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월 28일 이명박 대통령이 와타나베 코조 의원연맹 일본 측 회장(오른쪽)과 이상득 의원연맹 한국 측 회장(왼쪽)과 함께 걸어오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권력 무상.’ 요즘 여의도에서 이상득 의원 하면 동시에 회자되는 말이다. 지난 12월 11일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이후 이 의원은 지역구인 포항과 서울을 오가며 최소한의 일정만 소화하고 있다. 그 외에는 두문불출하며 지인들과 만나 향후 행보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민원인들과 동료 의원들의 방문으로 연일 문전성시를 이뤘던 이 의원실(의원회관 419호)은 굳게 문이 닫혀 있는 상태다. 전화통화를 포함해 보좌진과의 그 어떠한 접촉도 쉽지 않았다. 가까스로 만난 이 의원실 관계자는 “직원 절반 이상이 돈세탁 혐의를 받고 있다. 불필요한 말은 해줄 수 없다. 검찰에서 진실이 가려질 것”이라면서 “(이 의원에게) 누를 끼쳐 정말 죄송하고 곤혹스러울 뿐”이라고 털어놨다.
이 의원은 불출마 변으로 “당을 변화시키겠다는데 내가 가만있을 수 없었다. 쇄신 대상 제1호에 올라 온갖 비난을 받게 됐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했다”면서 “내가 물러나야 새롭게 당이 변화하는 데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검찰 수사망이 이 의원 턱 밑까지 죄어오자 ‘정계은퇴’라는 강수를 꺼내들었다는 것이다. 이 의원계로 분류되는 한 초선 의원은 “15년을 옆에서 따라다닌 박배수 보좌관이 구속되자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안다. 이 의원으로선 7선에 성공하면 국회의장은 떼논 당상이었다. 대통령 형님이 이 모든 것을 버렸다는 점을 검찰에서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지난 12월 13일 “온갖 억측이 나오고 있지만 검찰 수사가 끝날 때까지 묵묵히 기다릴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이 의원을 벼랑까지 몰고 간 검찰 수사는 현재 ‘투 트랙’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선 박 보좌관이 이국철 SLS 회장과 유동천 제일저축은행 회장 등으로부터 받은 7억 5000만 원이 어디로 흘러들어갔는지 규명하는 게 첫 번째다.
검찰은 이 회장과 유 회장이 박 보좌관을 최종 로비 대상자로 생각하고 돈을 건넨 것은 아닐 것으로 판단, 계좌 추적 등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 특히 이 회장은 “이상득 의원을 보고 박 보좌관에게 돈을 줬다”고 검찰에서 진술하기도 했다. 이러한 의혹에 대해 박 보좌관은 받은 돈의 일부를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점은 시인하면서도 이상득 의원 관련 부분은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두 번째는 박영준 전 차관이 이 회장으로부터 일본에서 접대를 받았는지 여부다. 박 차관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지만 검찰은 혐의 입증을 자신하고 있는 모습이다.
박 보좌관과 박 전 차관은 둘 다 이 의원 최측근으로 꼽힌다. 박 전 차관은 ‘왕비서관’ ‘왕차관’으로 불리며 현 정권 최고 실세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박 보좌관은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국회 안팎에선 ‘숨은 실력자’로 통했다. 둘에 대한 검찰 수사의 종착지가 이 의원이 될 것으로 추측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일단 검찰은 이 의원 수사에 최대한 신중을 기한다는 입장이다. 한 대검 중수부 고위 인사는 “확실한 증거 없이 대통령 형님을 부를 수는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일선 검사들 사이에선 벌써부터 “대어를 낚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 수사팀 관계자는 “박 보좌관이 수억 원을 의원실 직원들에게 줬고, 이 돈은 1000만 원 단위로 잘게 쪼개져 다시 박 보좌관 계좌로 들어왔다. 흔히 말하는 ‘돈세탁’이 이뤄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이 의원이 몰랐을 리 없다”면서 “이 의원 수사가 무산될 경우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2월 초까지만 하더라도 이 의원은 여러 의혹들에 대해 오히려 주변을 안심시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야권은 물론 여권 내부에서조차 ‘이상득 책임론’이 확산되고 있었지만 정권 초부터 계속됐던 ‘흠집잡기’ 정도로 평가절하 했다는 것이다.
이 의원의 이러한 자신감에 대해 윤호석 정치컨설턴트는 “이 대통령과의 돈독한 신뢰관계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사실 이 의원은 인수위 시절부터 이재오계 및 소장파와 끊임없는 ‘파워게임’을 벌이며 한때 2선으로 후퇴하기까지 했다. 야권 역시 각종 비리 사건마다 이 의원을 ‘몸통’으로 규정하고 공세를 가했다. 그럴 때마다 이 의원은 ‘건재’를 과시하며 막후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유지해왔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게 바로 이 대통령이 이 의원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이 의원을 둘러싼 청와대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의원을 안고 가다간 임기 1년을 남긴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마저 힘들어진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이 의원이 대승적 차원에서 총선 불출마를 해야 정국이 수습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고, 또 이러한 뜻을 여러 채널을 통해 (이 의원에게) 전한 것으로 안다”면서 “VIP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이 대통령이 일부 참모진에서 건의한 이 의원 정계은퇴 요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통령실장의 전격 교체 역시 이 연장선상에서 이해되고 있다. 당초 임태희 전 실장은 FTA 비준, 예산안 처리 등을 마무리 짓고 내년 초 물러날 것이 유력하게 점쳐졌었다. 그런데 이러한 예상을 깨고 하금열 SBS미디어홀딩스 대표이사가 신임 실장으로 기용되자 이 의원 라인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이 의원계 초선 의원은 “처음엔 청와대가 먼저 임태희 해임 카드를 꺼냈으니 이 의원 역시 뭔가 액션을 취해달라는 것으로 생각됐다. 그런데 임 실장이 누구냐. 이 의원 사람 아니냐. 그동안 이 의원과 이 대통령 가교 역할을 했던 것도 임 실장이었다. 따라서 임 실장을 조기에 내보냈다는 것은 당분간 이 의원과도 선을 긋겠다는 의지로도 읽혔다”고 털어놨다.
이 의원 측은 청와대의 달라진 기류에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선 “동생이 살기 위해 형을 버렸다”는 극단적인 말도 들린다. 이 의원계 의원은 “아무리 레임덕이라고는 하지만 검찰이 대통령 형님을 청와대와 아무런 조율 없이 수사 대상에 올릴 순 없었을 것이다. 이 정도 건이면 미리 민정팀과 얘기가 오갔을 것 아니겠느냐. 설령 검찰이 독자적으로 하더라도 이를 ‘방치’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청와대 민정팀 관계자는 “검찰 수사에 대해 우리가 일일이 관여하진 않는다. 더군다나 (이 의원) 관련 수사는 온 국민의 이목이 쏠려 있지 않느냐”면서 “지금 우리도 잇단 친·인척 비리로 곤혹스럽다”고 하소연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요즘 ‘디도스’만 파더라
그러나 정작 검찰 내부 인사들이 연루된 의혹들에 대해선 수사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어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김준규 전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고위 간부들이 이국철 SLS 회장, 유동천 제일저축은행 회장 등과 관련이 있다는 정황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부실 수사’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김 전 총장은 올해 초 강남의 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이국철 회장을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장으로부터 회사 구명로비를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7억 8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문환철 대영로직스 대표가 주선한 자리였다.
이에 대해 김 전 총장은 “문 씨로부터 이 회장이 너무 억울해 한다는 얘기를 들었고, 1심 재판이 끝난 것을 확인하고 사건 관련 민원을 들어주는 차원에서 만나본 것”이라고 해명했다. 문 씨와의 친분에 대해선 “고검장 시절 집안 사람 소개로 처음 알게 됐다. 동대문 시장 쪽에서 사업하는 착한 청년사업가로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 일선 검사는 “검찰총장이 브로커도 구별 못하느냐. 잘못된 처신”이라고 꼬집었다.
사실 김 전 총장 관련 내용은 이 회장이 구속 수감되던 지난 11월 29일 일부 언론에 공개한 ‘비망록’에 담겨있던 것들이다. 여기엔 김 전 총장 외에도 이 회장이 접촉한 검사장급 인사 10여 명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일부는 문 씨와 함께 만났던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그러나 검찰은 비망록에 대해 “이 회장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라며 깎아내렸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도 “(비망록은) 수사 고려를 하지 않았다”고 보탠 바 있다.
이와 관련, 검찰 일각에서는 이번 김 전 총장 보도의 배후로 경찰을 의심하기도 한다. 수사권 조정안을 놓고 검찰과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경찰이 고의적으로 흘렸다는 것이다. 제일저축은행 수사 역시 마찬가지다. 구속된 유동천 회장의 정·관계 로비 혐의를 수사하고 있는 합동수사팀(권익환 단장)이 검찰 연루 인사에 대해선 ‘봐주기식 수사’를 하고 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유 회장과 친분이 있는 검찰 간부 세 명의 이름과 몇몇 수사관들 이름이 거론됐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확인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이 자신들 내부에 메스를 들이댈지는 불투명하다. 최근 ‘벤츠 여검사’ 사건으로 곤혹스러워하고 있을 검찰로선 고위 간부들이 비리 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경찰과의 수사권 조정안 합의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서초동 주변에선 검찰이 ‘디도스 사건’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란 소문도 돌고 있다. 사안의 중대성뿐 아니라 정치권과 경찰을 모두 압박할 수 있는 ‘카드’라는 것이다. 한 대검 관계자는 “SLS나 제일저축은행은 우리 쪽 사람도 이름이 나오는데…”라며 “디도스는 가장 부담이 덜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