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호’의 출항과 함께 선원 명단이 공개됐다.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인선 작업 끝에 지난 12월 27일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위원들의 면면이 드러난 것. 그러나 비대위원들이 공개된 이후 참신하다는 평가와 함께 논란과 후폭풍도 거센 상황이다. 대다수 인사들의 경우 애초 물망에 오르내렸던 인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파격적이라는 평이지만, 일부 인사에 대해선 벌써부터 당내 친이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또한 몇몇 인사들의 경우 비대위가 내세운 쇄신보다는 대선 전략에 대한 속내와 ‘사적’ 라인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기도 하다.
“이번 비대위원 인선작업은 비대위원장으로서 박근혜 전 대표의 첫 작품이다. 면면을 보면 알겠지만 친박도 친이도 철저히 배제됐다. 앞으로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당을 어떻게 이끌어가고 더 나아가 총선 공천 작업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에 대해 가늠할 수 있는 결과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비대위원 인선 과정과 면면에 대해 이렇게 총평했다. 한나라당은 지난 12월 27일 당내 인사 4명(황우여 원내대표, 이주영 정책위의장, 김세연·주광덕 의원)과 외부 인사 6명(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이상돈 중앙대 법학과 교수,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이양희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현정 비트컴퓨터 대표, 이준석 클라세스튜디오 대표)으로 구성된 비대위원 명단을 공개했다. 그동안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 인선 작업을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해 왔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지적받아왔던 박 비대위원장의 ‘불통’ 스타일이 이번 인선과정에서도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을 정도.
비대위원 명단이 공개적으로 발표되기 전까지 황우여 원내대표와 이주영 정책위의장 등 당연직 비대위원으로 거론된 인사들과 박 비대위원장의 보좌관들만이 물망에 오른 인사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친박 측근 의원들 상당수도 비대위원 인선 과정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측근 인사는 “인선과정은 박 비대위원장 주도로 이뤄졌으며 물망에 올랐던 인사들에게도 박 위원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참여를 부탁했던 것으로 안다. 그런 전후 과정에 대해 친박계 내에서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6명의 외부인사 중에는 의외의 파격적 기용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인사들도 포함돼 있으며 그중 조현정 비트컴퓨터 대표가 대표적 인물이다. 특히 조 대표의 경우 안철수 원장을 염두에 둔 발탁이었다는 평이 우세하다. 조 대표의 이력과 경력이 여러모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과 ‘닮아 있기’ 때문. 조 대표는 28년째 의료정보전문 소프트웨어 업체를 이끌어온 인물로 벤처계의 성공신화로 불리는 인물이다. 또한 조 대표는 안철수 원장과의 친분이 남다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한 정치권 인사는 “(박 비대위원장이) 조 대표를 통해 안철수 원장의 성향이나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면모 등을 파악하는 데에 도움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원장과 대권 경쟁을 벌여야 하는 박 비대위원장에게 벤처업계의 거물인 조 대표가 여러 면에서 역할을 해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전자공학과(서강대) 출신인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이공계 출신 친박 인사들의 설득으로 비대위에 참여한 조 대표는 실제 박 위원장의 이공계 관련 자문을 담당해왔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조현정 비대위원의 발탁은 주로 이공계 인사들로 구성된 벤처업계 및 안철수 원장을 견제하기 위한 인사로 보이며, 총선에서의 비대위 성공 여부에 따라 안 원장과의 대권 경쟁 전략도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대위원 중 가장 파격적 발탁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스물여섯 살의 이준석 클라세스튜디오 대표 역시 벌써부터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강용석 의원과의 ‘감정 섞인’ 트위터 공방전으로 이목을 끈 데 이어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는 “박근혜 위원장이 의혹을 모두 털고 가야 한다”는 발언으로 그동안 친박계 내에서 ‘금기’시돼왔던 발언을 당차게 내놓으며 주목을 끌기도 했다. 더구나 지난 2004년 유승민 의원실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던 이력을 숨겼다가 말을 바꾼 사실이 드러나며 검증 작업이 미비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또한 이준석 비대위원의 아버지가 유승민 의원과 친구 사이인 것이 밝혀지면서 “결국 사적 라인이 비대위원 인선에 개입된 것 아니냐”는 당내 비판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
박 비대위원장의 인선 과정을 뒤에서 지켜봐온 한 인사는 “한나라당 개혁을 위해 출범한 비대위가 당은 물론 박 비대위원장까지 위기로 몰고 가는 것 아닌지 걱정”이라며 씁쓸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날개’ 달려다 ‘추’ 매다나
▲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정가에서는 그가 그동안 이명박 대통령의 대운하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해왔다는 점을 감안해,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의중에는 이상돈 비대위원 발탁을 통해 ‘MB정부와의 차별화’ 기조를 드러내려 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 친박계 관계자 역시 “이상돈 비대위원의 경우 박근혜 위원장이 전부터 유념해 봐왔던 인사로 알고 있다. 향후 박 위원장의 대권가도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이 될 이명박 대통령과의 거리두기에서 이상돈 비대위원의 역할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상돈 비대위원에 대해 친이계의 견제작업도 본격화되고 있어 향후 그가 박 비대위원장에게 부담이 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 비대위원이 지난해 발생한 천안함 사태 당시 북한의 폭침 사실을 부정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천안함 유족들이 공개적으로 이상돈 위원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비대위 출발부터 논란을 부르고 있는 것. 더구나 김종인 비대위원과 함께 현 정권의 실세 용퇴론을 제기한 이상돈 위원에 대해 홍준표 전 대표가 공개적으로 사퇴를 촉구하는 등 비대위원 중 친이계의 주요 타깃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상돈 위원은 천안함 관련 발언과 자신의 사퇴설에 대해 “오해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그로 인해 박 비대위원장이 출발부터 입지가 좁아졌다는 평가다. 박 위원장 역시 지난 30일 비대위 회의석상에서 ‘친이 용퇴론’과 관련해 비대위원들에게 “당내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발언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한편 이상돈 비대위원의 성향을 잘 알고 있는 인사들은 그의 다소 꼿꼿하고 강직한 성품을 들어 “이 비대위원은 박 위원장에게 날개를 달아줄 수도, 오히려 궁지에 몰 수도 있다”는 양단의 평가를 하고 있다.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