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신문DB |
더욱 심각한 것은 학교폭력이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고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일요신문>이 학교폭력예방재단이 운영하는 학교폭력예방상담센터에 학교 폭력에 관한 제보를 받는다는 공지를 띄우자 순식간에 제보가 쏟아졌다. 가정과 학교의 무관심 속에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학교 폭력의 어두운 그늘을 들여다봤다.
지난해 12월 28일 기자의 휴대폰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앳돼 보였다. 전화를 걸어놓고 연신 ‘여보세요’만을 반복하고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마저도 극도의 불안감으로 떨고 있었다. 경기도 A 중학교의 김 아무개 군이 학교폭력 피해사례를 제보받는다는 <일요신문>의 공지를 보고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김 군은 잠시 머뭇거리다 “학교폭력 제보받는다고 해서 전화했는데요. 상담해 주는 건가요”라고 묻고 자신의 피해 사실을 털어놨다. 학원에서 타 중학교 동급생의 폭력에 시달리고 급기야 돈까지 갈취당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현재도 폭력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군은 “부모님께는 그저 그 학원 다니기 싫다는 말만 할 뿐 괴롭힘을 당했다는 얘기는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어느 샌가 김 군의 목소리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극도의 불안감과 두려움에 울음을 터뜨린 것이었다. 남들이 생각하기에 김 군의 경우는 그렇게 심한 학교폭력 사례는 아니었지만 당한 학생의 입장에서는 고통 그 자체였던 것이다.
기자에게도 학교폭력 피해 학생과의 통화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매스컴을 통해서만 학교폭력에 대해 얘기를 전해듣다 직접 피해자를 통해 들어보니 그 심각성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폭력을 당하는 아이가 얼마나 큰 두려움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기자는 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전문상담센터와 상담을 나눌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 전화를 끊었다.
김 군 이외에도 공지를 보고 문의 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여학생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학생 자살 사건이 벌어진 대구 지역의 또 다른 중학교에서도 학교 폭력은 벌어지고 있었다. 2011년 5월 대구 북구 B 중학교의 최 아무개 양은 체육대회에서 반 대표로 계주에 참가했다. 최 양은 계주 도중 옆 라인의 이 아무개 군과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계주는 끝났고 잠시 뒤 최 양과 부딪힌 이 군은 최 양을 찾아와 자신과 부딪혀 2등을 했다며 갖은 욕설과 함께 최 양을 때리려고 했다. 최 양은 “주변에 반 아이들이 모두 보는 자리에서 공개적인 모욕을 당해야만 했다”며 울먹였다.
그리고 며칠 뒤 또 사건은 터졌다. 점심시간 소위 옆 반의 노는 남학생들이 최 양의 사물함을 뒤져 교과서와 노트를 가져가는 일이 벌어졌다. 최 양은 잠시 뒤 사물함을 확인하고 자신의 물건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이후 최 양은 이 사실을 선생님에게 말씀 드렸다. 선생님은 남학생들을 불러 혼냈고, 그 남학생들은 최 양을 찾아와 ‘왜 일렀냐’며 욕설을 퍼부었다. 최 양은 “훔친 사람이 잘못 아니냐”고 따졌지만 돌아오는 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뿐이었다. 급기야 남학생들은 최 양에게 ‘걸레년’이라는 욕설과 함께 쓰레기통에 있는 휴지를 뭉쳐서 던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어떤 남학생은 책까지 던졌다. 그 상황 속에서 남학생들의 행동을 제지하는 주변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최 양은 공포를 느껴 급히 옆 반으로 자리를 피한 뒤 선생님께 이 사실을 말씀 드렸다.
그런 일이 있은 뒤 최 양은 한동안 학교를 나가지 못했다. 남학생들의 보복이 두려웠던 것이다. 방학을 맞이하는 지난해 12월 29일 최 양은 어머니와 함께 학교를 찾았다. 최 양의 학교 폭력 피해 사실을 전해들은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가겠다고 말해 놓은 터였다. 29일 오전 최 양과 다시 통화를 한 기자는 ‘학교에서 어떤 조치가 취해졌느냐’고 물었다. 이에 최 양은 “학교에서 그냥 조용히 끝내는 걸로 얘기가 됐다. 그렇게 되면 그 남학생들은 반성문 몇 장 정도 쓰면 끝이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중학교 3학년인 최 양은 “내년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그 남학생들과 같은 학교에 진학하게 될 처지에 놓여 있다. 보복이 두렵다”고 걱정했다.
보통 학생들이 학교에서 폭력을 당해도 부모에게 알리기는 쉽지 않다. 숨진 대구 중학생도 그랬고 대전의 여고생도 그랬다. 그래서 학교가 가장 먼저 학생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학교가 오히려 폭력의 온상이 된 경우가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심지어 선생님이 학교폭력을 근절한답시고 폭행 피해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울산시 북구의 C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박 아무개 군은 지난해 10월부터 3학년 조 아무개 군 외 4명으로부터 잦은 폭력에 시달려왔다. 박 군이 처음부터 선배들에게 폭행을 당한 것은 아니었다. 덩치가 크고 운동을 잘했던 박 군은 사실 선배들과 같이 축구를 하는 등 친하게 지내왔다. 그러다 점차 3학년 선배들이 박 군에게 이것저것 심부름을 시키는 일들이 잦아졌고, 급기야 ‘담배셔틀’을 시키기에 이르렀다. 용돈을 빼앗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문제가 불거진 것은 지난해 10월 중순경이었다. 친구 생일 파티를 하기 위해 놀 만한 장소가 필요했던 조 군과 친구들은 박 군의 가족들이 여행을 떠나 집이 빈다는 것을 알고 박 군에게 집을 빌려달라고 했다. 박 군은 안된다고 말했지만 조 군과 선배들은 무작정 생일 날 박 군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박 군의 집은 굳게 닫혀 있었고, 이에 조 군과 친구들은 박 군에게 보복 폭행을 가했다. 10월 20일경 1교시 전 학교 화장실에서 선배들은 박 군을 주먹으로 폭행했다. 이 폭행으로 박 군은 10분여 동안 쓰러져 있다 교실로 들어갔다.
11월 초 교실 앞에서도 폭행은 벌어졌다. 선배 이 아무개 군은 박 군이 자신에 대해 욕을 하고 다닌다며 박 군의 배를 발로 차고 주먹으로 폭행을 가했다. 11월 24일에는 과외를 마치고 자전거로 귀가하는 박 군을 불러 세워 뺨을 때리고 발로 구타했다. 그리고 자신들 중 한 명을 치어보라고 시켰다. 박 군이 가만히 있자 ‘선배 말을 무시하냐’며 그럼 내가 너를 치겠다며 서 있는 박 군을 자전거로 치어 넘어뜨렸다.
다음날(25일)에도 폭행은 이어졌다. 조 군과 선배들은 박 군을 학교 뒷산으로 불러 5명이 돌아가며 박 군을 폭행했다. 이유는 선배들 욕을 하고 다닌다는 것과 생일 때 집을 빌려주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뺨을 때리고 발로 차고 박 군이 아파서 넘어지면 머리카락을 잡고 일으켜 세워 다시 때렸다. 박 군은 그때의 폭행으로 앞니가 흔들리고 가슴부위 멍과 허벅지 부분의 근육이 파열되는 등 전치 4주의 진단을 받았다. 현재 박 군은 반 깁스 상태로 보행에 어려움을 겪고 앉아서 잠을 잘 정도인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에서는 신경조직 손상을 염려해서 몇 개월 동안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소견이 나왔다.
폭행보다 무서운 것은 조 군과 선배들의 협박이었다. 조 군은 “절룩거리지 마라. 아픈 척하지마라. 학교 선생님께 알리면 그때는 봐주지 않겠다”며 박 군을 협박했다. 때문에 박 군은 부모님에게도 학교에도 폭행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박 군의 폭행 사실이 밝혀진 것은 우연찮은 기회였다. 당시 학교에는 3학년 선배들이 2학년들의 군기를 잡는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에 체육부장 김 아무개 교사가 2학년들을 불러 폭행 피해 사실을 추궁하는 과정에서 박 군의 피해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이후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박 군의 폭행 피해 사실을 안 김 교사는 박 군과 가해자로 의심되는 3학년 선배들을 한자리에 불렀다. 이 자리에서 김 교사는 박 군에게 “누가 너를 때렸냐”며 가해학생을 지목하라고 했다. 하지만 박 군은 선배들의 보복이 두려워 이를 거부했고, 김 교사는 박 군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며 박 군을 폭행했다.
기자와 통화한 박 군의 어머니는 당시 상황에 대해 “아이가 바른대로 진술하지 않는다고 몽둥이로 아이의 머리를 6대 때리고 어깨를 1대 내려쳤다. 그래도 아이가 계속 거부하자 뺨을 2대 때리고 복부를 발로 차고 하이킥을 날리면서 가해학생을 지목할 것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더군다나 박 군의 어머니는 “피해자를 보호해 줘야 할 교사가 폭행 피해자에게 가해자들이 보는 앞에서 가해자를 지목하라니,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울분을 토했다.
결국 박 군은 가해학생들을 지목했고 피해사실을 진술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들도 박 군과 똑같이 김 교사로부터 폭행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실은 박 군의 어머니가 가해학생의 부모들로부터 전해들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가해학생의 부모와 박 군의 부모는 학교 측에 김 교사의 폭행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김 교사가 아이들을 회초리로 몇 대 톡톡 친 적은 있지만 뺨을 가격하거나 발로 차는 폭력은 없었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박 군은 폭행 사실이 밝혀진 후 수업 중에도 수시로 교무실로 불려 다녀야 했다고 한다. 결국 견디다 못한 박 군은 어머니에게 “전학 가면 안돼요? 모르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 대구 중학생의 자살 사건 뉴스를 접한 박 군은 어머니에게 충격적인 말을 건넸다. 박 군은 어머니에게 “난 자살 안하고 내가 죽여 버려야지. 다음부터는 학교 선생님한테 절대 말 안할거다”고 말했다고 박 군의 어머니는 전했다.
현재 박 군의 학교는 학교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굿바이 학교폭력’이란 프로그램을 만들어 스마트폰 어플을 활용하는 등 학교 폭력 예방 및 대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
심리치료하며 ‘자존감 업’
이런 가운데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이 자립해 다시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대안학교가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아란야 대안학교’는 사회복지법인 승가원에 소속된 삼전종합사회복지관에서 운영하고 있다.
중학생들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아란야 대안학교에서는 음악, 연극, 미술을 이용한 심리 치료가 이뤄지고 정규 교과목 수업도 받을 수 있다. 보통 한 해 20명 정도를 위탁받는데 현재는 보조금 사정으로 15명 정도를 위탁받고 있다.
학교 폭력에 시달려 대안학교를 찾는 아이들은 대부분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따로 받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학교 폭력을 당한 모든 아이들이 이 학교에 들어올 수는 없다. 입학절차가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입학 절차가 까다로운 만큼 출석률이 80~90%에 달할 정도로 학생들의 만족도는 높다.
이 학교 관계자는 “보통 학교폭력에 시달린 아이들이 학교에 나가기 싫어하는 것을 감안하면 높은 출석률이다. 심지어 중학과정 3년 내내 대안학교를 다니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학교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 가정의 관심과 2차적으로 학교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조언하면서 “아란야 대안학교는 학생 스스로 이겨내는 힘을 키워주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