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섭이 산으로 들어간 까닭은?
롯데 손아섭은 지난해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116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2푼6리, 15홈런, 83타점을 기록했다. 외야수비에서도 강한 어깨로 많은 주자를 잡아냈다. 순박한 청년 이미지의 손아섭은 그러나 연봉협상을 위해 에이전트 뺨칠 정도의 갖가지 자료를 준비했다. 구단에서 ‘어떻게 이런 자료들을 준비했을까’하고 놀랄 정도였다. 그러나 정작 구단의 반응은 차가웠다. 손아섭이 원한 1억 6000만 원에 3000만 원이 모자라는 1억 3000만 원을 제시했다. 그렇다고 구단이 특별히 자료를 제시한 것도 아니었다. “내야수인 모 선수에게 1억 3000만 원을 제시했으니 형평성 차원에서 너도 그 정도를 받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만 있을 뿐이었다.
갖가지 자료를 준비한 손아섭은 ‘형평성’을 주장하는 구단의 자세에 한숨만 내쉴 수밖에 없었다. 손아섭은 “자료를 준비한 시간이 아깝다. 무슨 일이 있어도 1억 6000만 원을 받아야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삼성 투수 오승환과 윤성환은 연봉 계약과 관련해 구단에 백지 위임을 했다. 한마디로 구단이 알아서 연봉액을 정해달라는 뜻이다. 대개 백지위임은 계약이 난항을 겪을 때 선수들이 포기 차원에서 던지는 최후의 카드다. 하지만, 오승환과 윤성환은 지난해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두 선수가 백지위임을 한 이유는 간명하다. 삼성이 알아서 연봉액을 후하게 계산해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은 연봉 테이블에서 질질 시간을 끄는 선수보단 백지위임한 선수들의 연봉을 더 후하게 쳐줘왔다. 삼성의 모 선수는 “1차 협상 때 ‘구단이 알아서 결정해주십시오’라고 말하고 나오면 항상 구단이 1000만~2000만 원이라도 더 챙겨줬다”며 “유독 삼성이 연봉협상 때만 조용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귀띔했다.
모 구단 야수는 연봉협상 때면 ‘버티기’로 유명하다. 그는 한 해도 쉽게 연봉협상을 마친 적이 없다.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극적으로 연봉협상을 마무리하게 마련이었다. 그가 털어놓은 ‘버티기’의 이유는 “버티면 버틸수록 연봉액이 올라가기 때문”이었다. 주전급 선수인지라, 구단도 그의 조건을 끝까지 외면할 순 없었다.
이에 반해 모 구단은 연봉협상 때마다 협박을 잘하기로 유명하다. 선수가 조금이라도 버티기를 시도하면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이름을 빼겠다.” “코칭스태프가 널 지켜보고 있다”는 식으로 위기감을 조성한다. 베테랑 선수들이야 콧방귀를 뀔 수 있지만, 어린 선수들은 구단의 강경한 자세에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이 구단의 연봉담당자는 “연봉 미계약자 가운데 실제로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이름을 뺀 적은 없다”며 “요즘 젊은 선수들은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베테랑만큼이나 버티기를 시도한다”고 울상을 지었다.
2009시즌이 끝나고서 KIA 최희섭은 한동안 잠행을 계속했다. 구단이 제시한 연봉액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희섭은 팀 자율훈련을 거부한 채 돌연 산에 들어가고서 연락을 끊었다. 최희섭의 동료도 그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팀의 주포가 사라졌으니 KIA가 안절부절못하는 건 당연한 일. 하지만, KIA는 느긋했다. 어찌된 일인지 최희섭이 어디서 뭘 하는지 훤히 꿰뚫고 있었다. KIA 프런트의 레이더망이 항시 최희섭의 일거수일투족을 정확히 체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KIA는 표면적으론 “최희섭의 소재를 몰라 당황스럽다”고 하면서도 내심 “최희섭이 제풀에 지쳐 산에서 내려올 것”이라고 느긋해했다. 결국 KIA의 예상이 맞았다. 산에서 내려온 최희섭은 구단 측의 의사가 많이 반영된 연봉제시액에 사인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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