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초반 김하늘은 국내무대에 잠시 복귀한 최나연과 같은 조에서 플레이를 하게 됐다. 그날 샷은 큰 실수가 없었다. 그런데 스코어가 들쑥날쑥했다. 버디를 몇 개 잡았지만 보기와 더블보기도 번갈아 나왔다. 들쑥날쑥한 플레이 때문에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반면 상대방은 모든 것이 안정돼 보였다. 라운드 내내 왠지 끌려 다니는 느낌이었다. 경기를 마치고 스코어 카드 사인을 할 때였다. 머리가 잠시 멍해졌다. 최나연의 스코어가 자신과 같았다. 완벽하게 졌다고 생각했던 상대는 조용히 파플레이를 펼쳤을 뿐이었다.
며칠 전 로빈 사임스(두 선수의 코치)가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나연이와 너의 차이점이 뭔지 알아? 실력은 별 차이 없어. 그런데 나연이는 기다릴 줄 알아. 그게 큰 차이야.”
마음에 깊은 울림이 있었다. 하반기 메이저 대회를 앞두고 연습라운드를 같이 돌았을 때 그녀에게 직접 들었던 얘기다.
모든 우승에는 사연이 있다. 스토리가 숨겨져 있다. 저마다의 사연 중에 특히 각인되는 선수가 있다. 정점에서 추락했다가 되살아난 우승자들이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사람들이다.
‘제5의 메이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최경주가 올해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극한의 시간을 견뎌낸 결과였다. 그는 우승이 없었던 2년 4개월간 무리한 체중감량으로 샷할 때마다 ‘뼈를 깎는 고통’을 느꼈다고 술회했다. 산고의 고통과 유사한 표현이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신동으로 극찬 받았던 김경태도 2007년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었다. 그도 한동안 무리한 스윙교정 때문에 망가졌다는 비난을 감수 했다. 올해 4년 만에 매경오픈에서 우승할 당시 보여준 아이언샷은 절제와 균형의 극치였다. 정교한 스윙의 부활이었다. 한국인 출신 최초 일본투어 상금 왕 등극은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가 있다. 끝 모를 추락의 최전선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호랑이, 우즈가 돌아왔다. 추락도 재기도 한편의 영화였다. 다시는 볼 수 없을까봐 섭섭했던 방랑자의 어퍼컷 우승 세리머니로 올 시즌이 마무리됐다. 흔들리니까 다잡는다. 실수하니까 극복한다. 떨어지니까 재기한다. 아무나 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위대하다.
SBS 아나운서 최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