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 4편 아쉬운 흥행 속 800만 ‘탑건: 매버릭’만 웃어…추석 극장가에선 ‘공조2’ 독주 체제 전망
물론 이런 스케줄을 짠 별도의 감독은 없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개봉을 미뤄온 대작 한국 영화들이 하나같이 최대 성수기인 여름 극장가를 겨냥하는 전략을 세웠고, 그 결과가 참혹했을 뿐이다. 반면 소나기를 피해 5월 봄 비수기를 노린 ‘범죄도시2’는 1000만 관객을 달성했고, 추석 극장가를 노린 ‘공조2: 인터내셔날’ 역시 별다른 경쟁작 없이 홀로 흥행가도를 달릴 것으로 보인다.
8월 28일 ‘한산: 용의 출현’이 힘겹게 700만 고지를 밟았다. 손익분기점 600만 명을 넘겨 700만 관객을 달성했지만 성공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에는 아쉬움이 많다. 1000만 관객 달성이 유력해 보였던, 구선(거북선)의 본격 등장으로 전편 ‘명량’이 세운 국내 최다관객 1761만 명 돌파까지 기대했던 예상에는 크게 부족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사흘 뒤인 8월 31일에는 ‘탑건: 매버릭’이 800만 관객을 돌파했다. 6월 22일 개봉한 ‘탑건: 매버릭’은 꾸준히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박스오피스에서 5위 안에 이름을 올리며 흥행세를 이어가며 800만 명까지 왔다. 100만 명 가까운 차이를 보이고 있는 ‘한산: 용의 출현’의 역전이 요원해 보이면서 여름 극장가를 피해 6월 말에 미리 개봉한 외화 ‘탑건: 매버릭’이 결국 2022년 여름 극장가 최대 흥행작이 됐다.
‘헌트’는 어렵게 손익분기점 420만 명에 다다르며 ‘한산: 용의 출현’과 더불어 그나마 체면치레는 했다. ‘외계+인 1부’는 고작 153만 명으로 손익분기점 730만 명에 크게 모자란 성적을 기록했고, ‘비상선언’ 역시 204만 명으로 손익분기점 500만 명 절반에도 다가가지 못했다.
예상이 완벽하게 어긋난 여름 극장가였다. 추억의 영화 ‘탑건’이 36년 만에 후속편으로 돌아오는 터라 어느 정도 관심은 유발했지만 그리 큰 흥행까지 예상하지 못했던 ‘탑건: 매버릭’이 최대 흥행작이 됐다. 반면 충무로 최고의 흥행 메이커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1부’와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등 톱 A급 충무로 스타들이 대거 출연한 ‘비상선언’은 최악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7월 초까지만 해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성적표다.
물론 최대 성수기인 여름 극장가에 BA.5 변이에 의한 코로나19 재유행이 심각해졌다는 돌발 변수도 있었지만 아직 한국 극장가가 이렇게 여러 편의 대작이 동시 흥행할 만큼 활성화되진 못했다는 게 결정적 요인이 됐다. ‘범죄도시2’의 1000만 관객 달성 역시 별다른 경쟁작이 없었다는 점이 흥행 밑거름이 됐다. 애초 ‘범죄도시2’는 마블의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 크게 밀릴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지만 예상과 달리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흥행세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다른 대작 한국 영화들이 마블과의 정면승부를 피하는 동안 홀로 개봉을 밀어붙인 ‘범죄도시2’가 반사이익을 누렸다.
‘범죄도시2’의 흥행 성적은 1269만 명으로 ‘한산: 용의 출현’ ‘헌트’ ‘비상선언’ ‘외계+인 1부’ 등 여름 극장가 대작 개봉작 4편의 흥행 성적을 합한 수치와 비슷하다. 결국 아직은 한국 극장가가 코로나19 이전으로 완벽하게 돌아가지 못한 채 파이가 상당히 줄어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의 기세도 강력해 요즘 관객들은 확실히 검증된 영화는 극장에서 보고, 그냥 그런 영화는 기다렸다가 OTT로 보는 분위기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공조2: 인터내셔날’이 ‘범죄도시2’에 이어 상당한 흥행 성적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추석 연휴를 앞둔 9월 7일 개봉하는 ‘공조2: 인터내셔날’의 주요 경쟁작은 같은 날 개봉하는 디즈니 ‘알라딘’과 한국 영화 ‘모가디슈’ 정도다. 둘 다 좋은 영화이며 흥행력도 보장된 작품이지만 이미 2019년과 2021년에 개봉해 관객들을 만난 영화들이 재개봉하는 셈이다. 사실상 ‘공조2: 인터내셔날’의 독주 체제다.
물론 영화 자체가 기대 이하라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흥행성을 두루 갖췄다는 평을 받고 있는 터라 좋은 성적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추석 연휴에 극장을 찾는 관객들 입장에선 대다수의 상영관에서 ‘공조2: 인터내셔날’이 상영되고 있어 다른 선택지 자체가 없다.
이런 까닭에 한국 영화계의 여름 극장가 참패가 더욱 아쉽다. 만약 4편의 대작 영화 가운데 한 편 정도가 여름 성수기가 아닌 추석 연휴로 눈길을 돌렸다면 훨씬 좋은 흥행 성적을 거뒀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봉 초반 2~3일만 분위기가 안 좋으면 한 주 뒤 개봉하는 대작 한국 영화에 바로 상영관 대다수를 내줘야 했던 여름 극장가의 너무 격렬한 경쟁은 모두에게 독이 되고 말았다. 이런 분위기는 역바이럴 논란까지 불러일으키며 한국 영화계를 더욱 혼돈 속으로 몰아갔다.
2022년 극장가에선 대작 외화들이 별 힘을 쓰지 못한 게 또 하나의 특징이었다. 마블 기대작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58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지만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오히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예상만큼 강력하지 못했던 터라 ‘범죄도시2’가 1000만 관객을 달성할 수 있었다. 여름 극장가의 문을 연 마블의 ‘토르: 러브 앤 썬더’ 역시 271만 관객에 불과했다. 이처럼 흥행 보증 수표인 마블 영화들이 기대 이하의 성적을 기록한 데 반해 예상치 못한 ‘탑건: 매버릭’이 8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그렇지만 남은 4개월 동안은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11월에는 마블의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가 개봉하고 12월에는 디즈니의 ‘아바타: 물의 길’이 개봉한다.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마블의 야심작이며 전편이 국내에서 무려 134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아바타: 물의 길’ 역시 연말 극장가에서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반면 여름 극장가에서 텐트폴 대작 영화들을 대거 소진한 한국 영화계에선 아직 뚜렷한 경쟁작조차 거론되지 못하고 있다.
김은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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