역대 프로 스포츠 사상 최고액이다. 그는 “김태균의 향후 활약상과 흥행 가치를 고려할 때 그만 한 금액을 투자해도 크게 아깝진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구단 관계자들은 한화의 투자 노력을 높이 사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하다는 반응이다.
모 구단 단장은 “한국 프로야구가 시장 대비 몸값이 지나치게 폭등해 버블 시대로 접어들었다”며 “이러한 과도한 투자가 되레 선수들의 국외 진출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틀린 말도 아니다.
김태균은 2009년 말 일본 프로야구 지바롯데 마린스와 3년간 계약금 1억 엔, 연봉 1억 5000만 엔 등 총 5억 5000만 엔에 계약했다. 원화로 90억 원에 가까운 매머드 계약이었다. 하지만, 김태균은 지난해 반짝 활약했을 뿐 올 시즌은 타율 2할5푼, 1홈런, 14타점에 그쳤다. 급기야 7월 중순 시즌 중 전격 계약 해지를 발표하며 귀국했다. 국외리그에 진출했다가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시즌 중 귀국한 첫 번째 사례였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김태균 영입을 ‘대 실패작’이라고 규정한 것도 무리는 아닌 셈이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김태균은 손해 볼 게 없었다. 이미 일본 진출을 통해 많은 돈을 손에 거머쥔 데다 한화가 사상 최고 대우를 약속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국외리그에서 실패하고도 승승장구한 건 김태균만이 아니었다.
▲ 이범호는 일본 진출과 국내 복귀 과정을 거치면서 약 100억 원을 번 것으로 알려졌다. 박은숙 기자 |
해태(KIA의 전신) 이종범은 1998년 주니치 드래곤즈에 입단했다. 당시 주니치는 이종범 영입을 위해 해태에 이적료로 4억 5000만 엔(약 45억 원, 이하 당시 한화 기준)을 지급했고, 이종범에게도 계약금 5000만 엔, 연봉 8000만 엔을 안겼다.
한국 프로야구 출신 야수로는 첫 국외리그 진출이라, 이종범의 성공 여부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이종범은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한 채 1, 2군을 전전하다가 결국 2001년 자유계약선수로 풀리며 고향 광주로 돌아왔다.
이종범은 귀국하며 최고 연봉을 요구하지 않았다. 친정팀 해태도 돈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즈음 친정팀 해태가 KIA로 인수되기 직전이었다는 것이다. KIA는 이종범이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임을 고려해 연봉 3억 5000만 원을 제시했다. 이는 그해 연봉 1위였던 삼성 이승엽의 3억 원을 능가하는 최고액이었다.
이듬해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었던 정민철이 귀국하며 이종범의 최고 연봉은 깨졌다. 한화가 원소속이었던 정민철과 연봉 4억 원에 계약한 것이다. 정민철이 일본에서 연봉 8000만 엔(당시 원화 8억 원)을 받았으니 정확히 절반이 깎인 셈이었다. 하지만, 정민철의 일본 진출 전 연봉은 1억 5000만 원이었다. 일본에서 실패하고도 3배 가까운 연봉 인상 폭을 기록한 셈이었다.
1997년 LG에서 1억 8000만 원을 받았던 이상훈은 이듬해 주니치 드래곤즈와 계약금 5000만 엔, 연봉 8000만 엔 등 총액 3억 3000만 엔(약 33억 원)에 계약했다. 그리고 2000년엔 미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와 2년간 총액 335만 달러(약 38억 원)에 계약하며 한국 프로 출신으론 처음으로 일본과 미국 프로야구를 모두 경험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하지만, 이상훈은 보스턴에서 뚜렷한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2002년 귀국했다.
이상훈은 친정팀 LG로 복귀하며 연봉 4억 7000만 원을 받았다. 이종범, 정민철처럼 이상훈도 국외리그 실패와는 상관없이 국내 프로 스포츠 최고 연봉을 보장받은 것이었다. 정민태, 구대성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2000년 현대와 한화에 몸담았던 정민태, 구대성의 연봉은 각각 3억 1000만 원, 1억 4000만 원이었다. 2001년 정민태가 요미우리, 구대성이 오릭스로 진출하며 두 선수는 똑같이 연봉 1억 엔(약 10억 원)을 받았다.
국내 최고 투수의 자존심을 살리겠다며 야심차게 일본에 진출한 정민태는 다른 선수들처럼 큰 활약상을 펼치지 못하고 불펜투수로 전락했다가 2003년 친정팀 현대로 돌아왔다. 현대는 다른 구단의 전철을 그대로 따랐고, 정민태에게 연봉 5억 원을 제시하며 그를 순식간에 연봉킹으로 등극시켰다.
구대성은 일본에서 맹활약한 이후 2005년 미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에 127만 5000달러를 받고 입단했다. 그리고 2006년 메츠에서 퇴단하고서 연봉 55만 달러(약 5억 3400만 원)에 한화로 돌아왔다. 당시 구대성이 한화로부터 받은 몸값은 국외에서 활동하다가 국내에 복귀한 선수들 중 최고액이자 그해 국내 투수 최고 대우였다.
“외국 물만 마셔도 몸값이 몇 배로 뛴다”는 야구계의 볼멘소리가 본격적으로 들리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실패한 투자, 이혜천
국외파 선수들의 몸값 프리미엄은 이후로도 계속됐다. 2007년 이종범, 이승엽에 이어 국내 야수 가운데 3번째로 일본 진출에 성공한 이병규는 계약금 5000만 엔(약 4억 원), 연봉 1억 엔(약 8억 원)에 주니치와 계약했다.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이라던 이병규는 큰 기대를 모았으나 역시 일본 무대에 적응하지 못하며 2010년 쓸쓸히 귀국했다.
일본 진출 전 연봉 5억 원이었던 그는 LG에 복귀하고서도 계약금 1억 원과 연봉 4억 원을 받아 ‘손해 없는 장사’에 성공했다.
이범호는 실패가 성공으로 이어진 경우였다. 2009년 한화에서 연봉 3억 3000만 원을 받던 이범호는 지난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2+1’년에 계약금과 연봉을 합쳐 최대 5억 엔(약 65억 원)을 받는 조건으로 계약했다. 그러나 이범호 역시 일본에서 1, 2군을 전전하다가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지난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이범호가 친정팀으로 돌아가던 다른 선수와는 달리 한화가 아닌 KIA로 새 둥지를 틀었다는 점이었다. 이범호는 계약금 8억 원에 연봉 4억 원에 KIA 입단을 발표했지만, 야구계는 그의 몸값을 4년에 40억 원으로 보고 있다. 이범호는 일본에서 2년 동안 별다른 활약을 선보이지 못하고서도 한·일 양국에서 무려 100억 원을 챙긴 것이었다.
그래도 국외파 선수들은 대개 복귀 첫해 몸값에 걸맞은 활약을 선보였다. 이범호는 KIA 입단과 함께 중심타자를 꿰차고서 팀을 포스트 시즌 진출로 이끌었다. 하지만, 이혜천은 달랐다. 2009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입단하며 이혜천은 2년 계약에 계약금 100만 달러, 연봉 80만 달러(약 11억 8000만 원)에 계약했다. 그러나 이혜천은 역대 일본 진출 투수 가운데 가장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며 올 시즌 친정팀 두산으로 돌아왔다.
두산은 계약금 6억 원, 연봉 3억 5000만 원, 옵션 1억 5000만 원 등 총액 11억 원에 이혜천과 계약하며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일본 진출 전 1억 5000만 원이었던 연봉과 비교하면 대박도 그런 대박이 없었다.
하지만, 이혜천은 32경기에 등판해 1승4패4홀드 평균자책 6.35를 기록하며 몸값 대비 효과에서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구단 운영의 위험요소
국외파 선수들의 복귀 프리미엄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한화가 김태균에 대박 연봉을 안길 준비를 하듯 2년이 지나 이대호가 돌아올 즈음이면 롯데가 거액을 마련해 놓을 게 자명하다. 국외리그에 진출했다가 실패해 돌아와도 전혀 손해 볼 게 없는 현실에서 FA 선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미국과 일본으로 떠난다. 그리고 결국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구단이 될 것이다.
올 시즌 600만 관중을 돌파하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국내 구단의 적자폭은 아직 100억 원 이상이다. 시장 규모에 비해 폭발적인 몸값 폭등은 구단 운영의 잠재 위험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국외리그에서 실패하고도 자존심을 운운하며 ‘최고 대우’를 요구하는 일부 선수들이나 생전 투자와는 거리가 멀었다가 모그룹 회장의 말 한마디에 ‘사상 최고 대우’를 약속하는 몇몇 구단이나 프로야구 발전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라는 게 야구계의 중평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