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능욱 9단이 제2회 대주배 프로시니어 최강자전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와 상금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
이 9단은 지난해 제3회 BC카드배와 제8회 춘란배에서 우승, 세계 타이틀 2개를 차지했고, 국내에서도 ‘2011 올레배’와 제7기 ‘원익배 10단전’을 제패했다. BC카드배는 우승 상금 3억 원, 춘란배는 15만 달러이고, 올레배는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과 똑같이 총예산 7억 원, 우승 상금 1억 원으로 국내 최고를 다투는 기전. 여기에 원익배 우승 상금 5000만 원을 합해 이 9단은 지난해 타이틀만으로도 약 7억 원을 벌어 당연히 상금 부문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이창호 9단의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있으며 조훈현 9단은 시상식 무대가 아닌 귀빈석에서 그냥 웃고만 있는 정경이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얼마 전 제16회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중국의 최고봉 구리 9단을 꺾어 팬들을 흥분시키며 자신의 첫 세계 타이틀을 기록한 원성진 9단이 감투상을 받았고, 최철한 9단으로부터 ‘국수’를 쟁취해 한국 바둑 최고(最古) 족보에 이름을 올린 조한승 9단이 기록 부문인 ‘다승상(57승19패)’과 ‘승률(75%)상’을 차지, 2관왕이 되었다. 승률 부문은 2011 한국리그의 MVP 강동윤 9단(54승 18패, 승률 75%)과 공동수상했다.
원성진의 감투상은 좀 약하다는 느낌도 있었다. 이세돌이 있으니 ‘대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수훈상’ 정도는 돼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수훈상도 좀 약하다. 뭐 좀더 그럴 듯한 이름은 없을까.
2010년 시즌 중 17연승을 기록한 박정환 9단이 ‘연승상’을, 2010년에 입단하고 1년 만에 제16회 삼성화재배 ‘깜짝 4강’까지 올라간 나현 초단이 ‘신예기사상’을 받았다. 이창호 9단과 동향, 전주 태생의 새내기 나 초단이 겁도 없이 소림사의 젊은 장문인 구리 9단에게 도전장을 날리고 치고받았던 준결승 3번기는 국내 팬들을 정말 설레게 했었다. 중국 팬들은 가슴이 서늘했을 것이다.
박지은 9단의 ‘여자기사상’은 이의가 있을 수 없었다. 루이나이웨이 9단의 ‘시니어기사상’은 작별의 선물이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바로 뒤에 얘기하려는 것인데, 서능욱 9단에게 돌아가야 했을 것이다.
2011 바둑대상 수상자들은 흔쾌한 기분으로 새해를 맞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흔쾌히 2012년을 맞는 사람은 서능욱 9단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 9단은 12월 27일 제2회 ‘대주배’에서 결승에 올라갔고, 거기서 만난 조훈현 9단을 물리쳤다. 흑을 들고 175수 만에 조 9단의 엄청난 대마,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바둑판의 3분의 1쯤을 차지한 28마리짜리 대마를 잡고 이겼다.
대주배는 본격 기전은 아니다. 남자 시니어기사만 참가하는, 이른바 ‘부분 기전’이다. 그러나 우승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본격 기전이든 부분 기전이든 그 감격과 가치는 동일하다. 더구나 그 우승의 배경이 수십년 포한임에랴.
잠깐 돌이켜본다. 58년 개띠 서능욱은 1972년, 열네 살 중학생 때 입단했다. 천재 소리를 듣던 소년이었다. 중학생 입단은 요즘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입단 후 한동안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바둑계는 아직 가난했고 서능욱도 가난해 ‘프로기사’에 전념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위의 나현처럼 기재를 인정받는 청소년들 대부분이 입단하자마자, 흡사 식당의 ‘개업빨’처럼, 펄펄 나는 것과는 달리 서능욱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입단하고 나서 4~5년이 지나면서부터였다.
78년에 왕위전 본선 멤버가 되었고, 일단 발동이 걸리자 가속도는 무서웠다. 이듬해 제4기 최강자전에서 준우승까지 치고 올라갔으며 다시 이듬해에는 제1기 전일왕위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두 타이틀 매치의 상대가 모두 조훈현이었다. 아무튼 오래 가지 못하고 없어진 기전들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서능욱이 머지않아 우승 트로피를 안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던 것인데 예상은 또 빗나갔다. 우승 트로피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83년에 역시 지금은 신문은 있지만 기전은 없어진, 대구 매일신문 주최 대왕전의 도전자가 되었다. 상대는 역시 조훈현이었다. 졌다. 그래도 대왕전과는 인연이 남달랐던지 이후에도 세 번을 더 계속해서 도전자가 되었다. 대왕 타이틀은 여전히 조훈현의 손에 있었고, 서능욱은 4연속 도전해서 4연속 패배했다. 준우승의 사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준우승이 숙명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87년에는 최고위전과 KBS바둑왕전에서 도전권을 쥐었고, 조훈현에게 쳐들어갔으나 일패도지했다. 89년에도 KBS바둑왕전 결승에서 조훈현을 만났고, 졌다. 90년에는 MBC제왕전과 KBS바둑왕전, 두 TV속기전 결승에서 조훈현을 만났고, 졌다. 91년에는 대왕전처럼, 지금은 신문은 있지만 기전은 없어진 서울신문 주최 패왕전에서 조훈현에게 도전했으나 좌초했다. 여기까지 도합 열두 번째의 준우승이었다. 그 시절 조훈현 때문에 준우승을 많이 하기는 서봉수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대서(大徐) 서봉수는 서너 번에 한 번은 타이틀을 빼앗아 오기도 했는데, 소서(小徐) 서능욱은 없었다.
92년에는 최고위전에서 조훈현의 제자 이창호에게 도전장을 들이밀었으나 거절당했다. ‘최고위’는 조훈현의 첫 국내 타이틀인데 제자 이창호는 89년에 스승의 첫 타이틀을 자신의 첫 본격 타이틀로 삼았다. 사제 2대에 이어지는 악연이었다. 그것이 서능욱의 열세 번째 준우승이었다. 이후 서능욱은 타이틀 무대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최고위전도 몇 년 전 사라졌다.
그로부터 19년이 흘렀다. 조훈현 서봉수 서능욱은 시니어기사가 되었고 열댓 살 여드름 소년이었던 이창호는 30대 중간을 넘어섰는데, 올해 조훈현 서봉수 서능욱은 대주배에서 만났다. 서능욱은 4강전에서 서봉수를 보냈다. 그리고 엊그제 자신을 열두 번 좌절시켰던 조훈현의 초대형 대마를 격침시켰다.
서능욱은 인터넷 바둑 사이트에서도 유명인사다. 대국수도 엄청나고 팬도 엄청나다. 원래 김희중 9단과 쌍벽을 이루었던 초속기파니 고기가 물을 만난 것. 대주배는 제한시간 각자 15분에 40초 초읽기 3회. 우승 상금은 1000만 원. 또 대주배의 후원사는 ‘TM마린’이라는 선박회사. 대주(大舟)는 ‘큰 배’. TM마린의 김대욱 사장은 30여 년 지기. 이기섭 7단의 돈암동 자취방에서 같이 뒹굴며 외로움과 가난함을 나누고 위로하던 시절이 있었다.
서능욱은 인터뷰에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지나도 늦은 것이 아니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복수는 10년도 짧은 것. 10년이 아니라 20년이 지나도 늦지 않는 것. 아니 서능욱의 복수는 30년이 지나도 늦지 않았던 것. 복수에 성공하고 서능욱은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통화하며 웃었다. 사랑하는 부인, 바둑계의 여걸로 통하는 현인숙 씨였다. 2012년이 가장 반가운 사람은 서능욱 9단일 것이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