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석 7단 |
엊그제 며칠간 부산 해운대에서는 제13회 농심배 한-중-일 삼국지 1차전이 벌어졌다. 중국의 신예 탄샤오 5단이 4연승으로 일단 기선을 제압했다. 탄샤오는 1993년생, 열여덟 살이다. 탄샤오, 이름의 어감만으로는 튀지아시 3단(20) 비슷하게 터프한데, 튀지아시와 달리 실제로는, 아직은 열여덟 살로 보인다. 그런데 현재 중국 프로기사 실력 서열 3위에 올라 있다. ‘괴물’이라는 별명이 있고, 무지한 속기파. 재주형이라는 뜻이다.
농심배가 진행되는 동안 중국에서는 자국 명인전 도전5번기 최종국이 있었다. 콩지에 9단이 장웨이지에 5단에 도전한 것인데, 졌다.
우리 연구생 출신 젊은 사자들이 농심배와 중국 명인전을 여러 판 벌여놓고 복기 감상을 나누는 즐거운 대화를 우연히 들었다.
“지금은 절대 지존이란 게 사라지고 있다.”
“프로 아마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이기고, 누구나 지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 이창호 9단도 지는데, 요즘은 이세돌 9단도 자주 지는데, 구리 9단, 콩지에 9단이 지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수긍이 된다. 인터넷 바둑 사이트의 아마추어들도 “야아~ 요즘은 갈수록 베팅하기가 어려워진다”고 말한다. “누구와 누구와 붙으면 누가 이긴다는 그런 예상이 점점 무의미해진다”는 것이다.
그런 중에 김지석 7단(22)이 탄샤오의 5연승을 저지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김지석은 우리가 안타깝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 중 하나다. 우리가 기다린 지는 어느덧 15년쯤 되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일 때 바둑판이 너무 멀어 일어서서 바둑을 두던 그 시절에, 그런 김지석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첫 마디가 “포스트 이창호”였다. 재주가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더구나 너무 귀엽고 깜찍했다. 어쩌면 조훈현 9단의 9세 입단, 30여 년 깨지지 않고 있는 세계기록을 김지석이 40년 만에 새로 쓸지 모른다는 흥분에 찬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입단은 예상보다 늦었고, 아직 정상은, 근처까지는 수없이 오르내리면서도, 밟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얼굴은 여전히 열다섯 살이라고 해도 믿겠지만, 스무 살을 넘겼다. 또 후배 박정환에게는 전적이 아주 나쁘다. 앞으로 만회할 시간은 충분하지만 현재로선 추월당한 모습이다. 이번이 기회다. 탄샤오를 격침시킨 바둑은 내용도 아주 좋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지석은 소녀 같은 모습과는 딴판으로 전투적이며 치열한 기풍. ‘치열한 전투 기풍’ 정도로는 표현이 부족한 느낌이다. 복잡난해한 이전투구를 마다하는 법이 없는데, 그 정도가 이세돌 9단보다 더할 때가 많다.
다음 판은 일본의 마지막 주자 야마시타 게이고 9단(33). 두 사람 사이의 역대 전적은 1승1패, 호각이나 지금은 김지석의 손을 들어 주는 사람이 많다. 김지석이 국내외 정규 기전 성적에서는 박정환에게 꽤 뒤져 있지만, 이번 같은 이벤트 기전이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가 있다. 따라붙는 길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여기서 달려 뭔가 이루어낸다면 정규 기전에서도 새로운 자신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지석은 너무 착하게 생겼다. 착한 것과 승부는 별개지만, 흔히 착한 게 승부에는 마이너스라고 하지만, 착한 사람이 성적도 좋으면 기쁜 일이다.
<1도>는 탄샤오와의 대국. 백이 약간 유리한 상항에서 중반의 고비. 김지석이 백이다. 하변 백1, 3은 끝내기를 겸해 후속수단을 보자는 것.
흑은 잇지 않고 4로 껴붙여 좌중앙 백 석 점을 잡으러 온다. 우리가 흑이라면 하변 두 점은 무조건 이을 텐데, 그것 참. 그러자 백5로 붙여 발동. 그런데 백1 전에 우변에서 백△로 젖혀 흑▲와 교환한 것은 악수였다는 지적이 있었다. 아무튼 계속해서….
<2도> 흑1로 차단하기를 기다려 백2-4에서 6, 얼른 보면 수가 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흑9까지 수는 없었고, 백의 노림은 그저 흑이 백돌을 놓고 들어내는 끝내기 정도에 그쳤다. 불발탄이었다.
<1도> 백1 때….
<3도> 흑1로 양보하면 오히려 수가 난다고 한다. 백2~6으로 귀의 흑 두 점이 떨어지는 것.
<4도>는 <1도> 백△와 흑▲의 교환이 악수였다는 것을 말해 준다. 교환하지 말고 중앙에서 백1, 3로 나와 끊는 수가 있었던 것. 흑4, 6이 최강의 저항이나 백7, 9면 크게 수가 난다. A, B가 맞보기니까. 하변에서 백이 손해를 보아 형세는 혼미해지면서 종반으로 들어가는데….
<5도> 흑1 선수 다음 3으로 계속 늘어간 것은 패착이 되었다. 백4가 두어지기도 전에 검토실은 김지석보다 먼저 백4 자리를 두들기며 백승을 선언했다. 흑3으로는 일단 4의 곳을 찔러야 했다는 것.
<6도> 백6으로 여기에 계산하지 않았던 백집이 몇 집이 생기면서 탄샤오의 연승행진이 끝났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