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동열 KIA 신임 감독이 취임 후 첫 훈련에서 특유의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을 선보였다. 사진제공=KIA타이거즈 |
# 마무리 훈련 전원 집합
선동열 감독이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대화였다. 마무리캠프가 그 무대였다. 11월 2일부터 30일까지 한 달 동안 일본 미야자키 휴가에서 열리기로 계획돼있던 KIA의 마무리훈련은 선 감독의 취임과 함께 그 규모가 확대됐다.
1.5군 내지 2군 선수들을 주축으로 보통 코칭스태프 포함, 60명 정도면 많이 참가하는 마무리훈련에 KIA는 78명 선수단을 꾸렸다. 대규모였다. 12월 결혼한 이용규와 부상 이후 재활치료를 받아야 했던 김상현, 나지완, 최희섭 정도를 제외하고, 최고참 이종범과 투수 서재응 포수 김상훈 등 1군 핵심이자 고참들까지 예외 없이 참가했다. 11월 7일 정규시즌 MVP 시상식에 참석해야 했던 에이스 윤석민도, 개인 사정이 있어 함께 출발하지 못한 이범호도 모두 늦게나마 마무리캠프에 합류해야 했다.
마무리훈련 계획에 없던 선수들을 모두 불러 모은 것은 ‘대화’를 위한 선 감독의 결정이었다. 마무리훈련은 시즌을 마친 뒤 다음 스프링캠프를 미리 준비하는 기간이다. 팀이 잘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감독과 선수들의 호흡이 중요하다. 새로 지휘봉을 잡게 된 선 감독이 선수들 면면을 제대로 파악해야 시즌 준비를 위한 스프링캠프도 제대로 치를 수 있다. 이에 따라 선수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이해하기 위한 첫 무대로 마무리훈련을 택했다. 선 감독은 미리 1군 주축 선수들에게 의도를 설명했고 선수들은 그 뜻을 알아차려 마무리훈련에 ‘자진 합류’했다.
연습 경기 위주로 치러진 마무리훈련에서 이 주축 선수들은 선 감독과 여러 차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특별한 목적을 갖기보다 감독과 선수로서 친분을 쌓는 의미였다. 대부분 선수들이 “시원시원하고 합리적인 분 같다”고 선 감독의 첫인상을 설명했다.
▲ KIA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으로 기사의 내용과 관련없음. 사진제공=KIA타이거즈 |
선 감독은 마무리훈련을 마치면서 선수단에 과제 하나를 내줬다. 체지방률 23%를 유지하라는 주문이다. 1월 8일 합동훈련 시작에 앞서 재측정하는 1월 6일까지 23%에 맞추지 못하면 연봉의 5%를 벌금으로 내 선수단 상조회에 헌납해야 한다고 공표했다.
선 감독은 2009년 시즌을 앞두고 삼성에서도 선수들에게 체지방과 체중 조절을 놓고 벌금을 건 적 있다. 당시에는 계약기간 마지막 해를 앞두고 선수들을 조였다면 이번에는 돌아온 KIA에서 첫 시즌을 앞두고 선수들을 다잡는 차원이다.
자율훈련을 지시했지만, 휴식기라고 마냥 자신을 놓지 말고 몸 관리를 잘해 스프링캠프를 준비하라는 의도다. 그러나 연봉 1억 원을 받는 선수는 무려 500만 원을 내야 하는 대형벌금이다. ‘설마 진짜 걷을까’ 싶지만 적어도 ‘본보기’로 한두 명은 진짜 벌금을 낼 것이라는 추측 속에 선수들인 대대적인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체지방 1%는 체중 2~3㎏와 맞먹는다. 단순한 체중감량보다 훨씬 어렵다. 한 달 새 2~3%를 줄이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최대한 23%에 맞추려면 일정량의 운동과 음식 조절이 필수다.
마무리훈련에 앞서 실시한 신체검사 결과, 대부분이 체지방률 23%를 초과했다. 외야수 나지완은 27%, 내야수 안치홍과 김선빈은 25%, 투수 서재응은 30% 등을 기록했다. 모두가 러닝과 웨이트트레이닝을 기본으로 한 체력운동에 음식 조절까지 곁들여 ‘체지방과 전쟁’에 나섰다. 특히 선수단 가운데서도 최고 수준의 체지방률을 보인 고참 서재응은 주위에 “나를 찾지 말라”고 선언한 뒤 12월 내내 저녁 약속도 잡지 않고 식사 조절과 운동으로 노력했다.
서재응은 “태어나서 살 뺀다고 이렇게 노력해보기는 처음이다. 사이즈가 한 치수 줄었다. 힘들지만 더 빼고 싶은 마음도 드는 게 다이어트하는 여자의 마음을 알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23%에 미치지 못한 투수 윤석민과 이범석 등은 “살을 더 찌워오라”는 과제를 받았다.
# 투수들 조련법
가만히 있어도 군기가 잡히는 것은 ‘국보’ 선 감독이 가진 고유의 카리스마다. 선 감독이 사령탑으로 오자 KIA 투수들은 저절로 설레었다. 1991년 선 감독이 달성했던 투수 4관왕의 대를 20년 만에 이은 에이스 윤석민은 “감독님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고, 4년 간 방황을 마치고 지난해 복귀한 김진우는 “감독님의 모든 것을 뺏고 싶다. 앞으로 졸졸 쫓아다니면서 하나하나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2의 선동열’을 꿈꾸는 KIA 투수들의 욕심을 선 감독은 오히려 ‘경계’하고 있다. 무턱대고 자신을 따라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투구 폼이 대표적이다. 긴 다리를 쭉 뻗은 뒤 릴리스포인트를 최대한 앞으로 끌어, 마치 공을 때리는 듯 던지는 특유의 부드러운 폼은 투수들에게 ‘로망’이다.
선 감독은 “여러 과정을 거쳐 나온 폼일 뿐이다. 투수는 각자 자신에게 맞는 폼을 만들어야 한다”며 투수들에게 각자의 신체조건과 투구 스타일에 맞게 던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물론 영리한 요즘 어린 투수들은 무조건 따라해서는 안 된다는 것쯤 알고 있다. 기술적인 면뿐 아니라 경기운영 마인드나 정신력 등 여러 면에서 왜 최고 투수인지를 배워보겠다는 생각이다.
김은진 스포츠경향 기자