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순상은 ‘2011 한국골프칼럼니스트 대상’ 시상식에서 올해를 빛낸 선수상을 수상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최영주(최): 2011 KPGA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았는데 하필이면 유러피언 Q스쿨 마지막 라운드와 시상식이 같은 날이었어요. 그래서 아버님이 대리수상을 했고 홍순상 프로는 그날 Q스쿨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하필이면 왜 유럽투어였는지 궁금해요.
홍순상(홍): 2010년 겨울, 미국 댈러스에 있는 최경주 프로 댁에 머물면서 동계훈련을 했을 때, 최 프로님 사모님으로부터 많은 조언을 받았어요. PGA로 직행하기 전에 젊었을 때 유럽투어를 뛰어 보는 것도 괜찮을 거라 하시더라고요. 빨리 장가가서 신혼여행 겸 부인이랑 같이 유럽투어를 다니면 훨씬 아기자기하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거라고 얘기해주셨어요.
최: 가보니 진짜 그렇던가요?
홍: 1차는 오스트리아, 2, 3차는 스페인에서 경기가 있었는데, 정말 그렇더라고요. 풍광이 너무 예뻐서 미국이랑 느낌이 많이 달랐어요. 선수들도 PGA 선수들보다 친절하고 유쾌하고요. 그리고 요즘 유럽선수들이 다른 투어도 전부 석권하고 있기 때문에, 투어가 경쟁력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고생을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최: 같이 다닐 애인은 있고요?
홍: 아니요, 있으면 좋겠지만 없습니다. 그리고 주위 분들이 망상이라고 그러시더라고요. 지금 결혼하면 저를 위해서 밥하고 빨래하고 투어 다니면서 수발 다 들어줘야 하는데 젊은 아가씨 중에 자기 삶 포기하고 희생해줄 그런 사람 없다던데요(웃음)?
최: 그나저나 왜 통과하지 못했어요?
홍: 사실 1, 2차 예선까지는 분위기가 좋았어요. 3차 마지막 5, 6라운드 때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EPGA Q스쿨은 PGA Q스쿨과 마찬가지로 각 단계별로 6일간 시합이 치러진다). 5라운드 13홀까지 11타를 줄이고 있어서 여유가 있었어요. 그런데 14번 홀부터 갑자기 경기위원이 나타나서 그날 끝까지 쫓아다녔어요. 사실 4라운드 때 경기위원이 와서 저한테 60초 안에 플레이를 하라면서 느리다고 경고를 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다른 선수들 시간을 재보니까 저보다 더 느린 선수들이 있더라고요. 평소 투어 다닐 때 그런 제재를 받은 적이 없어서 순간 몹시 기분이 안 좋았지만 참고 그날 경기를 잘 끝냈어요. 그런데 그 다음날 후반에 또 나타나서 저만 계속 따라다니는 거예요. 그래서 그날 14홀부터 18홀까지 연속 보기를 했습니다. 마지막 날에도 똑같이 14번에서 18홀 후반에 무너지는 바람에 떨어졌습니다.
최: 결국 멘탈에서 무너진 거로군요.
홍: 네. 하지만 다음날 전반까지는 제 자신을 잘 컨트롤했어요. 예전 같으면 아마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잤을 텐데, 그날 잘 잤거든요. 결국 제 실력이 부족해서 안됐다고 생각합니다.
최: 홍 프로의 꿈이 심리전문가가 돼서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는 거라고 알고 있는데, 본인 멘탈이 정말 달라지고 그래서 경기에 적용이 됐나요?
홍: 지난해는 확실히 달라졌습니다(그는 2011년 KPGA에서 2승을 거뒀다). 솔직히 2010년 성우에서 있었던 시합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그때도 마지막 날 실수를 많이 해서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예전 같으면 속상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해서 구석에 있다가 대충 눈도장만 찍고 갔을 텐데 그날은 끝까지 있었어요(KPGA나 KLPGA는 경기직후 시상식 때 불참하는 선수에게 벌금규정이 있다). 제가 몇 년 전부터 심리분석가 조수경 박사한테 멘탈 트레이닝을 받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날 처음으로 제 마음속에서 ‘그래. 진심으로 축하해주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평소보다 훨씬 더 크게 박수를 쳐주고 계속 웃었습니다.
최: 그랬더니 달라지던가요? 멘탈 교육을 받는다고 바로 다 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홍: 바로 당장은 아니었지만, 그때부터 뭔가 긍정적인 생각이 확실히 많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중요한 퍼팅을 앞두고 있을 때 부정적인 생각이 더 많았어요. 안 들어갈까봐 신경이 곤두서고, 그런데 요즘은 설사 안 들어가도 이렇게 중요한 퍼팅을 앞두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잘 못 쳐서 순위에 못 들 수도 있는데, 어쨌든 끝까지 경쟁하고 있다는 얘기잖아요. 즐기자! 했더니 정말 즐겁던데요.
최: 2012년 목표가 뭡니까?
홍: 1월에 아시안 투어 Q스쿨 통과하면 아시안 투어와 코리안 투어를 병행하려고 합니다.
새해 첫 인터뷰이는 말을 천천히 했다. 질문에 대한 답도 진중했다. 오후에 시작한 인터뷰가 저녁시간이 지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 백미러에 비친 내 모습을 봤다. 사촌동생 장가보내고 싶은 친척 누나의 미소 띤 얼굴이 되어 있었다. 주변 여자 후배들이 하나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가 잘 맞는 짝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진심으로 들었다. 그는 프로선수이기 전에 좋은 청년이었다.
SBS 아나운서
아마추어는 프로처럼 연습을 못한다. 연습 안하면 안 맞는 게 당연하다. 그러니 즐겨라! 투덜대지 말고 즐겁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