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탈레스의 외국인 임원으로 불미스러운 소문의 주인공인 B 씨(왼쪽)와 피해여성 A 씨. |
최근 ‘B 상무에게 혼인빙자간음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한국 여성 A 씨가 나타나 사건의 정황을 밝히면서 그 진실 여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국내 모 대학에서 강사로 활동 중인 A 씨(여·36)는 지난 11월 27일 기자에게 ‘국내 굴지의 기업 삼성의 외국인 임원 B 씨에게 성 기망을 당했다. 한국 여성을 기망하는 외국인 임원들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투서를 보내왔다. A 씨는 투서를 통해 “삼성탈레스 상무 B 씨는 한국 여성들을 상대로 유부남인 사실을 속이고 결혼을 빙자해 성관계를 유도하는 등 나를 비롯한 다수의 한국 여성들을 희롱해왔다. 삼성 임직원들의 인맥에 의해 이 사건이 묻히지 않길 바라며 더 이상 (한국 여성)피해자가 없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일요신문>은 삼성탈레스 외국인 임원을 둘러싼 ‘불륜 스캔들’의 진상을 추적해봤다.제보자 A 씨에 따르면 B 상무는 모 호텔 클럽에서 우연히 만난 A 씨에게 자신을 삼성 임원이라고 소개하며 부인과는 이혼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에 A 씨가 “자신은 이제 나이가 들어 결혼할 사람을 진지하게 찾고 있다”며 몸을 사리자 B 상무는 “제발 (결혼상대로) 자신을 선택해 달라. 마음을 열어 달라”며 사정했다고 한다. 결국 B 상무의 노력에 반해 교제를 허락한 A 씨는 지난 7월 11일부터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을 가져왔다. 만남 도중 B 상무가 A 씨에게 “5번이나 만났는데 왜 성관계를 허락하지 않느냐”고 묻자 A 씨는 “진지한 교제를 원한다”고 답했고, 이에 B 상무는 더 자상하게 대해줬다고 한다.
실제로 B 상무가 7월 23일부터 8월16일까지 해외 출장 및 휴가를 다녀온 당일, A 씨에게 “우리 결혼할까? 문서로 작성해서…”라는 말도 했다는 게 A 씨의 주장이다. B 상무가 출장 및 휴가를 간 3주 동안 매일같이 장문의 러브레터를 A 씨에게 보내왔고, 급기야 청혼까지 하기에 A 씨는 B 상무가 한국으로 돌아온 8월 16일 김포공항 근처 M 호텔에서 성관계를 허락했다고 한다.
A 씨에 따르면 B 상무의 강력한 요청으로 다음 날(17일) 사후피임약을 처방받아 복용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A 씨는 8월 17일자로 찍힌 사후피임약 처방전을 기자에게 보내왔다.
당시 성관계 직후 B 상무가 재차 사후피임약 복용을 요구한 점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사랑에 빠진 A 씨는 여전히 B 상무를 신뢰했으며 자신의 어머니에게도 소개했다고 한다. A 씨는 “B 상무가 틈틈이 삼성 측 인맥을 여러 명 소개시켜줬고,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삼성을 들먹이며 자신을 과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는 자신의 여비서와 통화를 시키는 대담함도 서슴지 않았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삼성 이름을 빌어 자신의 영향력도 과시하고 유부남인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꼼수를 부린 것 같다”고 말했다.
B 상무의 ‘꼬리’가 밟힌 것은 지난 9월 13일경. A 씨가 한 대형마트에서 B 상무가 부인과 장보는 것을 목격했을 때부터다. “기자님, 어떻게 부인을 두고 저에게 청혼을 하고 러브레터를 쓸 수 있지요? 저는 진심으로 사랑했는데…” A 씨는 답답한 마음을 호소하며 이번 일로 매일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무엇보다도 어머니를 볼 면목이 없다. 딸이 유부남에게 희롱당한 사실을 알고는 어머니 역시 심리적 충격으로 인해 죽음 직전까지 갔다. 이미 올해 뇌경색을 앓으셨는데 이젠 조그마한 충격에도 호흡조차 힘들어 하신다”며 울먹였다.
A 씨는 B 상무가 유부남이란 사실을 알아차리고 9월 말경 B 상무가 근무하고 있는 삼성탈레스 측에 ‘귀사의 외국인 임원 B 씨가 혼인빙자간음을 저질렀다. B 씨로부터 사과를 듣고 싶다’는 내용의 투고를 했다.
기자가 ‘남녀 사이의 개인사인데 상대 측 회사에 투고를 내고 기자에게 제보까지 하게 된 배경이 무엇이냐’고 묻자 A 씨는 “B 상무의 잘못된 행위를 고발하는 것이 혹자에게는 돈 뜯어내려는 의도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난 그런 사람이 아니다. 데이트 내내 내가 비용을 거의 지불할 정도로 B 상무를 사랑했다”면서 “때문에 B 상무가 유부남인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개인사로만 한정해버리면 나 말고 또 다른 여성 피해자가 나올 것이다. 평소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던 자랑스러운 우리 기업 삼성의 이름을 들먹이며 한국 여성을 희롱하는 B 상무의 행각을 멈추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A 씨는 “B 상무가 평소 나를 만나기 전 여러 명의 한국 여성들과 교제해왔다고 언급한 만큼 그동안에도 또 다른 여성피해자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당시 A 씨는 투고 담당자에게 “수치스러운 일을 당했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있는 회사로 갈 수 있겠느냐. 나는 B 상무의 사퇴까진 원치 않는다. 단지 이메일을 통해 사과를 받고 싶다. 그 사람과 다시는 대면하고 싶진 않다”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자 담당자는 ‘알겠다’는 답을 했을 뿐 그 뒤로 B 상무로부터 어떤 사과 메일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분개한 A 씨는 “그동안 삼성은 임직원의 윤리 문제를 중요시하는 회사라고 언론에 자랑스럽게 공개해온 만큼 이번에도 옳은 처리를 부탁한다”며 B 상무를 자국으로 소환할 것을 강력히 요청하는 2차 투고를 삼성탈레스 측에 보냈다.
며칠 후 A 씨는 삼성탈레스 측으로부터 ‘B 상무를 고국으로 돌려보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10월 말 경 A 씨는 삼성탈레스 측이 몰래 B 상무를 다시 회사에 복귀시켰다는 말을 삼성 관계자로부터 전해들었다. 삼성 내부 직원 조회 시스템에서 B 상무의 신상정보만을 삭제시켜놓고 자국소환 조치 없이 회사를 그대로 다니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B 상무의 한 동료 직원은 “다른 계열사에서는 (B 상무의 정보가) 조회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B 상무가 몸담고 있는 현 계열사에선 B 상무의 신상정보가 조회된다. A 씨가 오해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에 기자가 직접 타 삼성계열사의 몇몇 직원들을 통해 확인해본 결과 B 상무의 신상정보는 삼성 전체 계열사 내에서 조회되고 있는 상태였다.
현재 B 상무는 어떤 심정일까. 기자는 직접 B 상무와의 통화를 시도해봤다. B 상무에게 “일요신문 기자이며 A씨와 관련해 몇 가지 질문이 있다”고 말하자 B 상무는 그때마다 “driving(운전 중)”이라고 말하며 기자와의 대화를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자는 12월 1, 2일 이틀간 10여 차례 각각 다른 번호로 전화를 걸어 B 상무와의 접촉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그는 수신 거절을 하거나 운전 중이란 말로 전화를 서둘러 끊었다.
삼성탈레스 인사담당자 측은 “개인적인 문제이기에 회사가 어찌할 수 없으며 정보 제공도 할 수 없다. 공식적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만 반복했다. 기자가 ‘삼성은 윤리적으로 엄격하기로 유명한데 이래도 되나’라고 묻자 인사담당자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삼성탈레스에 근무 중인 한 직원은 이 사건을 두고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직원은 “삼성탈레스는 프랑스와의 합작 회사로서 B 상무에 대한 인사권은 탈레스 쪽에 있다. 삼성에서도 B 상무의 일을 프랑스 쪽에 보고하는 등 기본 의무는 다 했다”면서 “B 상무가 유부남인 것은 사실이고, 현재 삼성탈레스에 멀쩡히 근무 중이다. 한국 여성을 희롱한 것은 소문으로만 들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사실이라도 삼성 측에 인사권이 없으니 외국인 임원을 어떻게 함부로 자를 수 있겠느냐”고 해명했다.
삼성은 그동안 유독 윤리 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 왔다. 삼성전자의 한 직원은 “삼성은 윤리문제, 특히 불륜에는 한치의 용서도 없다. 웬만해선 바로 퇴사시킬 정도로 불륜 문제에 있어선 강경한 모습을 보여 왔다. 국내 기업 중에서 임직원들에게 윤리를 요구하는 수준은 삼성이 단연 최고일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런 내부 평가처럼 실제로 최근 이건희 회장은 “부패를 척결하겠다”며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삼성탈레스 외국인 임원의 ‘불륜 스캔들’ 논란으로 인해 ‘삼성의 이중성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엄격한 처벌은 한국인 임직원들에게만 적용되고 외국인 임원에게는 ‘개인적인 일에 불과하다’며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삼성 탈레스의 또 다른 직원은 “정부 지원을 받는 합작 회사의 한 외국인 임원이 국내 여성을 희롱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소지가 있을 수 있음에도 버젓이 한국에서 근무케 하는 것은 윤리를 강조해왔던 삼성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처사다”며 “인사권이 없다고 이렇게 ‘나 몰라라’ 하다보면 앞으로 유사 사건 발생 시 외국인 직원들로부터 한국 여성을 보호할 길이 없어질 것 같아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편 12월 2일 오전경 B 상무는 자신의 개인 변호사를 통해 A 씨에게 이 ‘루머’를 기사화할 경우 형사조치와 명예훼손죄를 물어 고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A 씨는 이에 크게 황당해하며 “피해자를 형사 고소하겠다니 어디 한번 해보라”고 답했다고 한다.
A 씨에 따르면 B 상무 측은 A 씨를 고소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전달하는 동시에 합의를 해줄 것을 제의하기도 했다. 이에 기자가 ‘기사가 나가지 않길 바라느냐’고 묻자 A 씨는 “나는 떳떳하다. 더 이상 ‘못 된’ 외국인이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며 국내 기업을 비롯해 한국 여성을 물 먹이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진실을 알리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