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 원 비용 알바로 부담하며 전지훈련까지…“스켈레톤 윤성빈처럼 저변 확대에 사명감”
류은규의 출연을 누구보다 반긴 이들이 있다. 라크로스 국가대표인 임우재, 나영채였다. 이들은 현재 학생으로 대학생활과 국가대표 선수활동을 병행 중이다. 함께 국가대표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이 왜 류은규의 예능 출연에 환호했을까. 누구보다 라크로스에 진심인 이들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라크로스는 막대 끝에 망이 달려 잠자리채와 흡사하게 생긴 스틱을 가지고 팀원 간 공을 넘겨 골대에 넣는 종목이다. 생소한 경기 형태와 규칙만큼 국내에서는 낯선 종목이다. 단 하나의 실업팀 없이 클럽팀만 소수 존재한다. 그나마 5개 이내로 운영되던 대학 동아리팀(남자)도 현재는 한국외국어대학교(한국외대)에만 남아 있다.
국내에서 라크로스를 즐기고 있는 다수 사람들이 그렇듯 임우재와 나영채도 대학 입학 이후 라크로스를 접했다. 이들은 한국외대 글로벌스포츠산업학부에 나란히 입학한 새내기 시절, 선배의 권유로 라크로스 동아리에 가입했다. 임우재는 "어찌 보면 반강제적인 면도 있었던 것 같다. 학과 내 스포츠 동아리는 당시 라크로스밖에 없었다. 선배들의 권유도 있었고 동기들도 여럿 가입하니 어울리려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며 웃었다. 나영채는 약간 흥미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너무 새롭고 신선한 종목이라고 느꼈다"며 "전부터 새로운 걸 체험하기 좋아하는 성향이 있다. 남들이 안 하는 걸 한다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실제 우리 팀에 수구 같은 흔치 않은 종목을 하던 친구들이 더러 있다"고 설명했다.
얼떨결에 시작한 라크로스, 생소했던 만큼 애정을 가지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임우재는 "우리도 나름 체대생이라 운동을 좋아하고 관심이 있던 친구들이 많다. 그런데 완전히 처음 접하는 종목을 어릴 때도 아니고 스무 살이 돼 하려니 쉽지 않았다"며 "마음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팀 훈련을 진행한다. 재미를 붙이기 쉽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낙오하는 친구들도 많았다"고 전했다.
나영채는 "확실히 진입장벽이 있다"고 했다. 그는 "장비도 비싸고 몸과 몸이 강하게 부딪히는 종목이다보니 두려움도 있고 통증도 있다. 기다란 스틱을 이용해야 해서 어렵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를 치르는 것도 쉽지 않다. 경기장이 따로 없으니 야구장이나 축구장을 빌려서 해야 한다. 그 경기장에서 취지에 맞는 종목이 아니면 대관이 허용되지 않을 때도 있다"고 했다.
현재 국가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선수들조차 스무 살이 되기까지 생소했던 종목, 대중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임우재는 류은규의 '뭉찬2' 출연 이후 달라진 분위기를 실감한다고 말한다.
"은규형이 거기서 축구도 잘하니까 주변 지인들로부터 연락을 많이 받는다. 괜히 나도 어깨가 으쓱 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라크로스에 대한 대화가 조금 가능하다(웃음). 운동을 해보려고 하는 사람도 생겼다. 지금 '라크로스붐'이다. 최근 클럽팀에 신규 유입이 서너 명 있는데, 우리 쪽에서는 이 정도면 '붐'이라고 해야 한다(웃음)."
현실적 어려움이 산적해 있지만 이들이 졸업반인 현재까지 운동을 지속하고 국가대표 일원으로도 활약하는 이유는 있다. 나영채는 라크로스라는 종목 자체의 매력을 꼽았다.
"라크로스는 달리는 구기종목 중 '가장 빠른 스포츠'라는 타이틀이 있다. 빠르게 달릴 뿐 아니라 공의 속도도 빠르다. 해외 엘리트 선수들의 슛은 시속 160km까지 나온다. 우리도 시속 140km 정도는 된다. 바디체크가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착용하는 보호장비도 멋지지 않나(웃음). 스틱을 이용해 공중으로 공을 패스하고 하키처럼 필드에서도 공을 굴리기도 한다는 점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임우재는 룰과 새로운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라크로스에 매료됐다고 설명한다.
"라크로스는 필드 위의 전원이 공수를 오가지 않는다. 공격수는 수비로 내려올 수 없고 수비수는 공격에 가담하지 못한다. 서로 믿어주는 팀 스포츠로서 매력이 크다. 내가 수비수고 영채가 공격수다. 내가 수비에서 하나 막으면 영재가 골을 넣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또 저변이 넓지 않아 오히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대학 동아리팀이지만 해외 대회에 참가하거나 해외 팀과 교류하는 일이 많다. 다른 종목에 매진했다면 쉽게 하기 어려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국가대표로 활약 중이지만 여전히 어려움이 있다. 국내 규모가 미미한 탓에 운동 외에도 할 일이 많다. 임우재는 "선수들이 운동장에서만이 아니라 밖에서도 뛰어야 한다"며 "훈련장 섭외나 전지훈련 준비, 스폰서를 구하는 것까지 선수들이 직접 뛴다. 그래서 더 이 종목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과거에는 '왜 우리에게 지원이 없을까, 도와주는 사람이 없을까'라는 투정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투정할 시간도 없다. 부지런히 움직이기 바쁘다"라고 말했다.
임우재는 자신이 라크로스에 빠져들 줄은 정말 몰랐다는 말을 전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 스키점프를 소재로 한 영화 '국가대표'를 보고 단순히 '정말 힘들겠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지금 그런 모습이다(웃음). 그땐 내가 이렇게 될 줄 절대 몰랐다"며 "그땐 웃으면서 봤는데 지금 다시 보면 울 것 같다"고 했다.
그가 실제 국가대표가 됐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얼굴은 군복무 시절 행정보급관이었다고 한다. "군 복무 중인 2019년 홍콩에서 대회가 열렸고 우리 팀이 나가게 됐는데 나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정보급관님께 말씀을 드렸다. 그땐 대표에 뽑히기 전이라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감사하게도 보급관님이 훈련에 참가하고 대회도 나갈 수 있게 배려해주셨다. 내가 라크로스를 하는 동안 가장 감사한 분이다"라고 회고했다.
현실적으로 이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금전적인 부분이다. 국가대표지만 이들은 이번 7월 예정된 일본 전지훈련, 오는 10월 라크로스 월드컵 예선 참가 등 소화하는 일정에 드는 비용 대부분을 스스로 부담한다. 아직 대학생 신분인 이들은 수업을 마치면 아르바이트에 매진한다. 임우재는 "대표팀에 전업선수는 없다. 다 학생이거나 직장인이다. 평일 내내 일하고 틈틈이 개인운동을 한다. 토요일 하루만 쉬고 일요일은 팀 훈련을 한다"며 "비용을 충당해야 하는 문제 때문에 잠을 자는 시간이 부족하다. 잠이 부족하니 당연히 운동하는 데 컨디션도 떨어지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임우재, 나영채를 포함한 라크로스 대표팀은 7월 중순 일본 전지훈련이 예정돼 있다. 냉정한 전력 점검, 훈련 등을 위해 일본행을 결정했다. 나영채는 "일본은 최근 국제대회에서 세계 3위를 했을 정도로 라크로스 강국이다. 우리는 저변이 넓지 않아 대표팀이 소집되면 연습경기를 치를 상대가 없다. 5개 정도 되는 클럽 팀에서 잘하는 선수들이 대표팀으로 빠져나가면 연습 상대가 없어지는 것이다"라며 "이번에 일본에 가면 1, 2, 3부리그 팀, 연령별 대표팀 등과 연습경기가 잡혀 있다. 우리의 현재를 냉정히 가늠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임우재는 "쇼핑의 기회이기도 하다(웃음). 국내에서 라크로스 장비를 사려면 해외 배송을 해야 한다. 배송비를 무시할 수 없는데 일본에 가면 다들 장비를 사올 생각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수백만 원에 달하는 비용을 아르바이트로 부담해가며 전지훈련을 떠나는 이유는 오는 10월 열리는 월드컵 지역 예선을 위해서다. 2023년 예정된 라크로스 월드컵의 아시아 지역 예선은 오는 10월 제주도에서 개최된다. 중국, 홍콩, 필리핀, 대만, 뉴질랜드와 경쟁해 4위 이내 성적을 내야 한다.
이들은 예선을 넘어 본선에서 높은 성적을 노리고 있다. 이들이 바라보는 최종 꿈은 올림픽이다. 라크로스는 올림픽이라는 최대 스포츠 이벤트에서 수십 년간 외면받아 왔지만 2026 LA 올림픽에서 시범종목으로 채택됐다.
"현재는 올림픽만 바라보고 있다. 내가 실제 올림픽 무대에서 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현재로선 참가 티켓을 따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내년 월드컵 대회에서 성적도 올림픽 출전에 영향을 준다. 나뿐 아니라 현재 한국에서 라크로스를 하는 모든 사람이 올림픽만 생각하고 있다(나영채)."
"라크로스 같은 종목에서 항상 나오는 말이 후원해달라, 관심 가져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이야기해도 관심이 없다. 결국은 올림픽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계올림픽 스켈레톤 종목의 윤성빈 선수처럼 큰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한다. 내가 올림픽 무대에 꼭 서지 않아도 된다. 한국 최초 라크로스 올림픽 진출 티켓을 내 손으로 따내고 싶다(임우재)."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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