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월 22일 전주에서 열린 전주 KCC와 서울 삼성의 경기에서 김승현이 드리블하고 있다.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김승현은 프로농구 출범 이후 최고의 스타로 평가받는다. 프로농구 역사상 신인상과 최우수선수상(MVP)을 동시 석권한 선수는 2001-02시즌 루키였던 김승현이 유일하다. 정규리그에서 단 한 차례밖에 없었던 평균 두 자릿수 어시스트(2004-05시즌 평균 10.5개)를 남기기도 했다. 김승현의 가치는 프로농구에서 멈추지 않았다. 김승현은 2002 부산아시안게임 결승서 종료 직전 기적 같은 역전 드라마의 주역이 됐다. 한국농구는 20년 만에 중국을 넘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나이 서른넷. 구단과 갈등으로 인한 2년의 공백. 김승현의 복귀 이후 활약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사실 그랬다. 김승현은 공백기 동안 농구공을 거의 잡지 않았다.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에 홀로 농구공을 들고 나가 한강을 바라보며 던진 몇 차례 슛이 전부였다. 삼성 이적 닷새 만인 12월 7일, 641일 만에 코트로 돌아온 김승현의 몸은 전성기 때의 몸 상태가 아니었다. 스피드는 현저히 떨어졌고, 드리블을 하며 코트를 넘기조차 힘들어보였다. 몇 차례 날카로운 패스에 탄성이 나올 만 했지만, 기대 이하의 몸이었다.
하지만 김승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2년을 쉬었는데 당연한 것 아닌가? 예전 모습보다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지 나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몸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상태로 진행된다면 예전 기량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 리터칭=송유진 기자 eujin0117@ilyo.co.kr |
김승현은 직접적인 비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내가 더 잘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당연히 나보단 이 선수들이 잘할 것 아닌가? 1 대 1로 붙고 싶은 마음도 없다. 지금은 몸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고 팀에 도움이 되는 플레이가 먼저다.”
삼성은 현재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김승현이 복귀했을 당시 10연패에 빠져 최하위였다. 연패 탈출이 시급한 상황에 긴급 투입됐다. 부담감이 많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김승현은 개의치 않았다. 원래 성격이 그랬다. 부담보다는 자신감, 긴장보다는 즐기는 타입이다. 복귀 이후 3점 라인 밖 오픈찬스에서 던진 슛이 림을 맞지도 않고 에어 볼을 기록하기도 있다. 창피할 수 있는 상황. 김승현은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고, 지금 선수들도 에어 볼을 하지 않나? 던지는 순간 ‘에잇, 림도 안 맞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로 끝이다”라고 말한다. 실책이 늘어도 과감한 패스를 멈추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최하위였기 때문에 부담이 더 없었다. 어차피 더 떨어질 곳이 없지 않나? 만약에 삼성이 6강 진출이나 선두 다툼으로 치열했다면 부담이 됐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정말 편하게 농구에만 집중하고 있다.”
오리온스를 떠나 처음으로 맞상대한 날에도 김승현의 감정 변화는 크지 않았다. 대구가 아닌 고양이었기 때문. “정말 별 다른 느낌이 없었다. 오리온스에 있을 때 같이 뛰었던 선수들도 거의 없었다. 아마 대구라면 느낌이 이상했을 것 같긴 하다. 대구에는 나를 좋아해준 팬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에 속한 팀이라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마음도 없다. 다 지난 일이기도 하고, 내 몸 상태도 아직 정상이 아니지 않나?”
‘김승현 효과’는 삼성의 새로운 바람이다. 해답이 보이지 않던 14연패를 끊었고 내리 2연승을 달렸다. 삼성은 변하고 있었다. 코트의 리더가 돌아왔고, 선수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김승현이 느끼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선수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자신 있게 하라고 많이 주문한다. 내가 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연습할 때도 선수들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김승현은 12월 22일 현재, 7경기를 소화했다. 출전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현재 몸 상태에서 남긴 기록도 나쁘진 않다. 평균 7.3득점 5.9어시스트. 올 시즌 3라운드까지 어시스트 부문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양동근(평균 5.8개)을 넘어섰다. 운동은 쉬지 않는다. 선수단 외박 때도 운동을 위해 혼자 구슬땀을 흘렸고,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역시 숙소에 남아 운동을 할 각오다. 이미 내년 오프시즌 휴가도 반납해 놓은 상태. “삼성은 다른 것 신경쓰지 않고 운동만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서 정말 좋다. 내가 태어나서 이렇게 열심히 운동을 하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김승현은 지금 행복하다. 농구를 다시 할 수 있어서다. 수많은 열애설을 뿌렸던 김승현이지만, 이젠 연애도 뒷전이다. 결혼 생각을 할 겨를도 없다. 내년 목표도 오직 운동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농구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젠 나이 값(?)도 하고 싶단다.
“지난 한 해 많은 일이 있었다. 농구를 다시 할 수 있게 돼 행복할 뿐이다. 제2의 농구인생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책임감을 갖고 나이 어린 후배들에게 모범적인 선수가 되고 싶다. 결혼? 내년 목표? 지금은 아무 생각 없다. 안 다치고 잘하는 것, 그것만이 목표다.” 김승현의 손끝이 농구의 리듬에 맞춰 다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서민교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