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에 관심 집중…‘유책성 희석’ 등 허용 기준 구체화했을 뿐 ‘파탄주의’ 신호탄으로 볼 수는 없어
7월 13일 대법원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남편 A 씨가 부인 B 씨를 상대로 낸 이혼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인천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이들의 이혼 소송은 A 씨에게 귀책사유가 있어 이미 한 차례 법원에서 기각됐는데, 두 번째 이혼 소송이 대법원까지 가 A 씨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다.
A 씨와 B 씨는 2010년 3월 결혼해 같은 해 12월에 딸을 낳았지만 거듭된 갈등을 겪어 부부 상담까지 받았다. 결국 A 씨가 이혼 소송 준비에 들어갔지만 B 씨의 사과로 중단했는데 그 이후에도 갈등이 거듭돼 2016년 A 씨가 집을 나가 이혼 소송을 청구했다.
그렇지만 법원은 A 씨를 유책배우자로 봐 이혼 청구를 기각했다. 그 이후에도 이들의 부부 생활은 정상화되지 못한 채 별거가 이어졌다. B 씨는 A 씨에게 먼저 집으로 들어올 것을 요구했고, A 씨는 관계 개선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양측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못한 채 갈등이 지속됐다. 또한 A 씨는 딸과 연락하려 했지만 B 씨는 딸과의 통화는 자신을 통하라는 입장을 보였다. 한편 이 기간 동안 A 씨는 매달 50만 원의 양육비를 지급했으며 B 씨와 딸이 살고 있는 자신 명의 아파트 담보 대출금도 갚아왔다.
결국 A 씨는 2019년 9월 두 번째 이혼 소송을 제기했음에도 여전히 B 씨는 이혼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고 1·2심 법원은 모두 유책배우자인 A 씨의 이혼 청구를 기각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이 A 씨의 이혼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인천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번 대법원 판단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원심 재판부가 이혼을 거부하는 부인 B 씨의 ‘혼인 계속의 의사’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부부는 동거하며 서로 부양하고 협조하여야 한다’고 혼인의 효력에서 부부간의 의무를 규정한 민법 제826조 제1항 등을 바탕으로 대법원은 아내의 말과 행동·태도, 아내와 아이가 처한 상황, 결혼의 회복 가능성 등을 모두 고려하여 혼인 계속 의사를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단을 했다.
또 한 가지는 아내와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를 통해 유책배우자의 유책성이 희석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 대법원은 A 씨가 자녀에 대한 면접 교섭의 의지가 있고, 양육비를 꾸준히 지급해 오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또한 미성년자인 자녀가 성장 과정에서 부모의 갈등과 분쟁, 이혼 소송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왔음을 언급하며 혼인 관계 유지가 자녀의 정서적 상태와 복리를 저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이인철 이혼 전문 변호사는 “상당히 의미 있는 판결이지만 대법원이 유책주의 예외적 허용의 구체적인 기준을 밝힌 수준이지 파탄주의로 가는 흐름은 아니”라며 “이미 1심 법원에선 이런 예외적 허용을 받아들인 판결이 종종 나오고 있는 만큼 대법원이 구체적으로 그 기준을 정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다수의 국가가 이혼에서 파탄주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은 유책주의다. 이는 1965년 귀책사유가 있는 남편이 부인을 내쫓는 이른바 ‘축출 이혼’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별 다른 잘못이 없는 부인이 오히려 잘못은 남편이나 시댁에게 있음에도 쫓겨나는 일을 막기 위함이었다. 다만 언젠가부터 이미 혼인 생활이 파탄에 이르러 상대 배우자 역시 혼인 생활을 계속할 의사가 없음에도 복수심 등으로 상대방을 묶어두려 이혼을 반대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법적으로 보면 ‘재판상 이혼원인’을 다룬 민법 제840조 6호인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에도 가정법원에 이혼을 청구할 수 있게 돼 있다. 이를 파탄주의로 해석하면 ‘사실상의 혼인관계 파탄’으로도 이혼 소송이 가능하고, 유책주의로는 ‘사실상의 혼인관계 파탄’일지라도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만 최근 들어 혼인 생활을 계속할 의사가 없음에도 복수심 등으로 상대방을 묶어두려는 사례에 대해 예외적으로 하급심 법원이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해 온 만큼 대법원이 그 근거를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다.
최근 몇 년 새 가장 화제가 집중됐던 홍상수 감독의 이혼에는 이번 대법원 판단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 배우 김민희와의 불륜으로 혼인 생활이 파탄 난 홍 감독은 한 차례 이혼 소송을 제기했지만 2019년 6월 1심 법원이 이를 기각했다.
1심 판결 이후 홍상수 감독은 법률대리인을 통해 “홍상수 감독은 작품 연출과 현재 생활에 집중하기 위해 항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지만 “혼인 생활이 완전히 종료됐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사회적 여건이 갖춰지면 다시 법원의 확인을 받으려고 한다”고 밝혔다.
결국 언젠가 다시 이혼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의미인데 이번 대법원 판단만으로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당시 판결문에도 이번 대법원의 유책배우자 이혼 청구의 예외적 허용 기준이 사실상 언급돼 있다. 우선 당시 재판부는 “홍상수 씨와 아내 C 씨의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렀지만 주된 책임이 홍 씨에게 있고, 이혼 청구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지도 않는다”며 “C 씨가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이혼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도 없다”고 밝혔다. 법원이 C 씨의 ‘혼인 계속의 의사’를 인정한 것이다.
또한 재판부는 “홍 씨가 그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C 씨와 자녀의 정신적 고통에 대해 충분히 배려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도 없다”면서 “세월의 경과에 따라 홍 씨의 유책성과 C 씨의 정신적 고통이 약화돼 쌍방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가 됐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도 없다”고 밝혔다. ‘배우자와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로써 유책배우자의 유책성이 희석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를 따져 본 지점이다.
홍상수 감독 이혼 소송에서 보듯 이미 법원에서는 유책주의를 채택하면서도 예외적 허용이 이뤄져 왔으며 이번에 대법원이 그 구체적인 기준을 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동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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