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야권의 ‘국회 조문단’ 구성 제안을 거절하는 과정에서 청와대와 조율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이명박 대통령이 12월 22일 청와대 여야 대표 회동에서 박 위원장에게 발언을 권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대권가도에서 제대로 된 ‘적수’를 만났다. 김정일 사망이라는 예상치 못한 1급 태풍 앞에 박근혜 대세론이 다시 시험무대에 오르고 있는 것. 김정일 사망 변수는 과연 박근혜 1인 독주체제를 허물 수 있을까. 일단 박 위원장의 김정일 사망 정국 대처를 통해 그 가능성을 짚어보자. 박 위원장에 호의적인 일부 언론들은 “그가 이번 안보정국을 잘 관리하고 있다”며 합격점을 주는 모습이다.
정진석 전 정무수석도 “박 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직후 청와대와 긴밀하게 호흡을 맞추면서 당정 관계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갔다”며 후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특히 김정일 조문을 두고 야권에서 ‘국회 조문단’ 구성을 제안하자 즉각 “정부의 기본 방침과 다르게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거절한 것이 여권 핵심부의 신뢰를 얻었다는 평가다. 실제로 박 위원장은 김정일 사망 직후부터 조의 표현 수위, 대응책 등과 관련해 청와대, 정부와 긴밀하게 의견 조율을 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양측은 거의 파열음을 내지 않고 위기의 1단계를 잘 넘긴 셈이다.
하지만 과연 이런 박 위원장의 관리 모드가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할까. 일단 단기적으로 볼 때 박 위원장은 김정일 사망 정국을 조기에 수습하고 관리해내는 순발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점수를 땄다고 할 수 있다. 안보에 관한 한 불안한 여성 이미지를 노정시켰던 박 위원장이 이번에는 어느 정도 그것을 극복해냈다는 호평도 나온다.
친박측의 한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안보에 관한 한 박 위원장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다. 복지와는 달리 안보문제만은 보수층 통합이 더 우선 과제다. 이번 기회에 그동안 느슨해진 보수층을 한데 묶어 두는 효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도 당분간 ‘화합형 리더십’을 보여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위원장의 ‘조심스런 행보’가 총선-대선으로 이어지는 장기 대권 레이스에 결국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견해도 많다. 소장파의 한 핵심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김정일 사망 정국에서 그가 보여준 ‘관리 모드’는 지난 2006년 북한 핵실험 정국에서 어정쩡한 대응을 보이다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역전을 허용, 이듬해 경선에서 석패했던 쓴 경험에서 나온 반사적인 몸 사리기로 보인다. 이명박 아바타 역할에 그쳐 대북정책 철학과 비전이 결여돼 있다는 점만 다시 확인시켜 준 셈이다”라고 힐난했다.
정두언 의원도 이와 비슷한 생각이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중도보수가 대세가 된 한나라당이 경제정책뿐 아니라 대북정책에서도 전향적 변화를 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이번 조문정국이었으나 ‘박근혜 체제’는 이를 놓치고 오히려 더 과거로 선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정 의원은 “최소한 이명박 정부보다는 앞서 가야 하는데 그보다도 못하니…”라고 꼬집었다.
이런 비난은 박 위원장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정 의원의 정치공세적인 성격도 있다. 하지만 정치전략 전문가들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김정일 사망 변수가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박 위원장의 옹색한 대북전략이 상당한 도전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회를 출입하는 한 중견기자는 이에 대해 “이번 김정일 조문 대응 과정에서 박 전 대표가 참모들과 충분한 상의 없이 자신이 성급하게 결정을 내려 향후의 대북 관계 운신의 폭을 스스로 좁히는 결과를 자초했다고 본다. 야권의 조문단 제의에 며칠간의 숙의 기간을 거쳐 이명박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그가 집권했을 경우 김정은 정권과 새로운 시대를 만들 공간이 만들어졌을 텐데 아쉬운 측면이 있다”라고 전제하면서 “특히 박 위원장이 조문에 관해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자칫 한나라당이 한반도 문제를 평화적으로 관리할 집권세력이 아니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야권이 오히려 향후의 총선-대선 국면에서 현 정권과의 차별화를 통해 안보관리 세력으로 부상할 토대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정치컨설팅업체 e-윈컴의 김능구 대표도 이와 비슷한 견해를 보이고 있다. 그는 “북한의 불안한 정세가 이어지면 안보리더십이 중요해 보수여당이 힘을 받겠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평화체제라는 새로운 남북관계를 바라는 욕구가 커져 야당이 오히려 득을 볼 수도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박 위원장의 옹색한 조문전략은 그동안 그가 줄기차게 노력해온 중도층 잡기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사실 박 위원장은 여권에서 유일하게 김정일 위원장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 좋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과의 개인적 인연까지 더해진 소중한 자산을 바탕으로 박 위원장이 이번 조문정국에서 얼마든지 전향적인 전략을 내놓을 수 있었다. 이런 점 때문에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을 ‘통 큰 지도자’로 표현했던 박 위원장이 조문에 직접 나섰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 특보 출신인 김덕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의 대표상임의장이 지난 12월 23일 인명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 등과 민간단체 중심의 조문을 추진하는 등 조문의 여진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박 위원장은 2006년의 북한 핵실험 악몽을 떠올렸던지 철저하게 보수적인 접근법을 택했다. 이런 행보는 정두언 의원도 지적했듯이 그동안의 중도층 견인과는 상반되는, 일관성이 없는 대권전략이다. 박 위원장은 향후의 총선-대선과정에서 중도층의 이탈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볼 때 박 위원장의 이번 김정일 사망 정국 대응전략은 결코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이는 곧 북한관계에 있어 박 위원장과 달리 좀 더 유연한 접근을 내세우는 경륜 있는 남성후보의 출현을 자초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세종시 전쟁에서 타격을 받아 대권정국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정운찬 전 총리가 바로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주목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최근 정 전 총리는 박 전 대표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아직까지 구체적 대권행보는 자제하고 있지만 거의 매일 전략 회의를 하며 박근혜 대항마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박근혜 위원장은 김정일 사망이라는 사상초유의 변수를 맞아 이명박 대통령과 철저하게 공동보조를 취하며 관리모드로 대응하고 있다. 조문정국에서 파열음이 나지 않아 점수는 좀 땄겠지만 2012년 총선-대선의 시험장에서까지 고득점을 획득할 기초공사에는 실패했다는 지적도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안철수 ‘대타’로 김두관 찜?
▲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일단 표면적으로 보면 친노그룹 대표주자인 그가 민주통합당에 입당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정치행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김 지사 입당의 이면을 파헤쳐 보면 그 의미가 간단치 않다. 정치권에서는 “김두관의 통합세력 참여로 야권의 대권구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김 지사는 입당 일성으로 2012년 총선 역할론을 강조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지사의 대권 로드맵이 이미 가동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부산출마 결심을 굳힌 문재인 이사장과 함께 투톱으로 PK(부산경남) 총선을 진두지휘해 바람을 일으킬 경우 상당한 대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2012년 총선에서 김 지사가 선풍을 일으킬 경우 야권의 대권구도가 문재인-김두관 양강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특히 김 지사의 동생인 김두수 ‘국민의 명령’ 사무총장은 최근 민주통합당 제2 사무부총장을 맡아 김 지사의 대권 장정에 전위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김 지사의 부상 가능성은 ‘안철수 변수’와도 관련이 깊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정치권 진입 지연에 따른 지지율 정체와 김정일 사망 정국으로 주춤하는 사이 그동안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김 지사에 대한 정치적 위상이 상대적으로 제고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안철수 원장이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등 일부 인사들과의 사적인 만남에서 “2012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등 안 원장의 대선참여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상대적으로 김 지사의 상품가치가 더 높아지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안철수 원장의 대권행보 지연과 김정일 사망 정국이 맞물리면서 김 지사의 민주통합당 동참은 그 자체로 정치적인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일부 정치세력이 김 지사와의 연대를 시도하며 ‘잠자고 있던’ 잠룡을 깨우고 있기 때문이다. 야권 일각에서는 ‘안 원장을 정치권으로 이끌었던 법륜 스님이 최근 김두관 지사를 만나 연대 여부를 타진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더 나아가 법륜 스님이 김 지사에게 ‘대선 후보 지지’ 약속까지 했다는 말도 있다.
이런 이야기는 안 원장이 법륜 스님과 거리를 두자 법륜이 김 지사로 대권주자 지지 방향을 틀었다는 주장에서 나오고 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잇따라 안 원장의 미적거리는 대권도전에 대해 비판하면서 ‘안철수 멘토 그룹’이 김 지사를 그 ‘대타’로 선택한 것이라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안 원장은 야권 대선후보를 탄생시키기 위한 불쏘시개 역할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문재인 이사장이 계속 ‘결단’을 미적거리는 것도 김 지사의 부상을 부추기고 있다.
민주통합당의 한 핵심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재 문재인 이사장이 안철수 원장 외에 가장 앞서가고 있는 야권의 대권주자지만 문 이사장이 스스로를 유력한 주자로 포지셔닝하는 데 여전히 주저하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자신은 야권통합과 정권교체의 불쏘시개 역할이 편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김 지사는 아직 미미한 지지율로 존재감이 없긴 하지만 이번에 입당 선언을 한 뒤 정면 돌파 움직임을 보이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문 이사장이 계속 소극적인 대권 행보를 보일 경우 김 지사가 그 바통을 이어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두관 경남지사의 이번 ‘결단’은 ‘입당-총선-대선’의 3단계 대권도전 로드맵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해석을 더욱 굳혀주고 있다.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